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이다 ① 빨간 수염 사나이 하멜
출판사 : 비룡소
글 : 김남중
그림 : 강전희
책 받자마자 손에 쥐고는 저녁 먹는 시간조차 우리 준이를 멈출 수 없게 만든 <나는 바람이다>.
좋아하는 불고기를 앞에 두고도 접시보다 책에 더 눈이 가는 걸 보면
엄~~청 재미있나 봅니다.
어떤 책 속에 푹 빠져 있을 때, 다른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엄마도 느낌 아니깐~~~!
먹으면서 보겠다는 걸 가만 두었습니다.
워낙에 속독을 하는 아이라, 결국 식탁에서 다 읽어 버리더라고요.
그리고선 반응이 아주 가관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2권에서 계속 이어집니다>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상황이지요. ㅎㅎ
알아보니 이 책은 현재 4권까지 나와 있더라고요.
그 중 1권만 읽었으니 한창 재미있을 때 멈춰버린 저 기분,
아…얼마나 착잡할까요?
당장 2권을 주문하라며…난리~난리~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바통을 이어받아 <나는 바람이다>를 읽게 되었어요.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책어린이책’ 대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자존심>이란 책으로 올해의 예술상을 받으신 김남중 작가님.
작가의 말 맨 마지막 문장은 ‘바람이 불었다’ 로 끝나는데요,
작품의 제일 앞 문장이 바로 이 짧은 문장이네요.
바람이 불었다.
스스로 대양을 향해 나간 조선의 바닷가 아이 이야기지만,
바닷가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죠.
이 책은 바다의 이야기랄 수도 있고, 바람의 이야기랄 수도 있겠네요.
김남중 작가님은 세계사의 절반이 바람 속에서 생겨났다고 했고,
한국을 지나왔을 나가사키의 북풍을 맞으며 주인공과 첫 문장, 마지막 문장을 생각해 냈다고 해요.
주인공은 해풍이.
이름에서부터 작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바다와 바람의 만남, 한낱 여수 바닷가에 사는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
홀란드(네덜란드)에서 온 하멜을 만나게 되는 장면입니다.
허구지만, 하멜과 동인도회사 관련한 내용들은 역사적 사실에 근접한 듯 합니다.
하멜, 하면 하멜의 표류기를 떠올리게 되죠.
실존했던 인물이기에 왠지 해풍이마저도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란 착각에 빠지게 되네요.
큰 빚을 남기고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로 인해,
해풍이네 집은 무척 어려워진 상황인데요
하멜과 작은 대수와의 만남은 해풍이에게 의지할 누군가를 얻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동인도회사의 선원으로 대형 상선을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하게 된 하멜과 그 일행들.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으나 전라도 여수로까지 원치않는 유배를 가게 되었죠.
그들의 거처에 찾아가 배로 일 년을 가야 도착할 머나먼 홀란드, 라는 나라에 대해 듣게 되는 해풍이.
하멜이 들려주는 홀란드 이야기는 해풍이 입을 다물지 못 하게 만드네요.
작은 대수와 형 동생이라 부르며 가까워진 건 해풍이만이 아니었어요.
아버지의 빚 때문에 아버지 뻘 되는 홀아비 김씨에게 억지로 시집을 가야할 형편에 놓인 해풍의 누나도
작은 대수와 사랑에 빠졌거든요.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한 해풍이는 아는 척 하지 않고 몰래 집으로 돌아갔죠.
이런 상황과 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할만큼, 그리고 거기에 빠져들만큼 우리 준이가 컸구나 싶으니
기분이 참 야릇했습니다.
빚 때문에 풍비박산될 뻔한 해풍이네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탈출을 결심한 작은 대수가 항아리에 가득 담긴 돈을 해순이에게 주었거든요.
홀란드 춤을 추며 어릿광대 흉내를 내기도 하고, 구걸도 하며 모았던 돈 중에서
큰 배를 사고 남은 돈 대부분을 사랑하는 해순이에게 준 것이예요.
글도 무척 재미있지만, 이런 그림들이 또 책 읽는 재미를 더해 주는 것 같아요.
그림 덕분에 현장감이 느껴지더라고요.
큰 배를 타고 여수에서 탈출한 하멜 일행은 생각지 못 한 밀항자를 발견합니다.
이렇게 작은 바닷가 소년의 머나먼 바다 여행, 바람 여행이 시작되는가 봅니다.
한 배를 탔지만, 일본의 어느 섬에 도착해서는 하멜 일행과 헤어지게 된 해풍이.
여기서 또 하나의 우리 역사를 발견하게 되네요.
1597년 정유재란을 일으켜 조선에 쳐들어간 일본인들은
조선의 도기 기술자들을 포로로 끌고 갔고,
이들은 일본에서 도예촌에 모여 살며 조선말을 하고 조선 음식을 먹고 조선 옷도 입게 해 주었다죠.
어찌 보면 자치 구역을 보장해 준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격리 조치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낯선 일본에서 조선인 도공들을 만나게 된 해풍이.
그러나 수시로 일본인 관리들의 감시를 받는 곳이므로
그곳에선 위험부담을 안고 해풍이를 숨겨줍니다.
해풍이를 유달리 따르는 연수를 따라갔다가
해풍이를 숨겨주기로 했던 마을의 촌장이 기리시딴 임을 알게 되었는데요,
첨에 저는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기리시딴, 이란 단어가 툭 튀어 나와 고개를 갸우뚱 했답니다.
알고보니 크리스챤을 지칭하는 일본어 발음이었나봐요.
이 때만 해도 순교 당한 선교사들이 많을 때이고, 연수와 촌장 일행은 비밀리에 신앙을 갖고 있었죠.
기리시딴에 대한 논란으로 해풍과 연수 남매가 팽팽하게 대치된 상황에
별안간 무사들이 들이닥치네요.
어쩜 좋아~ 이런 중요한 순간에 이야기가 끝나 버렸으니,
우리 준이 소파 위에서 어쩔 줄 모르고 데굴데굴했던 모양입니다.
책을 읽고나서 하멜 일행의 실제 이야기가 궁금해져 검색을 해 봤더니
여수엔 하멜등대, 하멜전시관도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언제 기회가 되어 여수 여행 하게 된다면 준이 데리고 꼭 한 번 들러 보고 싶네요.
<나는 바람이다> 덕분에 우리 역사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될 것도 같아 무척 만족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