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 역사동화상

당선작

없음

심사위원

예·본심: 최나미(동화작가), 김남중(동화작가)


심사 경위

제3회 비룡소 역사동화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6월 30일 원고를 최종 마감하여 예·본심을 진행한 역사동화상에는 총 42편이 접수되었습니다.

예·본심에 동화작가 최나미, 동화작가 김남중 님을 위촉하였습니다. 먼저 응모작을 각각 위원들에게 보내어 심사한 결과, 총 4편을 본심작으로 천거, 본심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지난 9월 8일 본사에서 심사위원이 함께 모여 본심에 오른 총 4편을 논의하였고, 오래 심사숙고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수상작을 선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심작

  • 『달모시 꽃』
  • 『바람을 탄 소리』
  • 『기차를 그리는 아이』
  • 『귀신이 사는 섬, 귀옥도』

심사평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담긴 동화를 찾아서

올해로 비룡소 역사동화상이 3회를 맞았다. 1, 2회 공모 수상작들이 속속 출간되어 독자와 평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어 순조롭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평이다.
동화문학에서 역사동화가 이미 부동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룡소 역사동화상을 제정한 의미는 역사동화가 보여 주는 의미와 재미가 특별하기에 전용 구장을 신설해 리그를 명문화하려는 응원, 역사동화라는 장르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시도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현대사에 대한 불협화음이 불거지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어린이 문학계의 시의적절한 대응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도에 걸맞게 이번 심사에서 역사동화의 다양한 변주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사료가 충분한 근현대사에 그치지 않고 개연성과 당위성에 기반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부족한 사료를 채워 나가야 하는 삼국 시대 이전을 다룬 작품들이 다수 보여 일견 흥미로웠다. 패기 넘치는 시도는 언제나 환영이다. 특히 결말이 예상되기 쉬운 역사동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번 응모작들을 재차 살펴보면서 전반적으로 일정한 경향을 확인했다.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의 부재, 흥미 위주의 소재 발굴, 소재의 매력에만 매달린 스토리, 스토리를 끌고 나가지 못하는 평면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다수였다. 전체적으로 작품 수준이 전년만 못했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는 당대성의 결여가 눈에 띄었다. 그 점이 역사동화의 핵심적인 가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현상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앞서 역사동화의 정의와 역할에 대해 오래 논의했다. 역사를 톺아보는 이유는 과거를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격동하는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를 이어 주는 연속성이라는 본질을 통찰하기 위해서다. 역사동화를 통해 과거를 주목하는 이유는 어린이 독자가 현재의 기원을 인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기 위해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명백한 현대사의 해석을 두고 심각한 갈등에 직면해 있다. 불행한 현실에서 작가의 역할은 오히려 커진다. 역사동화를 쓰는 작가들에는 과거를 통해 당대의 문제를 조명하고 이에 따른 현재의 해법을 통해 미래를 제시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아쉽게도 이번 응모작들 대부분에서 그러한 고민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본심에서 논의한 작품은 네 편이었다.

『달모시 꽃』
이 작품은 진한의 역사와 전설을 구체화한 시도가 돋보였다. 역사동화 대부분이 사료가 풍부한 시대에 집중되어 있는데. 『달모시 꽃』은 작품 대부분을 빈약한 사료를 방대한 상상력으로 채운 규모 있는 작품이었다. 왕국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욕망대로 움직이고 갈등하며 발전하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큰 스케일로 삼한시대를 그렸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다. 특히 권력에 대해 솔직한 욕망을 보이는 여성 주인공이 매력적이었다. 역사동화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에 분명히 일조할 만한 시도인데 성인 독자 취향의 문체와 갈등의 무게 중심이 전체적으로 너무 분산되어 어린이 독자를 몰입시킬 흡인력이 떨어지는 점은 아쉬웠다. 성인 독자의 집중력으로 몇 번을 읽어야 나름의 재미가 느껴지는 점은 어린이 문학에 있어 치명적이다. 작가가 상상의 힘만으로 한 세기에 가까운 역사의 구조물을 쌓아 올린 건 주목할 점이지만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가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하는 동화의 특성을 좀 더 감안해야겠다.

『바람을 탄 소리』
고려 시대 만적의 난이 일어나서 진압당하기까지의 과정을 어린 노비들의 시점에서 그려낸 작품이다. 노비라는 운명을 일찌감치 받아들이고 서로 일등 노비임을 자부하며 주인의 세력을 뽐내던 어린 주인공이 가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치며 신분의 굴레에 의문을 품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바꿔 나가려고 시도한다는 내용은 비단 역사동화뿐 아니라 모든 문학 작품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몰입감을 주고 설득력이 넘치는 구성 방식일 것이다. 이 작품은 노비들의 일상을 그려내는 데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정작 만적의 난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그려져 있어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초반에 당찬 매력이 인상적이었던 달님이가 너무 일찍 소비된 것처럼 곳곳에 시대상을 전하는 노비들의 비밀 무덤, 무신들의 폭정, 노비들의 모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서로 융합되어 확대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동력이 되는 도련님과 개남이의 관계마저 크게 힘이 실리지 않아 아쉬웠다. 무인정권이든 무신정권이든 노비의 입장에서는 부딪칠 수밖에 없는 거대한 벽이며 이를 시도했던 노비들의 의기는 자본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울림을 전해 줄 수 있었는데, 그 가능성을 다 보여 주지 못한 안타까움이 컸다. 우리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꺼내려다 만 느낌이다.

