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 여행: 형제자매 간의 갈등,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2)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名醫) 편작에게 형이 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편작은 위나라 왕 문후에게 맏형의 의술이 으뜸이고, 둘째 형님이 다음이며, 자신의 실력이 가장 못하다고 말합니다. 맏형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병이 생기기도 전에 미리 치료해 주고, 둘째 형은 병이 미약할 때 알아차리고 치료해 주기 때문에 환자들은 의술의 뛰어남을 알지 못한다고 설명하지요. 그래서 병이 커진 후 환자가 고통을 호소할 때 비로소 알아차려 치료해 주는 자신이 명의로 소문난 것이라고 편작은 이야기합니다. 명의로 알려진 사람은 편작이지만 실제로 편작의 집안에서는 하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두 형의 의술을 질투하지 않고 실력이 모자라는 자신이 명의로 소문난 것을 부끄러워하는 편작의 겸손함과 두 형을 향한 존경심은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때때로 가족 구성원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 수고로움과 심리적 고단함을 헤아려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의 하나로 출생 순서에서 비롯된 형제자매 간의 갈등 양상과 해결 방법을 알아 두었으면 합니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기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다툼과 화해. 그 과정에서 생겨난 형제애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서도 한 가족의 행복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빠 엄마에게도 해당하는 이론이니 이번에는 가족 구성원에 대해 역지사지하는 기회를 가져 보면 좋겠습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에 대해 곧잘 이런 말을 합니다. “맏이라 그런지 듬직해요. 그런데 실수가 잦고 은근히 동생한테 콤플렉스를 가지는 것 같아요.” 또는 “둘째들이 원래 욕심이 많죠? 눈치 빠르게 자기 일을 척척 잘해서 좋긴 한데 성격이 무척 까칠해요.” 또는 “막내라 그런지 책임감이 부족하고 버릇이 없어요.” 또는 “같은 배에서 태어났는데 아이들이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어요.”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부모 대상 강의를 하면서 형제자매 간의 갈등과 화해를 주제로 한 그림책들을 곧잘 소개하는데 그때마다 저는 출생 서열에 따라 형성되는 심리적 위치와 성격 특성을 곁들여 그림책 내용을 풀이합니다. 부모님들은 내 얘기 같다며 무릎을 치고 공감합니다. 형제가 적은 요즘 아이들보다 지금의 부모 세대에게 쉽게 와 닿는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느 독서 치료 강의에서 삼남매 중 둘째 딸 때문에 고민하는 40대 후반 엄마의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둘째가 어릴 적부터 언니를 시기하고 질투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인 지금까지도 여전해 고민이라는 것입니다. ‘아빠 엄마는 언니랑 동생만 사랑하고 자기는 집에서 찬밥 신세’라며 항상 투덜거려서 무척 힘들다고 하더군요. 아빠 엄마는 언제나 너희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 줘도 못 미더워 하니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이의 생각을 바꾸어 줄 만한 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한테 “지금은 둘째에게 책을 보게 하는 일이 급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왜 그렇게 투덜대는지 둘째의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게 우선이 아닐까요?” 하고 되묻는 것으로 조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둘째의 마음이 이해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둘째로 태어나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였으니까요.

저는 어릴 적에 언니는 맏이니까 대접받고 남동생은 막내이자 아들이니까 귀여움을 듬뿍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척 불공평하게 느껴졌지요. 둘째로 태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왜 아빠 엄마는 나를 가운데 낳아 놓고 사랑은 생선 꼬리만큼만 주는지 서운하고 화가 났습니다. 분명 어릴 적 제 눈에는 부모님이 언니와 남동생을 더 많이 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다 언니가 남동생을 보느라 둘이 친한 모습을 보이면 제 위치가 더욱 좁아지는 듯이 불안하고 소외감마저 느꼈지요. 그래서 저는 실력으로 부모님께 인정받는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공부든 책읽기든 글쓰기든 운동이든 뭐든 언니랑 남동생보다 잘하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엄마가 경쟁 상대로 여기는 앞집 아줌마의 딸과도 경쟁을 벌였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이기면 엄마가 저를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부모님은 제가 상장을 받아 올 때마다 좋아하셨지만 공부 잘하고 제 할 일 야무지게 하는 저보다, 말 잘 듣고 유순한 언니와 남동생을 언제나 칭찬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굉장한 좌절감을 맛보았습니다. ‘세상에는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이런 비관적인 생각도 했답니다. 부모님을 향한 못마땅함은 커져만 갔고 사춘기 때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향한 화를 순한 언니와 만만한 남동생한테 풀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니한테는 또박또박 말대꾸하거나 대들어 맏이의 권위에 도전했고, 만만한 남동생 앞에서는 누나의 권위를 내세우며 잔소리를 해 댔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가 이긴 듯한 기분을 느꼈지요.
한편 충족되지 않은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밖에서 채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할머니, 고모, 삼촌, 사촌 오빠들, 담임 선생님, 친구들과 잘 지내려고 또 다른 노력을 시작한 것이지요. 조그만 아이의 머리가 어쩜 그렇게 팽팽 잘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가족 구성원 내에서, 형제자매 간의 관계에서 제 위치를 확고히하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몸부림, 즉 생존에 가까운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상담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답니다.
둘째로 태어나 늘상 애정에 허기져 불안을 달랬던 마음가짐, 부모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뭐든 악바리처럼 하고 욕심냈던 행동들이 생활 양식으로 굳어져 지금도 저는 가만히 있으면 인생이 재미없고 허전하게 느껴집니다. 아니, 불안하다는 게 더욱 적절한 표현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런 제 모습을 이제는 온전히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둘째로 태어난 것을 감사히 여깁니다. 연구소를 운영하는 데 무척 쓰임새 있는 부지런함과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일을 펼치는 데 필요한 용기, 독립심, 일과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갖추게 되었으니까요.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애썼던 행동들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심리 상담사라는 직업을 갖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아들러의 출생 순서 이론에 따라 제 성격과 생활 양식을 분석해 보았는데 둘째라서 갖게 된 심리적 위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온 것을 무척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제 얘기를 한 다음 그 엄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둘째 딸이 까다롭고 별나서 다루기 힘들긴 해도 자기 일은 야무지게 잘하죠?” 제 물음에 엄마는 “네. 맞아요. 큰딸이랑 막내에 비해서 자기 일을 정확하게 챙겨요. 숙제해라, 공부해라 일일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저 할 만큼 알아서 잘하고요. 그래서 밖에 내놓아도 안심이 돼요. 하지만 어떤 때는 그런 모습조차 피곤해 보이고 안쓰럽게 느껴져요.” 하고 대답하더군요. 저는 엄마에게 둘째들이 갖는 심리적 위치를 잘 헤아리고 아이의 상황을 더 많이 이해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부모 눈에는 별스럽고 단점으로 보이는 행동들이 나중에는 가치 있는 일, 큰일을 해내는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둘째가 가족 내에서 소외감을 덜 느낄 수 있게 챙겨 줄 것을 조언했습니다.

