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실은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은 사회의 질서에 묶여 규범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 일상의 많은 것들이 이렇게 규범화되어 간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에서 산다는 것과 같은 뜻인데
규범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이미 생겨난 규범을 어찌할 수 가 없는 것도 인간이고..
이렇게 만들어진 규범은 인간과 무관하게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간다고 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공통된 방식으로 규칙을 위반하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낼 수
있음도 이야기하고 있네요.
먹을거리에 대한 터부는 문화마다 다를 뿐 아니라 시대마다 다른데
금기라고 하는 것이 우리 상식인 것 같지만
합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기존 합의가 깨지면 불안하고 말썽이 일어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합의가 지켜질 때에만 비로소 편안함을 느낀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의 현상과 딱 일치하네요
사회화라는 것은 1차는 가족안에서, 2차는 친구들과, 3차는 직업생활
4차는 양로원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가장 나인듯한 나도 결국 사회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네요
도덕과 윤리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윤리는 이성이 담당하고
도덕은 인간이 태곳적부터 지켜야 한다고 믿어 온 수많은 법들과 공통점이 있다네요
어찌보면 윤리와 도덕을 구분해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결국 이성과 태곳적부터 지켜온 법들이 관념화,생활화되어
더욱더 내제적 규범으로 사회를 통제해 왔구나 싶기도 해요.
더 좋게, 더 아름답게, 더 부유하게에서는
우리가 반드시 지속적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더 부유해지고, 더아름다워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인간은 현재 자신들에게 최고 규범인 성과와 경쟁에만 목을 메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이 최고 규범이 정말 옳은가 의문을 품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성과사회의 규칙을 배우는 곳이 바로 학교네요.
사실 한번도 학교가 성과사회를 지속적으로 규범화하고 절대화하는 곳이라고
생각해 본적 이 없는데…
맞는 말이네요.
과연 우리는 성과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의 서열에 설 것인가?
진정한 나의 행복을 찾기위해 앎을 알아갈 것인가?
정말 어려운 논제지만 생각의 거리가 정말 많네요.
현대 사회에서 삶은 경쟁의 연속이고
경쟁의 연속성을 지속화시키는 성적.
성적은 학생들에게 더 많이 배우게 하기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사회에서 누가 위에 있어야하고, 누가 아래 있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점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거라고 믿는다면
언제부터 였는지 한번쯤 생각해보길 바라네요
‘괜찮아’ 관용(톨레랑스)에 관하여
tolerare견디다. 참다의 뜻을 갖는 다라고 해요.
윗집에서 끊이없이 악기연주를 해서 불편하고 시끄럽지만 불만을 참는 것은 관용이지만
동성애자들에게 관용이 주어진다고 하는건
우월적 자기편의라는 거죠.
옆집에 동성애자가 산다고 내가 불편을 감수하고 견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애초에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 동등의 권리를 갖는다면
관용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는 자유로운가!!
대다수 뇌 과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개인의 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연현상에 대한 반응또한도 뇌의 네트워크적 연결 개폐가 우리를 결정하기 때문이라는데 이내용도 좀더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왜” 이러한 물음들에 생각하다 보면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나를 형성할 수 없게 될지 모르고
내가 나를 만들 것이다..
왜 라는 끊임없는 질문속에
무척 쉬운 주제였지만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문을 가져야하며
아하~ 하는 것들이 많았다.
조금은 청소년들이 보기에 어려운 주제다. 딱딱한 주제다.
하지만 슬쩍 넘어가기엔
사회의 다수의 일방성에 우리가 가둬지는
사회의 규범속에 내가 만들어지는 나를 거부한다면
좀더 나은 자유의지가 발현되는 사회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과제인듯하자.
왜!!!!
일상의 것들이 이렇게 어렵지!!!
우리가 우리인 것이 바로 규범이다.
내행동은 규범대로 이끌어진다를 거부하며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