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 여행: 아이의 시험 불안,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어린이날에도 초등학생인 두 딸에게 정해진 분량의 학습지를 풀게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바로 취직해서 일찍 결혼한 친구는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이 콤플렉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모습을 보였지요. 하루는 아이들한테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요즘 애들은 학원 네다섯 개는 기본으로 다닌다며 자기는 오히려 적게 시키는 거라고 하더군요. 자식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려는 친구의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언젠가 놀러 갔을 때 친구 아이의 그늘진 얼굴과 에너지가 소진된 듯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친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는 어린이날 노래 가사처럼 5월 한 달만이라도 아이들이 공부와 시험에서 벗어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무 이상적인 얘기인가요? 타이거 마더 교육법이 화제가 되는 요즘, 아이를 충분히 놀게 하라는 말이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태현이(가명)가 연구소에 온 이유는 시험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겨우 아홉 살인데 시험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태현이 엄마는 아들이 시험을 앞두고 우울해하는가 하면 성적과 관련된 악몽을 자주 꾸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교육 철학으로 아이를 키웠고, 단 한 번도 100점과 1등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스스로 성적에 욕심을 내면서 시험에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라고 털어놓더군요.
아동용 문장 완성 검사를 통해 태현이가 시험에 대해 느끼는 중압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문장 완성 검사는 간편하면서도 매우 유용한 심리 검사 중 하나입니다. 피험자에게 몇 개의 단어로 시작하는 미완성 문장을 주고 그 문장의 뒷부분을 채우게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태현이는 내가 자주 하는 공상은 “시험을 100점 받는 것”, 내게 일어났던 가장 좋은 일은 “1학기 기말고사 1등한 것”,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라고 써 놓았습니다.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악몽”이라고 했는데 악몽의 내용은 “시험을 빵점 맞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때때로 “실수한다.”, 나의 나쁜 점은 “가끔 실수하는 것”이라고 써 놓은 것 역시 시험과 관련이 있었는데, 태현이는 아는 문제를 틀리는 실수를 하는 것을 자신의 나쁜 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책임감이 강한데다 태도도 모범적이라 담임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태현이는 점잖은 자세로 검사와 면담에 임했고 시종일관 공손했습니다. 엄마에게 꼬박꼬박 높임말을 쓰는 모습과 사소한 것에도 “감사합니다.”라며 인사하는 모습에서 예의 바른 아이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지요.
모범적인 태도는 물론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태현이를 긴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부자연스럽고 경직되어 있는 모습이었거든요. ‘이제 아홉 살인 아이가 저렇게 생활하려면 많이 힘들 텐데.’라는 가설을 충분히 세울 수 있었지요.
성적을 강요하지 않는 부모의 교육 방침 속에서 자라는데도 100점과 1등에 연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담의 목표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무엇이든 즐기면서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 실수는 나쁜 것이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에서 벗어나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 잘 못해도 괜찮다는 대범한 생각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험 불안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거나 소멸되니까요.

