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 사각사각 그림책상

수상작 및 작가

당선작

대상: 나비야씨 『100곰』

시리즈 사각사각 그림책 49 | 글, 그림 나비야씨
연령 2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22년 12월 2일 | 정가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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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유문조(그림책 작가, 번역가), 이지원(그림책 기획자, 번역가)


심사 경위

제2회 사각사각 그림책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3월 31일 원고 응모를 마감하여 예·본심을 진행한 사각사각 그림책상에는 총 15편의 작품이 접수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그림책 작가 및 번역가 유문조, 그림책 기획자 및 번역가 이지원 님을 위촉하여 5월 3일 비룡소 본사에서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심에 오른 총 3편을 논의한 결과 『100곰』을 대상작으로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본심작

『제법인 개구리』
『행진』
『100곰』

심사평

새로운 책, 그것도 신인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일은 마음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다. 코로나의 여파인지 출품작이 전년에 비해 십분의 일로 줄었다고 하여 작품 선정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사각사각’거리는 신선하고 상큼한 이미지의 작품들이 있었다. 그중에 다음 3편을 선정하여 본선 심사를 하였다.

 

『제법인 개구리』
이제 막 개구리가 된 작은 개구리의 성장 이야기이다. 작은 개구리는 다른 큰 개구리들의 능력을 감탄하고 부러워하다가 뱀과 맞닥뜨리는 위기를 맞이하고, 늘 부러워하던 큰 개구리들의 능력을 자신도 발휘하여 위기에서 탈출한다. 공중에서 유유히 먹이를 잡아먹는 여유까지 부리며, 성장한 자신을 스스로 기특해 한다. 이 그림책은 이야기의 구조가 탄탄하다. 화면의 구성에 있어서도 다양한 변화를 주어 화면 전개가 지루하지 않게 이어진다. 특히 상황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들의 살아 있는 표정들은 이야기에 생동감을 주고, 보는 재미를 더한다. 화면 구도와 전개는 리듬감은 잘 살려 표현되었으나, 그림책의 완성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림의 표현이다. 그림 묘사에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그것들이 얼마나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색감도 마찬가지이다. 배경과 각각의 캐릭터 묘사는 열심히, 과할 정도로 표현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색의 조화를 생각했을 때는 아쉬운 점이 많다. 전체적으로 그림이 거칠고 날것의 느낌이 난다. 그림책은 각 화면의 완성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림책 전체의 조화가 더 중요하다. 시각적 표현의 완성도를 좀 더 높여야 할 작품이다.

『행진』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이어서 동물들이 행진을 한다. 동물들의 모습과 전체적인 색감이 사랑스럽다. 그러나 동물들이 왜 행진을 하고 있으며, 왜 행진의 순서를 정해야 하는지 이야기의 중심축을 읽을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아이가 동물 모형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었다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단순히 아이가 노는 모습을 열거하는 것만으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장난감 동물들의 캐릭터를 찾고 각 캐릭터의 성격을 활용하여 화면의 내용을 달리하려고 했으나, 탄탄한 이야기의 구성 없이 열거되는 캐릭터는 별 의미가 없다. 동물들의 순서만 바뀌었지, 똑같은 구도의 일곱 화면의 연속적인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동력을 잃게 한다. 그림책은 독자가 페이지를 넘겨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시각적으로도 내용으로도 독자가 페이지를 넘기며 작품에 빠져들게 할 동력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작품이다.

『100곰』
표지에 물에 반쯤 잠긴 흰색 숫자 100과 빙산 조각에 오롯이 서 있는 흰곰의 그림이 이 책의 제목이다. 숫자와 그림으로 제목을 만들었다.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백곰’. 숫자와 그림의 의미를 읽으면 백 마리의 흰곰과 작아진 빙산이다.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속표지에는 ‘100곰’이라고 쓰여 있다. 역시 100마리의 곰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본문으로 들어가니 숫자가 1에서부터 10 그리고 100으로 전개된다. 숫자에 따라 그 수만큼의 곰이 등장하여 유아를 위한 숫자 책인가 싶지만 화면 전개의 흐름과 결말은 단순한 숫자 놀이책만은 아니다. 현실의 경고가 무섭게 다가온다. 기온 상승로 인해 북극의 빙산과 백곰이 모두 사라진다는 무거운 결말의 책이다. 표지의 제목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무거운 주제를 청량감이 도는 그림과 텍스트로 무겁지 않게 엮어 내고 있다. 단순한 선과 면과 색으로 표현된 그림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짧은 텍스트는 그림 보는 방향을 지어 줄 뿐이다. 충분한 내용을 읽기 위해서 독자의 눈은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향하고, 이야기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림이 표현하는 내용을 찬찬히 읽어야 한다. 형태에서, 색에서, 선에서, 구도에서.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이지만 그 안에서 읽어 내야 할 이야기는 많다. 그림책의 그림과 글의 역할이 정확하게 나누어지고 있는 지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읽으면서 찾게 되는 그림 텍스트의 의미들이 하나씩 보태져,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깊어지는 책이다.
그림책의 전개가 숫자 놀이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도 특이하다. 숫자 놀이라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무거운 주제에 유아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막연하게 전개될 수 있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숫자로 명확하게 단락 지어져 상황이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하나, 둘, 셋, 넷 세어 보던 곰들이 마지막엔 모두 없어지고 0이 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독자는 무엇보다도 결말의 메시지를 강하게 느낄 것이다. 한편 유아 책인데 ‘이런 결말을?’이란 생각도 들지만, 아이들도 급박한 지구의 환경을 알고 깨달아야 할 작금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작가의 아이디어와 표현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당선작으로 선정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유문조(그림책 작가, 번역가)

