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잔다르크 -천개의 언덕을 읽고-

시리즈 블루픽션 66 | 한나 얀젠 | 옮김 박종대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8월 20일 | 정가 13,000원

두명의 잔 다르크

 

난 두명에게서 너무나도 비슷한 용기와 의지, 아름다움을 보았다.

 

잔다르크, 프랑스의 소녀. 힘없고 남자도 아니였던 평범한 소녀. 시골에서 태어나 100년 전쟁을 맞이하고 곧 어리고 약한 몸으로 조국을 위해 갑옷을 입고 불굴의 의지로 적진을 헤쳐나갔던 여성. 주변의 업신여김과 샤를 7세의 배신에도 꿋꿋히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던 용기있는 사람. 프랑스의 백성들이 사랑했던 그 소녀. 그리고 19세에 자신이 목숨을 바쳤던 자에게서의 배신으로 화형을 당한 그 소녀.

 

천개의 언덕에도 잔다르크가 나온다. 이름이 잔 다르크. 세상이 잘 알지도 못하는 아프리카의 아주 조그만 나라, 르완다에서 태어난 투치족 소녀. 투지족은 지배계층이였고 잔도 크고 과수원이 딸린 집에서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 오빠와 여동생이 있는 평범한 둘째아이로. 아버지는 꽤 이름난 교수였다. 어머니도 존경받는 선생님이였다. 식모하나에 머슴 하나, 근심없이 살수있을만한 단란한 생활을 하던 잔. 장난끼 많고 웃음도 많고 해맑은 여덟살이었던 잔은 밝은 아이였다. 햇살같은 아이. 그런데 8살 생일이 지나자 얼굴에 둥실둥실 떠다니던 햇살같은 웃음이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마치 사라진듯이. 빨간색 지붕이 예쁘던 집, 지붕이 날아가버렸다. 부엌뒷쪽 벽이 없어졌다. 시계꽃 열매가 열리던 과수원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나뭇잎들이 새까매지고 잎끝은 탄환이 스쳐가 열기에 꼬부라지고 바스라졌다. 인구의 85%를 차지하던 후투족은 자신을 지배하던 투치족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평화롭던 마을에 투치족 사람들의 집이 불타없어졌다. 그리고..그옆의 후투족 이웃들의 집들은 그을림하나없이 조용했다. 마치 아무일없다는듯이. 한쪽에서는 자신의 이웃들이 죽어가는데도 자신들의 인생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듯이. 잔은 귀를 막고 도망쳤다. 옆에서 군인들이 엄마의 손을 짓밟았다. 어린 여동생 테야가 폭탄을 맞았다. 곧있어 아빠와 떨어졌고 오빠가 잔인하게 난도질당했다. 그리고 잔은 그 모든것을 지켜보았다.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아파하고 죽는 것을 지켜보았다. 자신도 죽을 뻔하고 식모살이도 하고 갖은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너무 어린나이에, 8살,9살, 행복만을 알고 웃음만을 터뜨려야할 나이에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믿고 의지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빨간지붕밑 과수원과 함께하던 시절이 눈물나도록 그리웠다.

 

곧 투치족도 반격을 했다. 투치족 반군은 잔과 잔과함께 식모살이를 했던 샹탈, 카린을 구해주었다. 샹탈과 카린은 다시 마음을 열었다. 카린은 친적집으로 향했고 샹탈은 여군이 되고 싶다며 훈련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잔은 더 이상 세상을 믿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 이웃으로 지냈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외면하고 그렇게 존경을 받았던 아빠마저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일에도 냉정하고 침착했던 엄마가 군화에 치이고 정글칼에 찔렸다. 잔이 바라보는 세상은 핏빛 암흑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다. 잔이라는 아이가 있는 줄도 몰랐다. 잔이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도 몰랐다. 나도, 잔을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일을 당해본다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기때문에. 그렇기에 더욱더 잔이 용기있어보인다. 비록 잔은 말이 없어지고 고열과 악몽에 시달리며 지냈지만, 그녀는 그래도 살았다. 먹고 자고, 자신을 배신했던 그 세상에 용케도 살아있어주었다. 그 용기는 누구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르완다의 잔은 프랑스의 잔과 같이 용감하다. 전쟁에 의해 거칠어진 살결, 얼굴에 묻은 검댕, 말라서갈라진 입술.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 멋있다. 이런 생각을 했다. 너무 예쁘다고. 생기가 돌던 통통한 볼살과 아름다운 옷을 입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예쁘다고, 아니, 더 아름답다고. 너가 견뎌낸 그 일. 너가 견뎌냈다는 것이 너무 멋지다고. 그래도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그리고 다시 유럽으로 갈 희망을 가져준것에 감사하고 나 또한 너에게 있었던 일을 지금껏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것에 미안하다는 생각을.

 

르완다의 잔다르크, 네가 넘은 천개의 언덕 뒤에는 태양이 떠있어. 그일 전에 그랬듯이, 그리고 그일 후에도 계속 그렇겠지. 그걸 발견했을거야. 걷고 걷고 맞서 싸워서 넘은 천개의 언덕,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걸. 너에게 화형은 없어. 너 앞에 불이 활활 타올라 모든것을 집어삼켰지만. 너에겐 그 불씨를 끌 무언가가 있어. 희망이 있어. 그리고 이제 그 불씨는 꺼졌어. 너에게 화형은 없어. 천개의 언덕 너머에도 태양은 있듯이 누가 뭐라해도 이 세상에는  사랑과 희망이 아직은존재하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