태현이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웃음과 해학이 담겨 있는『이랴! 이랴?』(아지북스)라는 옛이야기 그림책으로 친근감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말을 달리게 할 때, 논과 밭에서 소를 몰 때 사람들은 ‘이랴 이랴’ 하면서 속도를 내게 하지요. ‘이랴 이랴’라는 말의 유래를 갓을 쓴 이야기꾼이 재미나게 들려주는 책입니다. 힘이 장사인 여자와 발이 물에 젖는 걸 싫어하는 까칠한 말이 신경전을 벌입니다. 여자는 말을 움직이게 하려고 신고 있던 짚신을 벗어 허리춤에 끼고 텀블링까지 하며 숨은 힘을 내보이지요. 여자가 남자 못지않게 굵은 다리에 나 있는 털을 내보이는 순간 웃지 않는 아이들은 없답니다. 그래서 『이랴! 이랴?』를 웃음 치료제로 자주 활용하는데, 태현이의 긴장을 풀어 주는데도 도움이 된 듯했습니다.
태현이는 2학년이지만 문장을 읽고 행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또래 남자아이들에 비해 뛰어났습니다. 『이랴! 이랴?』에 들어 있는 언어유희를 금방 이해하고는 “무척 재미있는 그림책”이라며 동생도 좋아할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한번은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자아 존중의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 변화의 욕구, 지식 탐구의 욕구, 미와 질서의 욕구를 담은 그림책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태현이에게 여기서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만 골라 보라고 했습니다. 현재 아이가 가진 욕구 중 어떤 욕구가 강한지를 탐색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동시에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알게 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아이를 자율성을 지닌 인격체로 존중해 준다는 뜻을 담아 직접 고르게 하는 것이지요. 아이의 문제에 따라 인간의 욕구를 담고 있으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책,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책, 관점의 변화를 일으키는 책들을 펼쳐 놓고 직접 고르게 하는 식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태현이는 망설임 없이 지식 정보 그림책을 골랐는데 몇 장 넘기다가 마뜩치 않은지 표정이 시큰둥했습니다. 하지만 차마 제게 그 말을 하지 못하는 듯해서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책을 골라도 좋아.”라고 했더니 반색하며 “정말요? 다시 골라도 돼요?”라며 되물었습니다. 태현이는 엄마가 시키는 것이든, 스스로 결정한 것이든 한 가지를 시작하면 바꾸지 않고 끝까지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열려 있는데 책도 마찬가지여서 보다가 재미없으면 중간에 그만 읽어도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태현이가 두 번째로 고른 책은 『마녀 위니의 요술 지팡이』(비룡소)였습니다. 「마녀 위니」 시리즈 중 한 권이지요. 마녀 위니는 다른 마녀들처럼 예쁘거나 완벽하지 않은데다 실수투성이입니다. 위니는 소중한 요술 지팡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려 버리는가 하면 눈이 나쁜 줄도 모르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다가 빌딩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매일 실수를 연발합니다. 그래도 위니는 어떤 일이든 도전하고 실수를 통해 배워 나가지요.
「마녀 위니」를 책상에 올려놓은 이유는 관점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림책이기 때문입니다. 마법을 부리는 마녀도 실수를 하고, 때로는 실수가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만들며 더 좋은 결과를 낳게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태현이가 가지고 있는 실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5분도 안 돼서 다 읽었다고 하길래 『마녀 위니, 다시 날다』(비룡소)도 보여 주었습니다. 읽고 난 뒤에는 위니의 외모에서부터 고양이 윌버까지 책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태현이는 위니의 바보 같은 모습을 지적하며 마녀 세계에서 왕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그 말도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략적으로 활용한 부분은 『마녀 위니의 요술 지팡이』의 첫 장면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사람들은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걱정을 앞세우고 ‘뭔가 잘못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술 쇼를 앞두고 걱정하는 위니의 모습과 고양이 윌버의 불안한 예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자기도 윌버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고 하더군요.

언제 윌버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묻자 태현이는 망설임 없이 “시험 볼 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시험 볼 때 나는_____________.’이라고 쓴 종이를 주면서 빈칸을 채워 보라고 했습니다. 태현이는 빈칸에 “심장이 터질 것 같다.”라고 적어서 제게 돌려주었습니다. “왜 심장이 터질 것 같아?”라는 물음에는 “틀리지 말아야 하니까 긴장이 되어서요.”라고 대답했고, 아빠와 엄마가 성적을 강요하지 않는데 꼭 100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묻자 “엄마가 원하니까요.”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태현이 : 위니는 엄마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실수를 해도 야단맞지 않아요.
상담사 : 태현이가 실수하면 엄마가 야단을 치시니?
태현이 : 크게 야단치지는 않지만 엄마 눈빛이 달라져요.
상담사 : 어떻게 달라지는데?
태현이 : 시험 100점 받은 날은 고모랑 아줌마들한테 전화해서 자랑해요. 근데 한 개라도 틀린 날에는 웃지도 않고, 제가 말을 걸면 다음부터는 아는 문제를 틀리지 말라고 해요. 엄마가 목소리를 깔면 무서워요.
상담사 : 응. 그랬구나. 100점 받은 날이랑 한 개라도 틀린 날에 엄마가 태현이를 대하는 목소리가 달라서 무서웠구나! 그동안 태현이 마음이 많이 아팠겠는걸.
태현이 : 엄마가 언제나 똑같으면 좋겠어요. 100점 맞은 날도, 한 개 틀린 날도 목소리가 똑같으면 좋겠어요.

태현이는 엄마가 자기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 커서 부담이 된다고 했습니다. 엄마의 바람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요. 태현이가 가장 싫어하는 건 엄마가 고모랑 아줌마들한테 자기 자랑을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전화기만 들고 있으면 불안하다고 하더군요. 잠결에 엄마가 아빠한테 태현이가 아는 문제를 틀려 와서 속상하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며 자꾸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얘기를 하니까 엄마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태현이 엄마는 첫 면담에서 ‘최고보다는 최선을’이라는 교육 철학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화를 내거나 야단치지 않는 대신 눈빛과 무언의 압력으로 아이를 대했습니다. 예민하고 마음이 고운 태현이는 엄마의 그런 태도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속으로 삭인 채 성적에 대한 압박을 느껴 왔던 것이지요. 그래서 시험이 다가오면 불안하고 두려워서 우울한 기분이 들고, 빵점 맞는 꿈을 꾸어 한밤중에 깨는가 하면, 심할 때는 긴장감 때문에 복통과 두통, 메스꺼움 등 신체 증상까지 호소하게 된 겁니다.
그날 상담이 끝나고 엄마에게 태현이와 나눈 이야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매번 아이와의 상담 내용을 부모에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이의 비밀을 지켜 줘야 할 의무가 상담사에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가 부모로부터 비롯된 경우라면 제삼자인 상담사가 아이의 마음을 전달하는 일도 필요하답니다.
태현이가 엄마 눈치를 많이 보고 있고 엄마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엄마는 “우리 태현이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뭐든 열심히 했고 잘했어요. 그래서 한 번도 아이가 안간힘을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성취욕이 강해서 시험 성적에 예민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눈치를 보고 있었다니 정말 가슴 아프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태현이가 가장 싫어하는 것과 엄마에게 바라는 점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엄마는 태현이가 자신의 전부라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것이 부담을 주는 행동인 줄은 몰랐다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했습니다.
엄마에게도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이든, 칭찬이든, 좋지 않은 얘기든 태현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태현이가 아는 문제를 틀려 오더라도 목소리를 낮추거나 싸늘하게 대하지 않는 것 두 가지입니다.

