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 – 비상을 꿈꾸는 용의 연못》
아이들의 상상의 연못을 맑고 깨끗하게 지켜주는 연못지기
연못지기 16기 둥근하늘이예요.
세상에는 뻔한 거짓말이 있지요
처녀가 시집 안간다는 말, 어르신의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
영욱이의 할아버지는 일흔아홉입니다.
“일흔 아홉, 죽기 딱 좋은 나이지.”
매년 해가 바뀔때마다 하시는 말씀으로
처음에는 마음이 이상하고 정말 죽을까봐 영욱이는 걱정이 되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답니다.
매 번 거짓말을 하던 양치기 소년이 아니라
양치기 할아버지의 마지막 이벤트~!!
때로는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코 끝이 찡하게,
손자 영욱이의 시선으로 죽음과 장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내고 있는
유은실작가님의 《마지막 이벤트》 입니다.
푸른하늘 은하수를 하얀 쪽배를 타고 가는 영욱이,
달나라 달토끼와 함께 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네요.
반짝반짝 별자리로 표현된 책의 제목 ‘마지막 이벤트’까지
웬지 따뜻하고 정감이 듬뿍 갑니다.
첫장을 넘기니 할아버지가 “영욱아~”하고 부릅니다.
다음 차례부분에서는 영욱이가 ‘할아버지….’라고 말하는데
가만히 보니 ‘…’으로 그리움이 짙게 배어나는 것 같습니다.
길게 드리워진 영욱이의 그림자가 마냥 쓸쓸해 보여서
책을 읽기도 전에 가슴이 먹먹해졌답니다.
그렇지만 책의 내용은 결코 우울하거나 무겁지 않았어요
영욱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죽음은 그렇게 어둡고 무섭지만은 않았고,
나름의 방법으로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있더라지요.
영욱이가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이야기!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이름은 표영욱, 초등학교 6학년이다.
나는 할아버지랑 함께 문간방을 쓴다.
할아버지는 코도 심하게 골고 발냄새도 지독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제일 좋다.
할아버지는 컴퓨터 도사다
포토샵도 수준급이고 문자메세지도 잘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잘 알고 위로해주신다.
그러나 아빠는…
‘바보 같은 놈’, ‘돼 먹지 못한 자식’이라며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뭘해 먹고 살지 걱정이라고 하신다.
아빠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 지지 않는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고,
마음 깊은 곳을 확 긁힌 기분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아빠가 나에게 하는 것처럼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똑같이 했단다.
아빠에게 상처를 받은 마음을 위로해 주시는 할아버지가
아빠를 그렇게 만들었다니….생각할수록 복잡하다.
나는 할아버지의 검버섯이 좋다.
그걸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할아버지의 검버섯을 만지고 있으면 잠도 잘온다.
할아버지의 널찍한 이마는 ‘푸른 하늘’이고 검버섯은 ‘은하수’라고 치는 걸 좋아했다.
내가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할아버지는 자신의 이마를 가리키며
“우리 영욱이 착하지 뚝. 뚝하고 토끼 찾어”
토끼도 없고 나무도 없고 쪽배도 없다고 떼를 쓰면
할아버지는 싸인펜으로 이마에 그리라고 했다.
어떤 날은 배랑 토끼, 어떤 날은 로켓이나 공룡을 그렸다.
울 할아버지는 이혼남이다.
막내만 결혼시키면 그날로 이혼도장을 찍으시겠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정말로 그렇게 했단다.
이혼을 한 할머니는 일년만에 재일교포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일본으로 가셨다.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할머니에게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그렇지만 답장은 한번도 오지 않았고
전화번호는 아예 바꿔버렸다.
고모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손자야 활명수 세 병만^^”
“안돼 저번에도 걸려서 엄마한테 혼났잖아”
우리 할아버지는 활명수 중독이다.
“그럼 딱 두 병만^^”
“안돼 약국에서 한 병만 먹으랬잖아 하나만 산다”
“치사한 표영욱ㅠ.ㅠ”
할아버지는 활명수를 드시고,
발바닥의 경혈을 한참 누르더니 “끄억~~”트림을 길크고 길게 했다.
방귀도 뀌었다.
난 할아버지가 다 나았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면 금방 낫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안절부절못했다.
‘영욱아, 전화해서..할아버지 진짜로…죽을 것 같다 그래.”
사실 할아버지는 그동안 여러 번 죽을 것 같았다.
일 년 전 처음 죽을 것 같다고 했을때 ‘다’는 거기 딸린 식구들을
데리고 두 시간만에 집합했다.
‘다’는 아빠랑 고모들인데 세 번째로 죽을 것 같다고 했을때
‘다’는 지겨워 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아빠는 바쁘다고 짜증을 냈고
나머지 ‘다’도 나중에 오겠다고 했다.
“영욱아, 내가 이벤트 해 주려고 했는데 병이 났다.”
할아버지는 이벤트를 좋아하신다.
사우나가면서도 이벤트, 만화책 빌리러 가서도 이벤트라고 한다.
작은 고모는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가 하는 이벤트는 딱 세 가지
ㅡ 재산 날리기,
술 마시고 들어와서 식구들 깨워 놓고 잔소리하기,
할머니랑 싸우기 ㅡ
뿐이었다면서.
“할아버지, 무슨 이벤트?”
“표영욱 고추에….털 난 기념.”
“푸우 하아~~”
빤스를 직접 빨아야 할 때를 대비해 빤스 상자를 물려주신다니…
살짝 서운했다.
“비밀상자를 물려주면 안돼?”
“그거 안돼. 죽으면 이…..벤트 할 때 써야지”
졸음이 쏟아졌다.
할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가물가물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어나니 아무도 없었어요.
할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가셨고 새벽에 돌아가신 거예요.
“빤스 깨끗하게 빨아 줘.”
영욱이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이 떠올랐어요.
할아버지가 부탁한대로 솔로 빡빡 문지르는데,
참으려해도 자꾸 눈물이 나와서 울면서 빨래를 하였답니다.
영욱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장례식,
리본 달고 서 있는 꽃다발이 근조화환이라 부르는 것임을,
축하할 때 내는 것은 ‘축의금’이고 장례에서는 ‘조의금’이라고 하며,
여러 가지 옵션의 영정꽃장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이렇듯 장례식의 절차를 영욱이의 시선으로 따라갑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밥을 먹으며, 잠을 자고
심지어 웃기도 하는 자신을 보며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요.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아 후회도 되고요.
또한 서운함에 미워지기도 했다지요.
정다운 문자도 많았는데, 하필 제일 마지막 문자가
“치사한 표영욱 ㅠ.ㅠ”이라니…
답장을 받을 수는 없지만,
자신의 마음을 담은 문자를 보냈어요.
마지막 입관식입니다.
영욱이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어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석하게 되어요.
생전의 모습 그대로 잠자는 것 같은 할아버지,
그 어느때보다 아름다운 이마를 봅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에 하얀 쪽배를 타고 가는 하얀 토끼,
마지막으로 본 크고 작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 같은 할아버지의 이마였답니다.
죽음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지만 언제나 가까이 있어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죠
끝없이 돌고 도는 순환의 구조속에서
죽음 또한 삶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이해 받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위한 마지막 이벤트~!!
책을 덮은 후에도 가슴 찡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답니다.
* 연못지기로 해당출판사로부터 책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