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독자들이 직접 심사해 뽑는 비룡소 아동문학상
스토리킹 2회 수상작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두번째 이야기「결투단의 최후」
전편에서 무술고수 오방도사의 제자가 된 건방이가 스승의 복수를 위해 결투를 하는
국내 최초 어린이 무협동화라는 게 확~ 끌리는 책인데요. 그렇다고 처음 출간 당시만 해도
예전 TV만화로 인기 많았던 머털도사같은 고전 사극도 아니고 평범한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판타지 무협 이야기가 과연 재미있을까 의아해했죠.
그러나 억지스러움이 전혀없는 천방지축 10대 건방진 건방이 캐릭터가 늘 학교가 끝나면
학원 뺑뺑이에 지칠대로 지친 우리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확~ 사로잡은 거 같아요.
요즘 초등학생이 격하게 공감하는 냉혹한 현실의 무게가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살벌한 무술세계와 많이 닮아있는 듯 해요.
1탄 강렬한 주먹 다음으로 건방이의 화려한 발차기가 인상적인
두번째 수련기도 빨리 만나보고 싶어져요.
먼저, 등장인물 소개부터 자타공인 무술권법의 제일인자인
오방도사의 혹독한 수련을 받는 건방이와 오방도사의 오랜 라이벌인
광독지존삼천갑자 도사의 신경전이 대단할 거 같은데요.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왠지 머털도사의 스승 누덕도사와 비열한 왕질악 도사와 비슷해 보이죠.
그렇다면 머털도사에서 왕질악도 위협할 정도로 악랄한 제자 고수와 비교되는
광독지존삼천갑자 도사의 제자는 누구? 건방이와는 장장 2년이나 같은 반 친구였어도
전혀 친하지 않은 키 작고 깡마른 홀죽이 지만이. 반에서 덩치 크고 힘센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상은 누구 하나 억울한 지만이의 마음을 몰라 주는 게
슬픈 현실이네요. 그 현실을 바라보는 어른들마저 일단 돈 없고 힘마저 없으면
무조건 공부라도 잘해야 소위 있는 놈한테 기죽지 않는다고 해요.
딱히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갑을관계가 아이들 사이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네요. 마치 집에서는 공부 잘하는 형이 갑이고
학교에서는 힘 센 만석이 같은 친구가 갑인 이런 삐— 세상.
왜 하필이면 약자인 지만이가 광독지존삼천갑자 도사의 제자가 된 건
그의 잘못도 아닌 운명으로 밖에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네요. 그것도 사나운 독과
암기술에 능한 광독지존삼천갑자 도사의 제자가 된 이상 그에게 배울 건 비열한 속임수.
더 이상 나약했던 지만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허름한 학원 건물에 무료나 다름없는
한자 교실로 부모님 눈을 속이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온갖 독을 다루는 법을 익히고
암기술을 수련한 지 이 년. 일명 ‘철딱지’로 불리는 전용 암기로 표적 훈련을 하는데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질 정도예요. 그리고 시시때때로 학교에서 건방이를 견제하는 게
이건 염탐인지 질투인지 건방이를 쳐다볼 때마다 순간적으로 웃음기가 싹 사라지는
지만이의 얼굴에는 증오가 가득하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원래 나이로 따지면
서른넷 아저씨 나이이지만 아홉살 꼬마로 살아가는 도꼬와 함께 머니맨 알바를 하는
건방이는 천하태평이네요. 워낙 머니맨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다 보니 일만 더 많아진 모양이에요.
그렇다고 없는 살림에 죽기살기로 머니맨 일만 하는 건 아니에요.
일주일에 한번 본격적으로 전설의 여검객 설화당주에게 검법을 배우게 된 건방이는
지난 시간에 배운 본국검법을 펼쳐보이는데 어찌 자세가 영~ 엉망이네요. 사실 이런 거 저런 거
별로 신경 안쓰는 호방 성격의 설화당주도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온 듯 이상하게도
건방이의 자세는 잘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엉망이 되었죠. 하는 수 없이
설화당주의 애제자 초아가 시범에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뽑아 들고
멋지게 검법 시범을 보이는 초아는 건방이와는 하늘과 땅 차이. 자세 하나하나가
우아하면서도 힘이 넘쳐 기본기는 초아에게 배워도 할 말 못하는 건방이예요.
결국은 초아가 시키는 대로 지옥훈련같은 검법 수련을 마치고 파김치가 된 건방이는
그제야 제 스승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깨달아요. 그런데 같은 시각, 의문의 복면
습격을 받은 도꼬역시 손등에 입은 상처가 심상치 않은데요.
만약 독에 중독된 거라면 빨리 치료를 해야 할 터. 부리나케 해독풀을 구할
약재상을 찾아가 그곳에서 이상한 소문을 듣고 놀라죠.
며칠전, 한달 식비를 한끼 아침식사로 거하게 스테이크를 썰던 날
비싼 고기 뜯다 스승 앞에서 주먹질이 웬말. 서로를 씩씩대며 째려보는
두 제자에게 벌청소로 다락 청소를 맡기는데요. 먼지가 하도 쌓여 뭐가 책인지, 잡동사니인지
알아 볼 수 없는 낡고 오래된 책이 수북. 언뜻 낯익은 내용의『무술 대예언』책을 집어 들자
의문의 결투장이 떨어지는데 어찌 떠도는 이상한 소문과 관련이 깊은 듯 의미심장해요.
그리고 약재상 점박이 아저씨가 들려주는 결투단의 전설에 따르면 십년 전 산속에서
조용히 수련만 하던 오방도사와 마구잡이로 무술계를 설치고 다니던 광독지존삼천갑자
도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고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본문 끝머리에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그때 그 결투단 사건의 전말이 밝혀져요.
그런데 결투장을 보낸 사람이 왕인지, 광인지 한자는 몰라도 하루 이틀..열흘째
감감 무소식인 스승님 걱정에 애가 타는 건방이는 도꼬에 이어 스승님도 비슷한 수법의
괴한에게 습격으로 당하고 쓰러지셔 걱정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에요.
게다가 해독풀로도 해독이 안 되는 희귀한 귀신지네 독이라니..
당장 이런 심각한 몸 상태로는 내일 있을 결투는 무리래도
언제 귀신지네 독이 오방도사 온 몸에 퍼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 그럼에도 다음날 아침
방안에 몸져 누워 계셔야 할 스승님은 결투를 위해 오방권법의 하나인 오방권무로
몸을 풀고 계신데요. 좀처럼 스승님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 건방이는 오방도사를 따라나서고
산세가 험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출입이 금지된 북한산 정상을 도약술로 붕붕 날아 오르더니
단숨에 말로만 듣던 결투단에 도착.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니
십 년만에 다시 만난 오방도사와 광독지존삼천갑자 두 무술 고수의 오랜 악연이
그대로 제자에게 대물림되네요. 아직은 부족한 실력으로 패기만 넘치는 건방이가
과연 스승의 복수에 성공할 지 지켜보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어요.
아니라 다를까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드는 오지만의 철딱지에 그만 상대가
열 명으로 보이는 위기에 처하는데 스스로 어떻게 이겨 낼지..
처음부터 끝까지 피할 수 없는 냉정한 승부세계는 영원한 강자는 없는 거 같아요.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유쾌하고 재밌는 건방이의 수련기, 다음 편도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