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시 : 2012년 2월 7일 화요일 오전 11시
- 장소 :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
2012년 2월 7일, 오전 11시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김려령 신작 장편소설『가시고백』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습니다.
데뷔작『완득이』가 영화로 소개 되어 더욱 주목 받고 있는 김려령 작가가 2년 만에 신작 장편 『가시고백』으로 돌아왔습니다.
김려령 작가의 신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전 부터 취재진들로 간담회 장이 북적였던 날이었습니다.
간단한 포토타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간담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김려령 작가(이하 ‘김’): 안녕하세요 김려령입니다. 추운 날씨에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Q. 어떻게 지내셨나요? 영화가 워낙 흥행해서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 같아요.
김: 영화는 제가 찍은 게 아닌데 저한테 많이 여쭤보시더라고요. 『완득이』 영화가 나오면 천 번을 보려고 했는데, 마침 가시고백 퇴고 시기와 겹쳐서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열 번을 봤는데 이제 간담회 마치면 구백구십 번을 더 봐야 할 것 같아요. 워낙에 영화를 잘 만들어 주셨어요.
Q. 제목이 중간에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왜 『가시고백』으로 제목을 정하셨나요?
김: 원죄 같은 거예요. 자기를 콕 찌르는 원죄 같은 거, 고백하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고 자기 정체성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원죄이죠. 그 가시를 뽑아내지 않으면 속에서 곪아 터지는 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가시고백이라고 했는데, 잘 맞는 것 같아요. 가시는 결국 스스로 빼내야 하고, 고백이 쌍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인 만큼 옆에서 항상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겠죠. 그걸 담고 싶었어요.
Q. 도벽을 중심축으로 삼으신 이유는?
김: 이 소설을 한마디로 말하면 도둑 소년의 독백이 고백으로 가는 과정이에요.
우리는 타고난 기질이 있죠. 여기서는 도둑질인데, 그 기질을 어떻게 사용하는 거냐에 따라 다르거든요. 감쪽같이 빼고 숨기고 마술사는 관객에게 기쁨을 주지만, 감쪽같이 빼고 숨기는 도둑은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줘요. 도둑은 자기 능력의 잘못된 쓰임의 한 예죠. 이런 관념을 손에 잡히는 어떤 것으로 형상화시켜야 했어요. 그래서 도둑질하는 ‘행위’와 도둑질로 얻어진 ‘물건’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Q. 친구 물건을 상습적으로 훔치는데 도둑질이 언젠가 들통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읽었어요.
김: 범죄 소설은 아니에요. (하하하) 저는 여기서 범죄를 이야기하기보다 어떠한 경우에 손을 내밀고 싶은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누가 내밀어도 손잡지 않고 싶은 경우가 있는데, 물론 그런 아이도 나와요. 하지만 타인에 대해 염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손이 절로 가죠. 반면에 순수성이나 염치가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도 있어요. 범죄라기보다 혼자 아파하는 독백, 그것이 주변사람과 어떻게 합이 되어야 독백으로까지 갈 수 있는가 하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Q. 중간에 병아리를 키우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생님 경험담이신가요?
A. 고백이라는 테마를 마음에 떠올렸을 때였어요. 우연히 계란을 냉장고에 빼다가 이걸 내가 한번 부화시켜 볼까 싶었어요.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스티로폼으로 부화기를 손쉽게 만들 수 있더라고요. 소설에서처럼 저도 제주도에서 야생 유정란을 6개 구해서 그중 2개를 부화시키는 데 성공했어요. 아파트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굉장히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병아리가 직접 껍질을 톡 깨고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생명이 자기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며 깨고 나와야 하는 거잖아요. 그 모든 과정이 책 속에 빽빽하게 드러나 있진 않지만 그 쉬운 과정에 비해 얻는 게 너무 많았어요. 닭이 된 한 마리는 이모부가 잡아먹었지요. (웃음) 키운 사람은 절대 못 먹죠. 병아리가 알을 깨고 부화되는 과정이 주인공 해일이의 독백이 고백으로 가는 과정에 오버랩되었죠.
Q.『완득이』가 성공적이었는데 부감감은 없었는지?
