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 사각사각 그림책상

수상작 및 작가

당선작

대상: 조은지 『내가 없는, 내가 있는』

시리즈 비룡소 창작 그림책 74 | 글, 그림 조은지
연령 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22년 3월 25일 | 정가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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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이수지(그림책 작가), 경혜원(그림책 작가)


심사 경위

제1회 사각사각 그림책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3월 31일 원고 응모를 마감하여 예·본심을 진행한 사각사각 그림책상에는 총 131편의 작품이 접수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그림책 작가 이수지, 경혜원 님을 위촉하여 4월 29일 비룡소 본사에서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심에 오른 총 5편을 논의한 결과 『내가 없는, 내가 있는』을 대상작으로 최종 선정했습니다.


본심작

『내가 없는, 내가 있는』
『놀이터』
『포도포도』
『풍선』
『모자를 쓴 달님』

심사평

 새롭고 즐거운 그림책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고 기쁜 마음이다. 그중 대상으로 선정한 작품을 포함해 꼭 짚어 두고 싶었던 인상적인 응모작은 다음과 같다.

 

『내가 없는, 내가 있는』

이견 없이 대상으로 선정한 『내가 없는, 내가 있는』은 제목부터 흥미롭다. “있다, 없다”는 항상 신비로운 까꿍 놀이다. 거기에 있었던 것이 다음에는 없고, 없었는데 다시 있다는 이 단순한 놀이는 언제나 아이들을 기쁘게 한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내’가 없거나 있는 장면을 상상하고 비교한다. 내가 있음으로 인해 풍경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내가 있음으로 인해 내 곁의 사람들과 세계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있다가 없는 것만큼, 없다가 있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다. 내가 없는 욕실을 유유자적하던 거미는, 내가 등장하는 순간 오던 길로 줄행랑친다. 내가 없는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재미있는 책’은 그저 평범한 책일 뿐이지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재밌어 하는 내가 있음으로 인해 진짜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 된다. 경쾌하게 짧은 상황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내가 없는/있는 꿈’을 넓게 펼쳐 보여 여운을 주는 방식도 좋다. 재치와 따뜻함이 리듬감 있게 차곡차곡 잘 쌓인 책이다.

『놀이터』

그림책의 페이지는 좁지만 광활하고, 납작하지만 끝없이 깊은 공간이기도 하다. 『놀이터』는 그 공간을 새까맣게 칠해 두고 자유자재로 누빈다. 새까만 공간에 네모 문이 열리면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밤의 놀이터가 시작된다. 빛을 비추는 만큼만 공간과 물체가 드러나는 방식이 흥미롭다. “시시해요.” 라든가, “야호! 이 정도는 돼야죠!”라는 두 주인공의 말투가 호쾌하다. 크레인에 달린 그네는 달에 닿을 정도로 휘어지고, 시소는 둘을 우주로 날려 보낼 만큼 작가가 공간을 다루는 상상력 또한 호쾌하다. 이쯤 되면 시리즈다. 더, 더, 더··· 센 다음 편 또한 기대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포도포도』

‘포도’라는 단어의 발음은 얼마나 ‘포도’스러운지. 물론 작가는 포도를 꼭 ‘포도’하게 먹지 않고 ‘파도’하거나 혹은 ‘페도’하면서 먹어도 좋다고 한다. 이렇게 그림책을 시작하면 거칠 것이 없다. 포포포포포포포포포 먹으면 씨가 도도도도도도도도도 나오질 않나. 그렇게 도도도도 나온 씨는 턱에 몽땅 달라붙는다. 심사하는 동안 절로 당이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계속 큭큭 폭폭 웃으면서 책을 넘겨 보았다. 이런 재미있는 책이라니! 아이들이 쪽쪽 빨아먹을 책이다. 그림책은, 그래, 재미있어야 한다. 유쾌한 작가의 엉뚱한 전개를 응응응응응원 한다. (‘응’이 포도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풍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자 떠난 아이는 멀리, 높이 떠나도 자기 집의 가장 높은 지붕 끝에 매달려 있어 어디서든 보이는 커다란 풍선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날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아이에게 늘 필요한 견고한 지지와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가 소중하다. 반면 이 책의 구성은 너무 평이하고, 아이가 도달하는 새로운 장소와 경험은 전형적이며 시각적 표현 또한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소중하고 아름다워서 꼭 언급하고 싶었던 책이다. 언제든 돌아갈 곳을 표시해 주는 빛나는 풍선이라는 메시지만큼 이야기의 표현과 전달의 방식이 함께 따라가 주면 좋겠다. 그림책에서 시각적 표현 또한 메시지이므로.

