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 사각사각 그림책상

수상작 및 작가

당선작

대상: 황숙경 『구름 한 숟가락 ㄱㄴㄷ』

심사위원: 유문조(그림책 작가, 번역가), 이지원(그림책 기획자, 번역가)


심사 경위

제3회 사각사각 그림책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3월 31일 원고 응모를 마감하여 예·본심을 진행한 사각사각 그림책상에는 총 110편의 작품이 접수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그림책 작가 및 번역가 유문조, 그림책 기획자 및 번역가 이지원 님을 위촉하여 5월 15일 비룡소 본사에서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심에 오른 총 5편을 논의한 결과 『구름 한 숟가락 ㄱㄴㄷ』을 대상작으로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본심작

『구름 한 숟가락 ㄱㄴㄷ』
『줄무늬 물고기』
『열매가 빼꼼』
『거대한 수탉』
『너의 소원은 빛의 속도로 오고 있어』

심사평

그림책 관련 행사와 소식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소셜 미디어, 더미를 선보이고 굿즈를 만드는 작가들, 책과 원화의 전시, 신간 소개와 홍보를 위한 만남과 모임, 그림책을 이해하려면 이것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각종 주제의 강의도 다 쫓아다닐 수 없을 만큼 많다. 우리나라의 그림책이 전성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며, 한국의 그림책 분야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공모전 심사를 맡아 응모된 원고들을 보면 그 온도 차가 너무 심해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다. 올해 역시 과연 수상작을 뽑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심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결론은, ‘사각사각 그림책’에 잘 어울릴 만한 작품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구름 한 숟가락 ㄱㄴㄷ』은 유아용 ‘ㄱㄴㄷ 그림책’으로 왼쪽 페이지에는 커다란 자음과 그 자음으로 시작되는 문장과 귀여운 어린이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고, 오른쪽 페이지는 ‘구름 한 숟가락을 떠서 냉장고에 살짝 얼렸다가….’로 시작되어 ‘하나 두울 셋 눈이 번쩍! 햇살도 반짝’으로 끝나기까지 상상과 현실이 결합된 환상적인 잠의 세계가 펼쳐진다.
부드러운 색조로 끌고 나가는 무리 없는 자연스러운 그림, 그 환상의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만화 <리틀 네모>, 주나이다의 『길』, 더 나아가서는 케이트 그리너웨이의 「ABC」 시리즈를 연상시키지만, 그 연상은 선배 작가들에 대한 모방을 넘어서 있다. 똑똑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으며 그림책의 역사를 찬찬히 보고 연구하고, 오랜 작업과 공부의 결론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 어린이들이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ㄱㄴㄷ 그림책’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줄무늬 물고기』는 간단하면서도 뛰어난 조형성을 보이는 시각언어가 눈에 띄었다. 단순하다고 말하기에는 선과 면을 다루는 세련된 솜씨와 유머가 있다. 한눈에 그 이야기가 읽히는 명확한 스타일로 만들어진 책이라, 줄거리와 그림의 방향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들이 있는 것이 아쉬웠다.

 

『열매가 빼꼼』『거대한 수탉』은 그림 솜씨가 뛰어난, 색과 형태가 나타나는 방식이 눈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이다. 두 작품 다 숫자 그림책을 표방하는데, 그 숫자들이 등장하고 더해지는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았으면 더 좋은 원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열매가 빼꼼』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거대한 수탉』은 마리안나 오클레약 등 특정 작가의 스타일과 영향을 너무 드러내 보이는 점은 창작자로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너의 소원은 빛의 속도로 오고 있어』는 글이 가진 독특한 매력과 메시지로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작품이다. 다만 페이지별 일러스트의 질이 균일하지 않고, 여러 지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 그림으로 이야기를 표현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또한 인생과 우주, 소원과 그것을 바라는 절실한 힘 등의 거대 메시지가 ‘사각사각 그림책’에 적합한 것인지에는 조금 생각할 여지가 있다. 공모전을 여는 출판사의 마음, 올해는 어떤 작품을 뽑을 수 있을까 하는 심사자의 마음, 모두의 소원은 우리를 매혹하고 감동시킬 좋은 책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소원 역시 빛의 속도로 어딘가로 전달되어 오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지원(그림책 기획자, 번역가)

올해는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 수가 작년보다 월등히 많았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에서 벗어나 그림책 창작 분야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이 느껴져 반가웠다. 100여 권이 넘는 응모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림책 창작에 관한 욕구가 다양한 시도로 표현되고 있고 그 폭도 넓어졌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림책 창작에 대한 관심과 열기에 비해 출품된 작품들의 수준이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여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 창작 그림책의 발전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본심작과 응모작에 대한 총평을 다음과 같이 하고자 한다.