태현이에게는 ‘시험’이 열고 닫는 ‘문’이라고 상상해 보자고 했습니다. 시험이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문과 같아서 반드시 열어야 하는데, 마음가짐에 따라 문이 쉽게 열리기도 하고 잘 열리지 않기도 한다며 조금 추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 문을 즐기면서 열 때와 두려워하고 부담을 느끼면서 열 때가 다르다고 했지요. 그리고 두 가지 마음가짐을 상상하며 비교해 보는 놀이를 하게 했습니다. 연구소 문을 시험이라 생각하고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열 때와 ‘이건 놀이일 뿐이야’ 하면서 단번에 열 때의 기분을 느껴 보도록 말이지요.
그리고 저는 일부러 볼펜을 떨어뜨리는 실수, 탁자에 부딪치는 등의 실수를 하면서 허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실수를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많은 실수를 저질렀는데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더니 태현이는 믿지 않는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윌버처럼 나의 실수를 감싸 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자 엄마가 윌버 같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마녀에게 가장 중요한 요술 지팡이까지 빨아 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했는데도 윌버는 위니를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지팡이를 구해다 위니가 특별한 쇼를 할 수 있게 해 줬다는 점에서 윌버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태현이 엄마에게도 「마녀 위니」를 읽게 했습니다. 아이에게 윌버가 되어 달라는 뜻에서요. 함께 실수를 저지르고 함께 해결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모자 관계가 된다면 태현이의 긴장이 많이 풀어질 것이고 시험조차 즐기는 대범한 아이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모든 건 엄마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태현이가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100점을 받고 1등을 해야 한다는 강박, 시험 불안을 호소하게 된 원인이 엄마의 높은 기대와 무언의 압력 때문이니 아이의 마음을 풀어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도 엄마였습니다. 이후 태현이 엄마는 윌버처럼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부모 교육 강의를 들으러 다니며 아이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잘못이라 의식하지도 못한 채 굳어진 행동이 부모 교육 이론을 몇 번 듣는 것으로는 없어지는 것 같지 않다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태현이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상담을 마칠 때까지 세 번의 시험을 치렀는데, 한 번은 두 개를 틀렸다고 했습니다. 태현이는 엄마가 싸늘한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고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 엄마가 또 예전처럼 돌아갈지 모른다며 못미더워했지요. 하지만 그다음 시험에서도 만점을 받지 못한 태현이를 엄마는 차갑게 바라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제야 태현이는 엄마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엄마를 향한 긴장을 조금씩 풀 수 있게 되었지요. 악몽을 꾸는 것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옛날처럼 빵점 맞는 꿈은 꾸지 않아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시험 치는 날 아침에 배가 살짝 아프고 심장이 뛰어도 ‘문’을 생각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는 제법 어른스러운 단어를 쓰면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더군요.

