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 역사동화상

당선작

대상 : 김도영 『여름에 내리는 비, 잠비』

본상: 상패
부상: 대상 1,000만 원(선인세)


심사위원

예·본심: 최나미(동화작가), 김남중(동화작가)


심사 경위

제4회 비룡소 역사동화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6월 30일 원고를 최종 마감하여 예·본심을 진행한 역사동화상에는 총 46편이 접수되었습니다.

예·본심에 동화작가 최나미, 동화작가 김남중 님을 위촉하였습니다. 먼저 응모작을 각각 위원들에게 보내어 심사한 결과, 총 5편을 본심작으로 천거, 본심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지난 8월 30일 본사에서 심사위원이 함께 모여 논의한 결과, 『여름에 내리는 비, 잠비』를 대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심작

  • 『너는 사랑옵다』
  • 『키네마의 빛』
  • 『가야의 바달』
  • 『화장하는 소년』
  • 『여름에 내리는 비, 잠비』

심사평

역사의 사전적 정의는 ‘인류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의미 있는 과거 사실들에 대한 인식 또는 그 기록. 혹은 어떤 일이나 현상, 사물이 진행되거나 존재해 온 과정이나 추이’이다. 요즘이야말로 여느 때보다 ‘인식 또는 기록’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체감하는 시기다.
의미 있는 ‘과거의 사실’을 역사동화로 구성하기에 앞서 당대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작품의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이번 응모작들에서도 그 과정을 거친 진중함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작가가 소재를 선택하고, 취재하고, 해석하고, 서사를 구성하고,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필력까지 갖추어야 작품 하나를 온전히 완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응모작 하나하나가 허투루 읽히지 않았다. 작품에서 다루는 과거의 사실을 확인하고 작품성과 함께 작가의 역사 해석 방식까지 고민해야 하기에 심사 과정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올해로 네 번째가 되는 비룡소 역사동화 공모전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상상력을 넘나드는 시도를 보여준 응모작들이 많았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었다. 사진이나 영화, 화장 등의 독특한 소재로 특정한 과거의 모습을 의미 있게 구현한 작품들과 더불어 프러시아에서 페르시아까지, 혈거인 시대에서 미래까지 넘나들며 기존 역사동화의 경계를 넓혀가는 응모작들도 있었고 실제 사건을 시간적으로 재편성하는 판타지적인 시도를 한 응모작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사 과정에서 주목한 것은 기본기의 토대다. 기발한 상상력이 아무리 돋보여도 작품의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독자를 감동시킬 수 없다. 탄탄한 기본기에 독특한 상상력이 배어들었을 때 모두가 기다려온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응모 작품들을 오래 정독하며 고민한 끝에 누가 언제 읽어도 작품의 울림이 상당할 작품 다섯 편을 찾아 본심에 올렸다.

『너는 사랑옵다』
일제 강점기, 아버지가 일경의 총에 희생되었지만 남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담임 시바타의 졸개가 되어버린 용호는 철저한 황국신민이 되는 것만이 이 험한 시대를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친일파의 변명으로 보이나 용호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며 역동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작품은 일제 강점기를 다룬 작품들이 가지는 일정한 패턴과 전형적인 결말에 갇혀 곧 빛을 잃는다. 서사가 감상적으로 읽힌다는 점, 철저한 황국신민이 되고자 하는 의욕과 일본인에 의해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엄마와 할머니의 분노 사이에서 용호의 내적 갈등이 일관되게 그려졌는지 확인해봐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라는 강력한 프레임의 존재를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가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근현대사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작품은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정석적인 역사의 복기이겠지만 작품 자체가 거칠고 새로운 매력이 없다면 그 속에 바른 역사의식이 숨어 있어도 독자들의 마음에 전달될 가능성은 요원하다.

『키네마의 빛』
일제 문화 통치기인 1920년대의 극장을 배경으로 당시의 공간과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재미가 상당하다. 인천에서 엄마와 동생과 사는 해경이 애관극장 청소부로 취직하면서 영화에 대한 열망을 갖고 꿈을 이루게 되는데, 주인공 해경의 서사를 차치하고라도 1920년대 인천에 대한 세세한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특히 기존의 역사적인 기록을 실제로 차용하거나 일제 강점기에서 우리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을 그려내는 새로운 시도 역시 전형성에서 벗어났다는 면에서 눈길을 끈다. 그러나 해경의 서사에 납득할 만한 갈등 하나 없이 순조롭기만 한 점은 생생하게 묘사된 시대상을 오히려 의심하게 만든다. 독립운동을 하러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와의 이별과 죽음이 단 두어 줄로 묘사될 만큼 시대적, 국가적 문제를 외면하고 영화관을 둘러싼 잔잔한 에피소드 위주로 작품 전체를 채우는 시도는 당대에 대한 역사의식의 유무 문제를 촉발할 수밖에 없다. 시대의 그림자가 사라진 인공의 빛으로 밝혀진 세트장을 보는 느낌이다. 중일 전쟁 중인 상황에 근로보국대와 부인동원령과 육군지원령이 속속 떨어지는데 ‘구름에 달 가듯이’ 촬영기사가 되고, 영화 투자를 하는 개인적인 밝은 미래를 누가 꿈꿀 수 있을까?

