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이에게는 아직 이른,
그래서 저 혼자 본 성교육 그림책입니다.
5세~8세에 적합하다고는 하나 좀 더 늦게 보여줘도 되겠다 싶구요.
현재까지 총 3권의 시리즈로 출간되어 있답니다.
사실, 서평을 쓸까말까 몹시도 고민한 책입니다.
뭔가 오래 된 느낌의 책이면서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에는
다소 적나라한 부분들이 있거든요.
물론 이것은 성을 처음 접하게 함에 있어 어떠한 입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부모님들이 선택할 부분이지만 저 같은 경우는 은유적인 표현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율이처럼 어린 아이들에게는 꽃으로 비유한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성교육을 해주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 대처하는 능력은 실제적으로 가르쳐야 하지만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가에 관한 부분은 사실 은유적인 표현이 적합합니다.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성관계를 갖는 자세까지 그려져 있는
성교육 그림책이라… 요즘 트렌드에 안 맞지 않나 싶네요.)
요즘은 학교에서도 워낙 성교육을 강조하고 있어서
1년에 15시간 이상 실시하게 되어 있는데요.
적어도 이 그림책에 나온 내용은 4학년 정도부터 가르쳐도 된다는 입장입니다.
책 자체가 나쁘지는 않은데 오래 된 느낌의 그림과 글이어서
초판날짜를 살펴보니 1997년이네요.
거의 20년 전의 책.
그림책 중 어떤 고전은 100년이 된 것도 있으니
20년 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책의 그림은 매우 사랑스럽고 색채가 부드럽거든요.
그런데 내용이 썩 세련된 느낌은 아닙니다.
특히나 연령대를 5~8세로 잡았다면 더더욱 요즘 스타일의 성교육을
고민해보고 시리즈를 구성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동생이 태어나서 수유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표지.
다소 오래된 느낌의 일러스트이지만 정감이 넘칩니다.
부드러운 채색은 더욱 옛느낌을 부각시키지요.
그림책은 항상 속표지부터 읽어줍니다.
수정되는 과정을 표현해두었군요.
그리고 자궁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을 표현했구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럼 갓난아기 전에는 어땠지?
간결한 질문, 하지만 정확히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질문입니다.
이 책은 주인공이 던진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요.
이렇게 자궁 속에서 태아가 수영하는 것이나
엄마와 함께 열 달 동안 모든 일을 함께 했다는 내용은
아이들에게 읽어주기에 참 좋다는 생각입니다.
주인공은 다시 질문을 합니다.
근데 내가 엄마 배 속에 어떻게 들어왔지?
아이들 수준에서 당연히 궁금해 할 수 있겠죠.
왼쪽은 부모가 성관계를 갖는 자세가 그려져 있고
제가 찍은 이 페이지에는 문장으로 설명,
그리고 수정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 페이지는 굳이 일러스트가 표현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꽈-악 끌어안고 몸과 마음을 다한 사랑을 나누어’라는 문장에 굳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적나라하게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저 사랑스럽게 서로를 안아주거나 바라보는…
또는 다른 방식의 어떤 표현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5~8세라면 어린이 이전의 유아인데 은유적인 표현으로도 충분합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사실을 가르쳐야만 올바른 성교육일까요?
앞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추행 등의 피해 시 대처’를 주제로 한다면
적나라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도움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실제로 ‘임신과 출산’을 주제로 한 성교육의 경우는
은유적인 표현이더라도 얼마든지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일부를 제외하면 문장 하나하나가 매우 따뜻한 시각을
견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내는 힘, 엄마가 내는 힘, 아빠가 드리는 기도,
우리 가족 모두의 바람으로 나는 태어났어.’와 같은
문장들은 책을 읽는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지요.
오래된 느낌의 일러스트.
하지만, 따뜻한 느낌.
일부 표현이 다소 직설적이지만 ‘너의 소중함’을 부드럽게 알려주는 문장.
그래서 서평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과연 율이가 더 자랐을 때 이 책을 읽어줄 수 있을까?
둥글둥글 굴려서 표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