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지. 그냥 하는거야.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1년 10월 1일 | 정가 11,000원
수상/추천 블루픽션상 외 4건

내가 ‘컬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제법 오래 전이다. 일 때문에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관련 자료를 번역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컬링을 알게 되었다. 동계스포츠 종목 중에 생소한 게 한 두개일까만 98년, 99년 당시 컬링은 정말 처음 알게 된 스포츠였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생소하거나 낯선 동계올림픽 종목들을 이제 하나 둘 알게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컬링은 컬링이고, “그냥, 컬링”은 또 뭐냐? 이 책 제목 참 묘하다. 그렇지만 책을 다 읽은 후 ‘그냥!’이라는 말에 담긴 수많은 의미들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그냥’은 바로 ‘그냥’인 것이다.

 

으랏차, 며루치, 산적, 추리닝, 그리고 박카스…까지.. 이들에게는 자신의 이름이 있지만 내내 별명으로 불린다. 그러고보면 나도 학창시절에 내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주로 불렸다. 그게 자연스러웠고, 당연했다. 친구들끼리 부르는 별명은 어쩌면 그들간의 친밀함을 내포한다. 더불어 그들의 대화에서 배제하고 싶은 대상, 공유된 비밀대상도 별명으로 불려진다. 학창시절의 별명은, 그래서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다.

 

이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에게 치여 주목받지 못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 물론 그들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억울하기도 할 법하다. 그러나 으랏차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아이다. 어떤 사람은 최고가 되어야 하고 최고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피나는 노력(혹은 권력과 경제력의 활용)을 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간다. 그러나 으랏차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인생에 뚜렷한 족적 하나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조용하고 편안하게, 그냥 살고 싶다. 그런 그에게 산적과 며루치는 ‘컬링’을 하자고 다가온다.

 

하필 왜 컬링일까? 이 질문은 책에서도 계속 나오는 질문이다. 야구나 축구였다면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았을거라는 말이 묘하게 가슴을 콕 찔렀다. 지금 우리에게 인기가 있는 스포츠는 돈의 스포츠이다. 축구가 그렇고, 야구가 그렇고 골프가 그렇다. 피겨는 아닌가? 스포츠를 통해 우리는 스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그들이 돈방석에 앉는 모습도 본다.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그 노력이 그들을 얼마나 화려한 자리로 올려놓았는지를 연일 떠들어댄다. 비단 이것이 스포츠에 국한된 것은 아닌 걸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주목받는 아이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화려한 이력 때문에 나머지 아이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간다. 축구, 야구, 골프 같은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컬링 같은 아이들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런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이 선택한 스포츠가 바로 자신들과 똑 닯은 컬링이다. 열심히 비질을 해서 길을 닦아주면 스톤은 그 길을 따라 움직인다. 화려한 기술도, 관중의 환호도 없는, 동계올림픽 정식 종목이면서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그런 스포츠다. 컬링을 하는 아이들에게서도 그런 화려함이나 열정을 볼 수는 없다. 다만 그걸 즐긴다. 그냥, 컬링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아이들이 아닌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더 많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그 아이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으랏차의 동생 연화가 피겨 유망주로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가며 생활하지만 그녀는 삶의 의욕이 없이 살아간다. 자신의 목표이기보다는 엄마의 목표이고, 집안의 목표이며, 사회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남궁최강은 아버지의 권력과 경제력으로 최고의 야구선수로 살아가지만 그의 본 모습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다. 그가 저지른 죄를 덮기 위해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산적이 죄를 덮어쓰기도 하고, 그게 아닌 걸 알면서도 자신에게 닥칠 피해때문에 아무 말 하지 못하는 18번도 있다.

 

상위 5% 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부러운 건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처럼 되려고, 그들 속에 포함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럼 나머지 95%는 뭔가? 대다수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그 95% 중의 하나니까.

 

* 이 책은 비룡소 연못지기 활동을 위해 받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