김: 부담감은 없었어요. 그동안 8권의 책이 나왔는데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해서 썼거든요. 하지면 결과는 같을 수 없어요. 『완득이』 같은 경우 나온 지 벌써 3,4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저 그 책의 운명 같아요. 저는 최선을 다해 썼지만 나온지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작품도 있죠. 하지만 그 작품이 다른 책에 비해 절대 못하다고도 할 수 없죠. 제가 좀 둔한 성격이어서 부담감을 덜 느낀 것 같아요. 타고난 것 같아요.
Q.『완득이』 이후로 비슷한 서술을 하는 소설들이 나오고 있는데 본인의 스타일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지?
김: 제가 『완득이』 후에 쓴 소설이 『우아한 거짓말』이에요. 스타일이 달라서 많은 사람들이 한 작가가 쓴 거냐고 물었어요. 주변에서 『완득이』와 비슷한 소설들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작가 스스로가 벗어나야 하는 거 같아요. 아마 쓰는 본인들은 잘 모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자기 객관화, 자기 검열을 잘 해야 하겠죠.
Q. 항상 특이한 캐릭터를 잘 구축하시는데 구상하시는 과정은 어떤가요?
김: 제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60퍼센트는 현실에서, 40퍼센트는 작품의 흐름에 맞춰 성격을 부여해요. 그래야 땅에 발붙인 성격이 나오거든요. 문학 속에 나오는 인물은 그 자체가 상징이거든요, 어디에 있음직함 인물이지, 거기에 있는 인물을 그대로 가져와 쓰는 게 아니에요. 제가 하는 방법은 현실에서 60퍼센트만 가져와 그 간극을 메우는 거예요. 아주 낯선, 한 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를 만들어 본 적은 없어요. 작품마다 제가 좋아하는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 주인공을 하나씩 넣어요. 저도 모르게요. 하하하. 『완득이』에서는 이동주 선생님이었고, 『가시고백』에도 있어요. 제가 엉뚱한 사람을 좀 좋아하거든요. 『가시고백』에도 2012년 버전의 동주 선생님이 나오죠.
Q. 캐릭터를 60프로 정도는 실제에서 가져온다고 하셨는데 그런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내시는지요?
김: 책 속에 선생님이 나온다고 해도 제가 실제 현실에서 본 선생님을 그대로 옮긴 건 아니에요. 제가 언젠가 만난 생선 가게 아저씨 성격을 가져온 것일 수도 있죠. 제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모두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완벽하게 새로운 인물을 창조할 순 없는 것 같아요.
Q. 『가시고백』에 나오는 미연이는 교실 안에서 겉도는 아이로 나오잖아요, 사실 해일이는 머리보다 손부터 움직이는 도벽을 가지고 있는데도 친구가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잖아요. 반면에 미연이는 용서받지 못할 자로 나와서 미연이가 너무 구원불가로 그려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의도하신 건가요?
김: 미연이는 제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놔두었어요. 사람이 어떠했을 때 손조차 내밀기 싫은가, 그런 걸 미연이를 통해 보여 주고 싶었어요. 대척점에 둔 거죠. 해일이는 스스로 아파하고 스스로 벗어나려 하고, 순수성을 놓지 않았어요. 반면 미연이는 순수함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어요. 그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렇게 하면 누군가 손을 내밀려다가도 말거든요. 미연이의 경우 밑바닥에서도 자기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데, 그럴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싶었어요. 소설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인물이 작가를 움직이는 순간이 와요. 제가 죽이려고 해도 인물 자체가 스스로 간절히 살고 싶다고 말하죠. 작가가 인물을 창조해도 자연스럽게 인물에 끌려가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아마 미연이는 제게 그런 요청을 끝까지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인간의 바닥, 최소한의 염치, 그런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Q. 해일이는 아직 용서받지 못한 건가요?
김: 네, 청소년들은 아직 계산적 관계가 아니에요. 감성적 관계죠. 어른들이 볼 때 어떻게 걔랑 걔가 친구야, 걔랑 놀지마 등 이렇게 말하곤 하는데 그건 어른들의 시선이에요. 아이들은 아직 정치화가 덜 되고, 계산적이지 않죠. 앞서 고백이 쌍방향이라고 했는데 누군가 고백을 해도 왜곡하지 않고 받아 줄 수 있는 게 필요해요. 그 모습을 이 책 속에 담으려 했고요. 독자분들이 어떻게 봐 주실지 저도 궁금합니다.