2회를 맞는 사각사각 그림책 공모전. 물론 그림책은 누구나 다 즐길 수 있지만, 무엇보다 그림책을 처음 만나는 어린 연령대의 독자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원고에 주는 상이 있다는 사실은 고맙고도 반가운 일이다. 더 어린 독자들의 마음은 더 보드랍고 섬세할까, 그들을 향하는 작가들은 어떻게 자기 이야기를 할까. 1회에서 뽑혔던 범상치 않은 작품 『내가 없는, 내가 있는』 덕분에 사각사각 그림책상에 대한 기대가 큰 가운데 2회 응모작들을 만났다. 수상작으로 뽑힌 『100곰』에 축하를 보낸다.

 

『제법인 개구리』는 접수된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굉장히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작가가 본능적으로 덧붙인 그림들의 구도는 매우 적절하고, 그림과 글 모두에서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인 완벽성과 탄탄함에 비해 동양화와 서양화 기법이 뒤섞인 화풍에 콜라주와 팝업 북의 요소인 플랩까지 들어 있어, 종잡을 수 없는 일러스트레이션과 각 페이지마다 혼란한 완성도 등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성장담으로 읽힐 수 있는 재미있고 긍정적인 이야기라, 무언가 다른 방법으로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행진』은 디자이너이며 위대한 작가 엔조 마리의 『16마리의 동물 Sedici animali』에 바치는 오마주 작품이다. 대선배의 작업에 붙여도 손색없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칭찬을 보내고 싶다. 화사하고 밝은 색깔, 귀여움을 강조하면서도 동물 각자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단순화 작업, 책의 마지막에는 가위로 자른 동물들을 이용한 장식과 모빌 만들기 등 갖가지 놀이까지 덧붙여져 여러 아이디어로 충만하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에서 왜 행진을 시작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하는 필연성이 없고, 순서대로 나열된 동물들 때문에 모든 펼침면의 구성이 거의 동일하게 펼쳐지는데 무거운 동물, 강한 동물, 눈이 좋은 동물, 오래 사는 동물 등의 배열이 왜 이런 순서로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리가 부재하다. 오른쪽 페이지 맨 아래에 위치한 글을 읽고 다시 왼쪽 페이지의 맨 끝에 있는 동물에서부터 맨 앞에 있는 동물들까지 읽어 가는 시선의 움직임 역시 쉽지 않은 해결을 요구하고 있어서 수상작으로는 뽑지 못했다.

『100곰』은 여러 원고 중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언뜻 보면 숫자 그림책의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사실은 기후 위기 시대의 환경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쉽고 빠르게 넘겨 볼 수도 있고, 찬찬히 뜯어보며 여러 가지 지점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빙하와 함께 절묘하게 크기가 줄어드는 숫자와 양쪽 펼침면에서 점점 높아지는 해수면은 작가의 잘 계산된 색채 계획에 따라 하늘색, 흰색으로 시작해서 미색으로 또 노랑, 주황, 뜨거운 분홍과 빨강에서 견딜 수 없는 보라, 적갈색, 검은색으로 변하다 다시 푸르고 조용한 흰빛으로 돌아온다. 늘어가는 숫자의 규칙성이 페이지를 넘기는 원동력이 되면서도 재미를 선사하고, 심각한 주제를 나름의 유머를 가지고 다루는 작가의 세련미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심사위원은 수상자를 뽑지 못할 때 가장 기분이 좋지 않고, 뛰어난 작품을 뽑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 누군가의 미래를 상상하며 심장이 두근거린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이다.

이지원(그림책 기획자,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