이수지(그림책 작가)

점점 한국의 그림책 독자층이 성인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림책=유아 책’ 이라는 선입견이 깨지고 독자층이 두터워지는 것은 작가로서 기쁜 일이다. 그림책의 주제와 표현도 다양해지며 더 많은 성인 독자들이 그림책 시장에 유입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로 오래전부터 그림책만이 지켜 왔던 고유의 기능-우리 아이의 첫 책이 되는 그림책, 유아를 책의 세계로 이끄는 친절한 안내자로서의 그림책-을 생각할 때 상대적으로 유아를 위한 그림책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 게 아닌지 우려도 된다. 유아 독자를 위한 그림책상이 제정된 것이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상작으로 선정한 『내가 없는, 내가 있는』은 유아를 위한 그림책에 충실하면서도 모든 연령에 어필할 수 있는 그림책의 매력을 두루 보여 주었다. 주인공 화자의 말에 따라 내가 없는 장면, 내가 있는 장면이 좌우 대칭으로 펼쳐지며 화자가 공간과 사물에 느끼는 주관적 감정을 간명한 대비를 통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 유아 그림책이 보호자에 의해 유아에게 읽히는 책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반복되는 분명한 문장들과 다른 그림 찾기처럼 펼쳐지는 장면들은 그림책을 보는 유아와 읽는 보호자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책을 읽은 유아 독자들이 그림책의 텍스트를 책 밖으로 끌어내 바로 자신의 상황에 대입할 수 있는 연출도 좋았다. 일상의 모든 일들이 내가 있음으로 의미를 갖고 활기를 찾는다는 발상은 지극히 유아적이면서도 지극히 문학적이라 어린이 문학이면서 모두의 문학인 그림책의 특질에 잘 부합하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다만 예측이 되는 식상한 전개, 개인적 경험을 책의 장면으로 객관화하는데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몇몇 장면들이 있어 조금의 아쉬움이 없진 않다.

 『놀이터』는 모두가 잠든 밤, 두 주인공이 몰래 놀이터에 나와 한바탕 한밤의 유희를 즐기는 이야기다. 까만 배경에 그래픽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보통의 놀이터에 만족하지 못하고 익스트림 스포츠에 버금가는 놀이를 하는 주인공들의 상상이 유쾌하다. 흔치 않은 스타일과 세련된 연출이 돋보였지만 초반부의 지나친 생략이 책의 맥락을 쉽게 따라가기 힘들게 했고 극의 해소를 담당하는 결말보다 이전 그네 장면이 더 호쾌하게 느껴졌다.

 『포도포도』는 포도를 먹는 주인공의 다양한 표정만으로 거의 70페이지를 채운 책이다. 그림책으로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긴 길이지만 유머 있는 연출로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포도를 먹는 여러 표정과 방법, 포도를 먹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산물들-씨, 껍질-을 가지고 리드미컬한 장면을 구사해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포도와 의성어로만 이루어진 텍스트를 그래픽적으로 연출해 텍스트까지 그림으로 읽히게 하는 시도도 좋았다. 마지막에 포도 때문에 보랏빛으로 물든 이를 보이며 씨익 웃는 주인공의 모습은 유머러스하지만 이게 다인가 하는 허무 개그 느낌이 나기도 한다. 일상의 사소한 관찰만으로도 이야기는 될 수 있지만 이를 독자에게 책이라는 담음새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장면에서 보이는 것 이상의 메시지가 필요해 보인다.

 『모자를 쓴 달님』은 둥근 달님이 자신의 몸을 떼어 숲속 친구들의 필요를 채워 주고, 거의 사라진 달님의 몸이 안타까운 동물들이 다시 자신이 지닌 노란 것들로 달을 채워 준다는 내용이다. 서로 주고받으며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고전적인 이야기를 따뜻한 그림으로 풀어냈다. 정성스러운 작화에 눈길이 간다. 다소 뻔한 내용과 호불호가 갈리는 그림 스타일이 아쉽지만 기본적인 서사를 충실히 지키며 거의 완성된 더미를 만든 작가의 노력을 격려하고 싶다.

경혜원(그림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