『가야의 바달』
우리 역사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가락국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가락국 상단의 아들인 바달의 성장담과 더불어 세리지, 어지지, 울연이나 무연 등 등장인물 각각의 서사가 균형감 있게 그려졌다. 전복적인 성역할을 매력적으로 다뤘고 철기방, 순장 등 전반적으로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의 현장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구성했는데도 군데군데 개연성에서 빈 고리들이 보인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왜 아버지와 아들이 피난하자마자 엄마와 딸이 별동대로 나아가 전멸하고 기다렸다는 듯 대장군은 항복을 해야만 했을까? 국제전적인 전황과 아이들의 성장과 국가의 명운이 달린 철갑의 의미가 한 작품 안에서 따로 노는 느낌이다. 가락, 안라, 반파국이 뭉치면 신라도 문제없을 한 나라라는데 통일에 대한 시도나 고려가 보이지 않는 가락국 내부의 한계도 궁금하다. 전형적인 역사동화의 패턴을 따라가지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느껴지지 않는다.

『화장하는 소년』
조선말 재인들인 남사당패를 생생하게 그려낸 소재 장악력이 돋보였다. 놀이패에서 어름사니가 되길 바라는 서천댁의 바람과 달리 여자들의 영역인 화장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든 소년 강태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천민이나 양반 가릴 것 없이 공평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화장의 의미를 부각시킨 주제 의식이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으나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속하게 된 강태의 행동은 주체적으로 보이지 않아 인물의 동기를 의심하게 만든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도전과 이에 따른 사회와의 불화까지 이야기가 확장되었더라면 더 힘이 실렸을 텐데 반복되는 서천댁과의 갈등으로 국한되다 보니 작품의 몰입도가 떨어졌다. 불안정한 시대에서 희망을 찾아낸 결말은 보기 좋았다.

『여름에 내리는 비, 잠비』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의 이야기야 너무도 유명하지만 여기에 얼자 규안이의 사연이 더해져 새로운 결의 동화가 나타났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왕세손임에도 수많은 정적들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 이산, 얼자로 태어나 집안의 구박덩이인 규안은 서로에게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들이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두 소년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여름날 잠을 부르는 빗소리, 잠비 소리처럼 천천히 독자에게 스며든다. 더욱이 역사동화에서 주인공 캐릭터는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제 앞에서 자칫 평면적으로 그려지기 쉬운데 이 작품에서의 규안은 자기 처지에 대한 현실적 인식과 욕망 사이에서 생생한 감정을 드러내는 입체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산을 만나지 않았다면 면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 얼자인 규안의 입을 빌려 사회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적서 차별의 본질까지 한 걸음 더 나아가 짚어볼 수 있었다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스스로 살아남고 주위 인물들을 살리기 위해 역사적 인물 정조가 된 이산의 이야기야 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산이 가장 어려웠을 때 함께했던 규안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의 장단점을 놓고 긴 논의를 이어간 끝에 『여름에 내리는 비, 잠비』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거대한 역사 담론이 아니라도 시대적인 이해와 인물의 개성이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훗날 어떤 역사동화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어린이 독자들도 이 작품을 마음으로부터 즐기게 되기를 바라본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당선작처럼 새로운 바람으로 멀리멀리 불어가기를 기대한다. 심사가 끝났지만 응모작 속 등장인물들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용호, 강태, 해경, 바달, 규안, 그 밖에 크고 작은 비중으로 살아온 많은 인물들이 그려낸 하루하루의 이야기가 모두 의미 있는 기록이다. 아쉽게 당선에 이르지 못한 응모 작가들에게는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드러나지 않은 굳건한 바닥이 있기에 역사의 강은 흐르고 있다. 결국 물길을 바꿀 뜨거운 열정을 부탁드린다.

심사위원: 최나미(동화작가), 김남중(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