Q. 십 대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특별한 이유?
김: 우리 아이들 때문에 관심이 있기도 하지만, 특정 나이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어느 나이대의 아이들부터 함께 고민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그 나이 때부터 꼭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의식이 있거든요. 『우아한 거짓말』에서 다룬 자살 얘기는 중학교 때부터 연령층을 잡았어요. 그 시기부터 많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 생각했거든요. 『완득이』에는 고등학생이 주인공인데, 이제 곧 사회에 나가야 하는 시기이니 우리와 섞여 살고 있는 사회 인물들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Q. 실제 선생님의 청소년 시절은 어땠어요?
김: 저는 친구가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다 친했어요. 만화방에도 다녔는데, 만화책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500원을 내면 볼 수 있는 성인물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그렇게 놀다가도 독서실을 한 달 단위로 끊었는데 거기 가서는 또 잠을 잤어요. 어릴 때 집이 가구 공장을 했는데, 거기서 사람들과 서슴없이 어울렸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동시상영 하는 영화도 많이 보고. 어떤 분들은 저를 문제아로 기억하고, 또 어떤 친구들은 저를 모범생으로 기억해요. 자기 영역 안에 함께 어울렸던 아이로 다 기억하는 거예요.
Q. 청소년 소설 작가로 불리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 청소년 소설이라고 도서관 서가에서 구분하듯 구분하는데 그러다 보니 저는 그게 오히려 다른 독자들의 진입을 막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실 그냥 소설인 거죠. 이렇게 구분 짓다 보면 어느 순간 청소년조차도 안 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이게 딱 너희 거다, 라고 하는 게 어떤 경계막을 만들어서 독자의 입출입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명확하게 규정을 짓는 거에 찬성하는 편은 아니에요. 제가 쓰는 소설이 청소년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거죠.
Q. 십 대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는?
김: 저지르라는 거예요. 십 대가 가장 예쁘고 부러운 건 방향성이 가장 뚜렷이 정해져 있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에요. 뭐든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꿈이 바뀌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없는 게 문제거든요. 그리고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상대를 밟지 말고 손잡고 갈 수 있길 바라요.
혼자 아파하지 말아야 하고요. 청소년기는 공격적이지만 스스로 많이 아파하는 시기이기도 해요. 부모보다 친구가 더 힘이 되는 때이기도 하죠. 정말 바닥이 아니라면 주위에 손잡아 줄 친구가 있다고 믿어요. 고백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에요. 고백은 자백이나 자수하고는 달라요. 상대가 충분히 들어줄 마음이 생겼을 때, 유정란을 부화시키는 과정처럼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수정됐을 때, 하는 거죠.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요. 어른도 마찬가지죠.
Q. 최근에 학원 폭력과 관련된 문제가 많은데, 보시면서 느낀 바가 어땠는지?
김: 어제 대책 발표가 난 걸로 알고 있는데,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보복범죄를 했을 때 가중처벌을 한다, 라는 조항이 있더라고요. 저는 학생인권조례와 정부 대책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부에서 큰 틀을 짠 것 같긴 하지만 현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살짝 회의적이에요. 학생기록부에 남긴다, 이런 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미 벌어졌을 때 그것에 대한 처벌, 사후조치만 강조해서 만든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예방조치가 없어요. 피해자나 가해자나 둘 다 보호되어야 하는데, 그 방안이 없는 것 같아요.
학교 폭력은 철저하게 지양되어야 하는 거죠. 요즘엔 폭력 조직처럼 외부에서도 개입을 하다 보니 이걸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경우로 보든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에요. 학교 집 사회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 제각각 움직여서 안 좋은 사건이 계속 반복되고 겪는 나이도 어려지고, 그러는 거 같아요. 가슴이 아프죠.
한 시간을 가득 채운 문답의 시간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김려령 작가의 신작 『가시고백』에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