『기차를 그리는 아이』
대한민국의 미래는 다문화 사회로 방향이 정해진 듯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더 치밀한 계획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미래를 준비하고 사회의 그늘이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실행해야 하는 시점이다. 오랜 세월 동안 단일 민족을 자부했던 우리의 정체성이 다양성으로 변화하는 지점에서 3대에 이르는 고려인 가족의 한국 귀환과 적응을 다룬 이 작품의 의미는 남다르다. 지난 세기 우리는 역사적 비극에 떠밀려 세계 각지로 흩어져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경험했지만 다행히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력 상승은 전 세계 재외국민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 모국으로서 구심점 역할을 해 주고 있다. 그렇기에 이산의 과정을 다시 돌아보는 건 큰 의미가 있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는 되풀이된다는 역사의 변하지 않는 원칙 때문이다.
작품 전반의 주되 내용이 되는 고려인 3세 아이들과 이를 맞는 한국의 친구들이 어린이다운 친화력으로 점점 친해지고 민족적 동질성에 힘입어 소통과 화합을 이루는 과정을 보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고 기대가 된다. 그런데 현재의 아이들을 다룰 때 느껴졌던 활기는 후반부 과거의 아픔을 안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지난 삶을 보여 주는 방식에서 힘을 잃는다. 고려인이 중심에 선 작품에 대부분 등장하는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구성이 가지는 문제점인데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다뤄져야 할 소재임을 감안할 때 재외국민이 지나온 현대사의 아픔을 다루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해 보인다. 이 시도가 성공할 때 우리가 가졌던 이산의 역사는 오히려 우리 국민이 세계에 끼치는 문화 경제적 영향력의 받침대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귀신이 사는 섬, 귀옥도』
최근 귀신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트렌드로 여겨질 정도로 여기저기 눈에 보인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소재인 건 분명한데 피로도와 기시감의 벽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 아쉽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이 작품을 두고 오래 논의할 만큼 장점도 있었다. 탐라 근처에 있는 비밀섬 귀옥도라는 공간과 거기 살고 있는 인간적인 귀신들이 매력적이었고 귀신들의 제삿밥을 위해 몰래 탐라를 오가는 여울이라는 주인공이 독특했다.
제주라는 지역이 가지는 특수성을 일반화시킨 점도 큰 장점이었다. 일반적으로 특정 지역의 설화와 전설을 작품화하면 작가의 애정에서 비롯한 의욕 과잉이 작품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은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 지역성을 살리면서도 독자들을 무리 없이 전설과 설화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다만 악의 축이 되는 탐라 목사의 존재가 너무 늦게 부각되어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후반으로 급히 쏠린 점이 아쉬웠다. ‘신이 되겠다.’는 목사의 비현실적인 목표도 세계 정복만큼 엉뚱하고 부담스럽게 작용했다. 역사적으로 제주지역에 특히 가혹했던 중앙정부의 수탈이 작품 내에서 더 부각되고 이에 더해 목사의 욕망이 현실적으로 표현되었더라면 후반부의 전개가 무리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듯하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마지막에 힘을 잃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화나 민담은 역사보다는 구전문학의 영역이지만 우리 백성들의 목소리와 염원이 담겨 있다. 역사동화가 이를 끌어안으려면 이러한 민중의 염원이 구비 문학으로 전승되게 된 배경에 주목하고 역사적인 접점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이 귀옥도의 공간 설정만큼 수탈당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더해 중심을 맞췄다면 역사동화의 범주에 드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감귤나무로 수탈당한 제주민들의 이야기가 다뤄지기는 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점에서 흥미 위주의 방향을 선택해 역사동화의 범주를 벗어난 점이 결정적인 아쉬움으로 남았다.

오랜 논의 끝에 올해는 수상자를 내지 않기로 하였다. 안타깝지만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에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훌륭한 작품을 보여 주는 작가가 공모전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소재의 매력에 매달리지 말고 소재를 장악하여 과거의 문제를 통해 현재의 해법을 찾아 주는 시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유연하게 보여 주는 흐름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역사동화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아쉽게 쉬어 가는 올해의 결과가 내년에는 더 큰 열매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심사평을 맺는다. 귀한 원고를 보내 주신 응모자분들에게도 감사와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최나미(동화작가), 김남중(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