전체적인 느낌은 그림책 창작에 관한 접근이 많이 쉬워졌다는 점이다. 그림책의 주제나 소재가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 찾는 작품들이 많았고,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림의 표현에 있어서 그 무게감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림책은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대부분 벗어난 것 같다. 그림책의 그림은 언제나 잘 그릴 필요는 없다. 그림책의 내용에 따라 작가가 자기의 표현을 자유롭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표현에 있어서도 다양한 기법들이 등장했다. 그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컴퓨터를 사용한 그림이었다. 컴퓨터 사용이 그림을 그리는데 편리한 방법이지만, 책의 이미지, 작가의 개성이 표현되는 데에 적합한 기법인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림책의 그림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언어이다. 그림의 기법에 대한 고민은 작가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그림책의 주제나 소재가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독자가 그림책에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주제의 방향도 없이 단순히 나열하는 것으로는 한 권의 그림책으로 완성되기에는 부족하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로 작가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표현 장르이다. 글의 표현과 그림의 표현 그리고 그림책 안에서 두 언어가 어떻게 결합되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지에 대한 이해는 그림책 창작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할 부분이다.
아마추어이건 경험이 많은 작가이건 창작은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데도 그림책 창작에 관한 관심과 열기가 높아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 열기가 지속되어 내년에는 보다 성장된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당선작에 축하와 격려를 전한다.

 

『줄무늬 물고기』는 단순한 형태와 선, 색의 사용으로 시각적으로 눈길을 끌지만, 시각언어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또렷이 다가오지 않는다.

 

『열매가 빼꼼』은 각각의 화면은 충실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개연성 없는 화면의 나열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없다. 여러 가지 이야기의 요소가 있지만 하나의 주제로 마무리되기는 역부족이다.

 

『거대한 수탉』은 개성 있는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군데군데 숫자에 끼워 맞춘 듯한 부자연스러운 표현은 있지만, 숫자와 함께 펼쳐지는 조형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자연이 소재로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등장하는 소재의 성격과 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햇빛이 수를 셀 수 있는 형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수탉과 해의 관계, 지렁이와 해의 관계가 어떠한지 등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너의 소원은 빛의 속도로 오고 있어』는 거대 담론의 추상적 이미지의 주제와 책의 길이가 사각사각 그림책의 독자에게는 부담스러워 보인다. 강하고 직설적인 표현의 그림은 독자의 상상력을 차단시키고 전체적으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표현들은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구름 한 숟가락 ㄱㄴㄷ』의 소재인 ‘구름’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그림책에서 많이 쓰인다. 그림책 소재로 신선함은 부족할 수 있지만 어린 독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각각의 화면에 등장하는 이미지 역시 익숙하다. 하지만 익숙하기에 받아들이기 쉽고 또 그 이미지마다 내포된 이야기들이 있어 그림책의 내용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꿈을 이용한 판타지 이야기 역시 기존의 다른 그림책과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꿈속 판타지의 이야기와 한글의 자음, ㄱㄴㄷ 전개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어, 새로운 시각으로 즐길 수 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소재로 매끄럽게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친숙한 이미지의 활용으로 다소 거칠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를 매끄럽게 이끌어간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단순히 이야기를 즐기는 책이 아니다. 한글 각각의 자음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리드미컬한 텍스트와 함께 이미지를 즐기는 책이다. 그런데 그 이미지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끌어가고 있으니 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부드러운 색조와 안정적인 화면 구성은 구름이라는 포근한 이미지와 어우러져 독자가 편안하게 그림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각 화면 왼쪽에 등장하는 자음과 함께 곁들어지는 그림은 단순한 줄거리에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며 화면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시각적 요소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 표현에 있어서 전후 화면의 유기적인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인과관계의 설명, 즉 등장하는 이미지의 개연성에 대해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이 아쉽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의 화면들에서 이미지의 전개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러한 지점이 보완된다면 재미있는 한글 ㄱㄴㄷ 그림책이 탄생하겠다.
사각사각 그림책 공모전의 당선에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왕성한 그림책 창작 활동을 기대한다.

유문조(그림책 작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