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좋은 감정보다는 슬프고 화나는 일이 많다. 다시 되돌릴수 없는 시간이기기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만약에…’ 라는 말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힘이 더 있었더라면 역사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힘이 작용한다. 약자를 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강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더 짓밟는 경우가 있다. 개인간에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데 국가간에는 더 큰 힘이 작용하지 않을까. 근대사만큼 마음 아픈 일도 없다. 우리에게 조금만 힘이 있었더라면, 지혜롭게 대처했더라면 아픈 역사를 마음속에 품을 일이 없지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코레야 탐사대에 함류한 알렉세이. 그에게는 코레야가 낯선 곳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도망치듯 러시아를 떠나는 그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탐사대원들에게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하는 알렉세이. 그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짐이 있어서인지 그런것은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알렉세이와 여정을 떠나게 되는 비빅과 니콜라이 김. 비빅은 실전에서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이라 그런지 매사 당당하고 조금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다. 러시아인들을 위해 통역을 맡은 니콜라이 김. 조선인임에도 러시아 이름을 가진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코레야 지리에 익숙치않은 이들을 위해 함께 하는 인물은 근석이다. 근석이라는 이름을 부르기 어려워하여 그들에게 ‘가마실’이라 부르라고 말한다. 자신이 태어난 가마실을 떠나 낯선 이방인들과 함께 길을 떠난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도망치듯 조선에 온 알렉세이의 눈으로 바라본 미지의 나라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미개한 약자의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누구보다 강한 의지가 있고 당당히 맞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나이는 어리지만 누구보다 당당한 근석이를 만나면서 숨으려고 했단 나약한 자신을 발견한다.
“근석을 보며 세상에는 모두가 도망치려는 곳에서 머물 자리를 찾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근석의 말이 옳아요. 이 땅엔 절망의 운명이 닥쳐와도 도망치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는 코레야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며 지난날 제가 가졌던 편견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 본문 254쪽
러시아인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나라의 모습을 조금은 담담하게 받아들일수 있다.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감정적으로 바라보던 역사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근대사를 만나다보면 감정이 먼저 앞서는 경우가 있다. 잊어서 안되는 일이고 잊을수도 없는 일들이 있다. 단순히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며 더이상 아픈 역사를 만들어가지 않으려는 우리들이 되어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