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비아까지 흘러오게 된 이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린 그 이유.
해풍이의 모험이라면 모험인 고생길이 시작되게 된 이유의 근원인 아버지.
아들이 자란만큼 아버지는 노인이 되고, 몸과 마음과 머리가 자란 아들은 아버지와의 해후보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더 낯설다.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었던 해풍이의 아버지가 드디어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해풍이의 입장에서, 해풍이의 시각에서 흘러오던 이야기는 어른들의 관점으로 옮겨가고, 여태까지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스케일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의 사실들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그토록 협조적이던 동인도 회사의 잔인한 실체라던지, 자바섬의 역사와 분열된 민족, 당시 향신료를 얻기 위해 아시아를 침략하던 유럽 여러나라들의 면모, 그리고 이러한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바섬 원주민들의 투쟁까지, 4권은 더욱 묵직하고 다양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마냥 철없고 약삭빠른 심부름꾼인 줄 알았던 아디의 반전이라든지, 아픈 과거때문에 박쥐처럼 이쪽 저쪽에 붙어 첩자 노릇을 해야했던 위나의 슬픔이라든지, 어린 나이에 뱃길에 올라 홀란드에서의 시간보다 조선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던 작은 대수, 남겨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고생한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에 동인도회사라는 거대조직에 맞서 싸우려는 하멜까지. 모두들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풀어보이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얼키고 설켜 흘러가고 있다.
책 말미,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바다와 섬들을 둘러보고 남긴 작가의 말을 보니 해풍이는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으로 떠난단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힘든 여정을 해풍이에게 안겨준 것을 미안해 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가 다 안쓰러울 지경이니, 작가는 오죽할까.
언젠가 어떤 책에서 가끔은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 속의 등장인물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데, 그래서 작가도 이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하던데, 해풍이야말로 그런 주인공이 아닐까. 10권 이상의 긴 이야기가 될 이 시리즈에서 해풍이는 과연 넓은 세상을 보고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을 지, 돌아와서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요즘 네티즌들이 흔히 쓰는 말로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말처럼 그 고생을 하고 넓은 세상을 만나고 조선으로 돌아와 조선 밖의 세상을 이야기해주어도 결국은 쇄국정책과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어버릴 조선을 이미 알고 있기에… 해풍이의 이 모험이 더욱 안쓰럽고 안타깝다.
날라리
음악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