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조선]-4인의 탐사대가 맨몸으로 뜨겁게 겪은 1905년 진짜 조선의 모습

시리즈 블루픽션 78 | 김소연
연령 13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5년 6월 5일 | 정가 11,000원

1905년 구한말, 풍전등화에 놓여있던 조선을 타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책 <<굿바이 조선>>이 역사의식을 보여 주는 동화, 청소년 소설을 발표해 온 김소연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 그동안 역사소설이 그 시대 백성들의 눈으로 기록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 달리, 이 작품은 코레야를 탐사하는 러시아인이라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저자는 외국인 기자가 쓴 풍물지인 《KOREA》를 한국어로 번역한 인문서『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를  읽으면서 ‘나’ 자신을 ‘내 자리에서’가 아닌 ‘상대방의 자리’에서 들여다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며, ‘나’라는 실물의 객관적인 이미지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방인들의 기록이 주는 짜릿한 즐거움이 아닌 씁쓸함이 주는 숱한 고민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저자는 겨우 백 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 횡행하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서구우월주의에 범벅이 된 잣대를 무의식중에 학습해 백 년 전 이 땅에 살던 선조들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우리들에게 역사를 주체적이고 다각도로 바라보기를 권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우연치 않게 뛰어든 방문객의 눈을 통해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의 어그러진 안경을 벗어 보고자 한다. (본문 265p) 

 

알렉사이는 코레야 탐사대에 합류한다. 코레아 탐사대는 지리학회 소속 탐사대라는 번드르한 허울 밑에 코레야 북부 지역을 샅샅이 조사, 기록하여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천연 자원의 규모와 경제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즉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이권이 그들의 진정한 관심거리다. 알렉사이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탐사대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최소 일 년 이상의 준비와 교섭을 통해 얻어 내는 명예로운 자리인 분대장을 출발 사흘 전에 갑자기 나타난 귀족 장교라는 점과 황제가 신임하는 장군의 조카라는 신분 때문에 다른 분대장으로부터 시기와 경멸을 받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닿았을 때 코프스 대령은 항구 선술집에 가 코레야 방문 경험이 있는 여행객에게 며칠 후면 맞닥트리게 될 인종에 대해 알아두라고 한다. 그렇게 선술집에 가게 된 알렉사이는 코레야인들이 마치 커다란 덩치로 물 위에 가만히 떠 있는 백조 같다는 말을 듣게 되고, 코레야인들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된다.

 

하얀 백조란 흰 옷을 즐겨 입으며 겁이 많고 노래를 즐기는 코레야인을 부르는 별명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단순히 그들의 겉모습만을 일컫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코레야인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그들의 대처 방식에 대한 풍자라 할 수 있다. 풍전등화 처지에 놓인 국운, 그러나 그러한 것은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게으르고 안이하게 세월을 보내는 백성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국제 정세는커녕 나라 안의 정치적 변화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땅에 엎드려 농사만 짓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코레야 백성들은 말 그대로 겨울 호수에 떠 있는 하얀 백조다. 아름답지만 무기력하고 조용하지만 슬퍼 보이는 철새의 운명이 곧 코레야의 운명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본문 25p)

 

알렉사이는 비빅 키센스키 중사와 통역을 위해 러시아로 귀화한 조선인 니콜라이 김과 함께 가련한 백조들의 나라에 도착하게 되지만, 알렉사이를 따돌린 다른 분대장들의 물밑 작업으로 병든 말만 차지하게 된다. 할 수 없이 가까운 마을인 가마실에서 직접 말을 구해보기로 하지만 몰이꾼은 커녕 말 빌리기도 만만치 않았다. 다행이 말 빌리는 값을 두 배로 올리자 노름쟁이 조서방이 선뜻 나섰다. 하지만 조서방이 선금을 모두 도박으로 날리고 부상을 당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열여섯 살인 아들 근석이 동행하게 된다. 알렉사이에게 코레아는 오고 싶어 온 곳이 아니었기에 기대도 동경도 없었으며, 그저 지금까지 살던 세상을 잊기 위해 잠시 숨어든 도피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작은 나라는 허락 없이 들어온 불청객을 내쫓으려고 안달이 난 땅 같았고, 들르는 마을마다 괴물 아니면 구경거리 취급에, 길은 아무 데나 끊기기 일쑤고 입에 맞는 음식은 단 한가지도 발견하지 못한 진절머리 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그가 근석을 통해서, 의병대와 일본군의 싸움을 통해, 직접 만나본 코레야인들을 통해 코레야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다.

 

“저는 코레야인을 가련한 민족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마실을 보면 ‘하얀 백조’라는 말이 무색해집니다. 백조는커녕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는 설표처럼 작지만 강인하다고나 할까요. 그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배짱이 나오는지 볼 때마다 신기했습니다.” (본문 215p)

 

“근석을 보며 세상에는 모두가 도망치려는 곳에서 머물 자리를 찾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근석의 말이 옳아요. 이 땅엔 절망의 운명이 닥쳐와도 도망치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는 코레야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며 지난날 제가 가졌던 편견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 254p)

 

숨겨진 알렉사이의 진실이 드러나고, 니콜라이 김이 러시아로 귀화한 이유가 드러나는데, 이들 모두는 자신이 처한 운명에서 도망 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의 조선과는 작별하고 새로운 조선을 찾으러 떠나겠다는 근석을 보며 새로운 여행을 하고자 한다. 알렉사이와 니콜라이 김은 탐사 임무를 통해 도망치고 싶었던 조선, 게으르고 무기력하며 안이하게 세월을 보내는 조선이 아닌 절망의 운명이 닥쳐와도 도망치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는 조선을 보게 된 것이다.

 

 

 

이렇듯 <<굿바이 조선>>은 1905년 구한말 격동기에 러시아인의 시점에서 우리 역사를 풀어낸 역사소설이다. 조선의 백성으로서 나라를 침범한 적과 싸우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본의 앞잡이가 된 양반들, 조선을 침범한 왜인들을 아라사 군대가 몰아주기를 바라는 수치심도 없는 귀족들도 있었던 비록 자랑스럽기만 했던 조선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과거의 이러한 모습을 배우고 반성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것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운명에서 도망치듯 떠나온 여행자들이 운명에 맞서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가마실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살다가 조선의 현실을 보게 되면서 조선이 임금의 나라가 아닌 모든 조선인의 나라임을 깨닫고 새롭게 펼쳐지는 새 조선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향해 뛰어드는 용기와 도전 그리고 성장도 함께 보여주었다. 이렇게 열여섯 살의 어린 근석은 탐사대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나에게 닥친 운명과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면, 진짜 조선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나는 지금껏 조선이 임금님 한 분의 나라인 줄만 알고 살았어요. 그래서 한 번도 산과 들이 내가 지켜야 할 내 것이라고 여겨 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대장님과 여행을 하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조선은 임금 한 사람만의 나라가 아닌 이 땅에 사는 모든 조선인의 나라라는 걸 말이에요. 조선이 백성의 나라가 아니라면 왜 의병들이 목숨을 버려 가며 적군과 싸우고 동학당들이 탐관오리의 사창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겠어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조선을 배우고 싶어요.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조선과는 작별하고 새롭게 펼쳐지는 새 조선을 만나고 싶어요. 비록 그 나라가 위태롭고 서글플지라도……. 그러기 위해서 서울에 남을 거고 배울 거예요.” (본문 250p)

 

(이미지출처: ‘굿바이 조선’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