시험 불안은 아동과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문제 중 하나입니다. 시험 불안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정의는 없습니다. 학령기 아동 중 40%~50%가 시험 불안을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문제이며 심각한 경우에는 불안 장애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시험 불안이 있는 아동의 학업 성취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아주 낮습니다. 태현이는 시험 불안이 있는데도 어떻게 공부를 잘하느냐고요? 그만큼 태현이가 지능이 좋기도 했지만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만약 엄마가 태현이의 시험 불안을 방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무리 지능이 좋다 해도 시험이 더욱 중요해지는 중고등학교 시기를 무사히 견뎌 내기 힘들어질 겁니다.
왜냐하면 시험 불안이 있는 아동은 자기 가치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시험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은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실 거야.’, ‘내가 성적을 잘 못 받으면 엄마가 나를 미워하실 거야.’라는 식의 생각을 하지요. 더불어 일반적인 걱정과 시험과 관계없는 공포도 많이 느낍니다.
따라서 시험 불안을 강하게 호소하는 아이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부모가 성적을 강요하지 않아야 하며, 성적만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시험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고 때로는 한 번에 합격할 수도 있지만 시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특별한 가족을 보았습니다. 아이가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하자 아빠, 엄마가 한자능력검증시험을 함께 준비하고 함께 시험을 보면서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부모가 오랜만에 시험을 치르며 떨리는 마음을 경험해 보니 아이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는 겁니다. 그동안 시험 날 아침마다 “괜찮아! 너는 잘할 수 있어.”라고 했던 말이 아이에게 큰 힘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시험을 함께 보는 경험을 한 이후 가족 사이의 대화 내용도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아빠도 무척 떨리는걸. 시험에 떨어지면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까봐 신경이 많이 쓰여. 하지만 만약 실패하면 아빠는 다시 도전할 거야.”라고 했더니 오히려 아이가 “아빠! 걱정 마세요. 이건 그냥 시험일 뿐이에요.”라며 격려하더라는 겁니다.
이 특별한 가족의 사연은 아이의 입장이 되어 아이의 두려움을 함께 경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말보다 행동을 함께하는 것,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을 함께하면서 용기를 심어 준다면 무슨 일이든 즐길 줄 아는, 시험조차 즐기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을까요?

 

글 :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영남대학교 유아교육과 겸임 교수)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아동가족상담과 문학치료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행복한 그림동화책 연구소와 마음문학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대학에서 아동상담과 아동문학, 부모교육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 기획자, 특별 기고가로 어린이책이 가진 매력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림책으로 마음 나눔을 실천하고자 행복한 도서관 만들기 운동과 다문화 가정 그림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1. 박인숙
    2011.7.6 9:02 오후

    저도 항상 아이들에게 시험성적 결과를 가지고 좋아하고 화를 내고 합니다.
    큰 아이 키워보니 초등학교 성적은 중요하지도 않고
    앞으로 더 나아질 가능성이 훨씬 많은데도 자꾸 그 고개를 넘어갈때마다 분통이 나네요.
    저 학교 다닐때보다 훨씬 잘해주는 아이들인데도
    제가 더 잘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음을 느낍니다.
    이 글을 읽은 뒤 아이가 모르는 문제를 들고 찾아왔어요.
    모르는 부분을 조용히 알려주며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매일 이래야 할텐데 말이죠.
    너무 고마운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URL
    1. 김은아
      2013.3.17 1:05 오전

      최악의 엄마는 아이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시종일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합니다. msjulie님은 시험성적 결과를 가지고 아이에게 화를 낸다고 하셨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임을 알고 반성하시는데다 변화를 위한 도전을 행동으로 옮기셨으니 멋진 엄마. 좋은 엄마로 거듭나고 계신 거예요.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하고 계실까 궁금하네요.

  2. 한순옥
    2011.5.30 3:34 오후

    모든지 잘하길 바라는 엄마의 욕심때문에 아이들이 병들어 가는것같아요…

    URL
  3. 이은우
    2011.5.13 10:23 오후

    나도 공부를 잘해서,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
    엄마에게 으스댈 수도 있을텐데…

    URL
  4. 정미란
    2011.5.13 6:11 오후

    좋은글 담아가겠습니다~^^

    URL
  5. 손희경
    2011.5.13 6:16 오전

    제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하네요.
    아직 아이가 어려서 위니는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제가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아이의 실수에 동참할 수 있는 엄마가 되보렵니다.

    URL
  6. 석용숙
    2011.5.9 11:55 오후

    아이가 중간 시험을 볼때 그 긴장감을 떠오르게 하는 글입니다.시험 도중 반아이 한명이 ‘벌레닷!’소리에 우르르 몰려가 벌레를 구경 했었다고 하여 시험 보는 흐름이 끊기고 문제 지문이 눈에 아른거렸다고 합니다.그러니,평균보다 낮게 되었고 나머지 과목은 평균을 넘겼습니다.네 과목 다 열심히 준비 했으니까 괜찮다고 잘~보고 잘한거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엄마의 눈과 말톤에 주눅으로아이에게 억압 안주기 숙제를 해서 아이의 마음을 풀어 주도록 할것입니다.시험 보는날도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아침 등교 보낼껍니다.

    URL
  7. 김경희
    2011.5.9 8:13 오후

    아직 아이가 초등 저학년이라 시험불안증세를 절실하게 느끼지는 않지만, 받아쓰기 시험하나에도
    틀리면 혼낼거냐는 아이의 물음에 저를 반성하곤한답니다. 아이가 두려워하는것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하는 마지막 글귀가 너무나 마음에 와닿습니다. 제 주변에도 한자시험을 아이와 아빠가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봤었는데,,, 아이와 나누고자하는 부모의 마음… 그자세가 참 본받을만합니다…저도 그럴수있는 모습이 어떤 모습이 있을지…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