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전복의 즐거움

연령 10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9년 12월 24일 | 정가 8,500원

이 책은 그 유명한 워즈워드의 무지개의 한 구절을 꼭 닮았다. (이제 보니 김영진 선생님이 옮긴이의 말에서도 언급하셨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말했던 워즈워드 말의 의미를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깨달았다면 과장일까?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사는 아이의 특성’(동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을 환기시키고 그 가치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은 초반부터 후반부까지 줄거리와 꼼꼼하게 얽혀 독자에게 파급되는데, 그보다 빛나는 것은 작품의 말하기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창조력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재능이자 희망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고정관념에 대한 철저한 맞대응으로 역발상적인 설정을 한다. 499살의 외계인, 이렇게만 해도 뭔가 외계 행성에 대한 호기심이 이는데, 그 외계인이 사는 행성에서는 어른이 커서 아이가 된다. 작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창조적인 발상들을 한다. “왜 안 돼?”하고 외치는 작가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기분과 상황에 따라 바뀌는 티셔츠, 말하는 야채와 신기한 외계 교과서 등 작가의 언급으로 인해 의미를 찾은 수많은 발상들이 이 책의 곳곳에 나타나 있다. 끊임없이 뻗어가는 상상력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기도 하고 인상을 쓰며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하게 된다. 상상력을 통해 주제에 도달하는 말하기 방식은 확실히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러한 말하기 방식, 현실을 전복시킴으로 우리 사회의 어떤 면을 들추고자 했던 것일까? 순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과의 공존을 포기하는 행태,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생물종의 평화를 깨트리는 무자비함, 옆에서 굶주리는 이가 있어도 자신의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극단 이기주의 등을 작가는 언급하고 있다.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이기에 의문조차 품지 않았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게 하는 작가의 신랄한 붓놀림이 싫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 모두가 진짜 행복을 고대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고, 관찰을 하고, 소통을 하라는 499살 어른아이의 메시지는 행복한 미래를 열 소중한 지혜의 열쇠이다.

정교하면서 매력 있는 문체와, 해학적이기까지 한 499살 아이와 지구 어른의 대화는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다. 심각한 주제를 웃음으로 거두는 따뜻한 비판정신은 독자로 하여금 작가를 신뢰하게 한다. ‘외계 인류학 숙제를 마치고 돌아간 미셸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건 나뿐일까? 작가가 멋진 솜씨로 다음 작품을 써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또 멋진 그림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다. 독특한 흐리겔 파르너의 그림은 이 책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글과 조화를 이루며 외계 세계를 엿보게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실제로 다른 세계를 엿보면서 겪는 즐거움은 미셸이 지구에 와서 겪는 즐거움에 진배없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번역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의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것은 번역인데,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공간을 초월하여 작가와 독자가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정확한 어법으로 매끄럽게 번역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긴 겨울, 시간의 한 허리를 베어 이불 안에 넣어두는 것도 좋겠지만, 혁명적으로 전복된 일상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이 세상에 우리와는 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흥분되지 않는가? 새로운 세상으로의 여행을 통해 누구보다 환상적인 미래를 누릴 수 있으니 주저 말고 어서 빨리 예약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