『그 여름, 트라이앵글』by 오채

시리즈 블루픽션 75 | 오채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4년 6월 10일 |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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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가 독특하다.  각양각색의 사람들 머리위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있다.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 같은 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  비슷한 듯 다르지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깔끔한 표지다.  처음엔 이 책을 교육이나 소통관련 책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겉 표지만 보고 떠올랐던 이미지는 청소년기 아이들과에 소통을 이야기하는 책쯤으로 생각했는데, 소설이다. 그것도 끝내주게 멋진 소설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표지가 얼마나 멋지게 책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지 일러스트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때는 교복 자율화로 교복을 입는 학교가 신선한 충격이었었고, 그때문에 교복은 로망처럼 느껴졌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입기 시작한 교복은 사복을 동경하게 만들곤 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동경은 누구에게나 있는것 같다.  분명 누구나 동일한 사고를 가지고 같은 삶을 살아 갈 수는 없다.  얼마전에 『기억전달자』를 읽었었는데,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애를 쓰는 청춘이 자신의 모든것을 희생하면서 타인과 다른 모습을 꿈꾸는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열일곱 청춘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묘한 빌라가 있다.  빌라 이름이 ‘몽마르뜨 언던 위’라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 빌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집에서 밥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재미있다. 주부입장에서는 고마운 빌라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찌되었든 이곳 ‘몽마르뜨 언덕 위’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은 형태네 엄마가 하시는 식당에서 아침,점심,저녁을 해결하고 있다.  게다가, 형태네 식당은 빌라에 있다.  약간 오피스텔같은 느낌의 빌라 같기도 하고, 상가 건물 같기도 하고,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이 빌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모두 가족같은 분위기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빌라를 기점으로 세 아이가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죽은 후 외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엄마의 유품인 카세트테이프를 애지중지하는 소월이.  엄마의 소원대로 미술을 공부하고 예술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를 하고 있지만, 미용학교에 진학하고픈 예고 재수생 형태, 예고 수석 입학자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오천만 원이나 하는 바이올린을 가지고 다니지만, 바이올린이 짐처럼 무거운 시원이.  열일곱의 청춘들은 청춘이 해야만 하는 고민을 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일까?” 

 

  누군가 이야기를 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해야할 고민을 대입이라는 장벽으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대학을 가고, 대학에서 자신을 찾으려 할때는 취업전선에 막혀서 못하다가, 취업을 하고나서 자신을 찾으려하니 그렇게 죽어라 공부해서 들어간 회사를 1~2년도 안 다니고 그만둔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때라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살아 있는 걸까?’를 고민한다는 것에 감사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고 없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것을 포기한 삶일테니 말이다. 기억조차도 지우고 싶은 아빠가 소월이 앞에 강아지 한마리를 안고 나타났는데, 강아지 이름이 소중이란다.  어린시절부터 그렇게 아빠가 필요할때는 나타나지도 않더니 무슨 면을 가지고 나타난걸까?  미용이 너무나 좋아서 하루 세시간씩 엄마 몰래 하는 미용실 알바는 힘든지도 모르겠는데, 엄마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는 형태는 몸이 바쁘다.  어린시절부터 목검을 들고 시원이를 좌지우지하는 엄마, 자신보다 바이올린이 중요한것처럼 보이는 엄마를 볼때마다 시원이는 답답했다.

 

  어린시절부터 삼총사로 불리는 세아이는 모두 고민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겐 본인의 고민이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오지만, 곁에 있는 친구들 눈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엄마의 유품인 테입이 늘어나서 못 듣게 되었을때 세상이 무너지듯 느껴지다가, 할아버지가 쓰러지셨을땐 자신의 인생이 사라진듯 느껴지다가도 아빠의 존재가 조금 고맙게 느껴지는것처럼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은 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대한 고민은 아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여전히 모르기에 아빠의 부재가 딸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소월이 아빠가 있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형태의 예고입시와 미술에 집착을 하는 형태 엄마도 있다.  소월이 눈에는 옥탑방 맑은 아저씨가 정상적인 사람의 표본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오히려 맑은 아저씨를 통해 알게된 장애우, 로함이가 훨씬 살아야만 하는 존재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월이가 그렇게도 알고 싶은 꿈을 천개도 넘게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혹시 우물을 파 보신 적이 있습니까? … 언제까지 파야 하냐고요.  그분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물을 만날 때까지 파는 거라고. 어떤 경우는 1 센티미터를 안 파서 물을 못 만날 수도 있다고.  꿈도 그런 것 같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루게 돼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오늘부터 차근차근 만나러 가 보십시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p.200)

 

  형태 엄마와 세 아이가 함께들은 강연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1 센티미터를 더 파면 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 수 없기에 그때까지의 고뇌와 노동이 힘이 들어 포기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는 않지만 만날때까지 계속하면 만날 수 있다는 불변의 진리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아이들의 질문은 태평하고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 엄마, 아빠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나는 그 질문에 정답을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소월이처럼 나의 꿈을 찾지 못해서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아이에게는 꿈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나조차도 그 꿈을 찾지 못해 안간힘을 쓰고, 지치면 내가 찾지 못한 꿈을 아이에게 투영시키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살아가는거지라는 생각을 ‘지금 나는 살아있는걸까?’라는 생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책이 삼각형을 만들어 내는 근사한 삼총사의 이야기인 『그 여름, 트라이앵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