연령 5~8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8년 2월 28일 | 정가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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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엄마는 언제나 너희를 똑같이 사랑한단다.”는 식의 말보다는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활용하거나 아이와 둘이서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면서 엄마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을 권했습니다. 이때는 먼저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습니다.
“언제나 야무지게 자기 일 잘 챙기는 우리 둘째 딸이 고맙고 기특해서 밖에 나가면 엄마 친구들한테 자꾸 자랑하게 되는 거 있지. 나도 어쩔 수 없는 고슴도치 엄마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를 둘째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오늘 부모 교육 받으러 가서 새롭게 배운 게 있어. 선생님이 둘째는 언제나 마음이 외롭다는 거야. 위로는 맏이, 밑으로는 동생한테 치여서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한다고 느낀대. 너도 늘 얘기했잖아. 집에서 찬밥 신세라고. 아빠 엄마는 똑같이 사랑을 준다고 노력하는데 너한테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나 봐. 그리고 네 입장에서는 서운한 게 당연하다는 것도 오늘 공부하면서 알게 됐어. 네 마음을 좀 더 헤아려 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방법이 달랐을 뿐이지 지금도 아빠 엄마는 똑같이 너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맹세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네가 태어난 날 아빠 엄마는 언니가 태어났을 때만큼 기뻐했고 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언니한테 쏟았던 것만큼 너를 애지중지하며 돌보았는데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안 나지? 지금 네가 느끼는 서운함에 대해서는 아빠 엄마도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 어떻게 하면 네가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많이 생각해 봤는데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네가 아빠 엄마에게 바라는 걸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겠니? 방법을 가르쳐 주면 엄마부터 노력해 볼게.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네 나이에 맞는 현명한 방법이어야 한다는 거야.”
엄마는 논리정연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편지로 표현해 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한 말들을 떠올리며 한 줄씩 적되 엄마의 형제자매 이야기를 곁들여 감동적이고도 유쾌하게 쓴 다음, 그림책 『외동딸이 뭐가 나빠?』(비룡소), 『내 동생과 할 수 있는 백만 가지 일』(한울림스페셜)과 함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시치미를 떼라고 했습니다. 형제자매 관계를 다룬 그림책들 중에서 두 권을 추천한 이유는 외동딸이 느끼는 외로움과 다운증후군인 동생을 맞이한 누나의 이야기를 담은 각각의 그림책을 통해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둘째로 하여금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 보게 하려는 의도이지요. 편지를 읽었는지, 그림책을 보았는지는 확인하지 말고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엄마의 제안에 답을 내놓도록 시간을 주라고 했습니다.

엄마들 말처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 왜 아이들은 저마다 다를까요? 부모는 똑같이 사랑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왜 아이들은 저마다 달리 받아들일까요? 이에 대해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는 아이의 출생 순위가 성격과 인성 발달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이론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자녀들이 같은 환경 속에서 성장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지요. 가족 구성 전체로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출생 순위로 인해 각자의 심리적인 환경은 다른 형제들과 차이가 난다고 했습니다.
아들러는 형제 사이에 개인적 차이가 나는 이유를 형제간의 경쟁으로 설명합니다. 애초에 라이벌이 있는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차지하거나 가정에서 자신의 위치와 세력을 확실히 하기 위해 형제자매와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자매 간의 권력 다툼 과정에서 겪은 실패와 성공, 기대와 실망, 가능성과 장애 등의 경험은 아이의 성격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상담사들이 초기 면담에서 형제자매 관계를 반드시 물어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들러는 형제간 서열을 맏이, 둘째 또는 중간 아이, 막내, 외동으로 나눠 각각의 경우에 놓이는 사회적 환경과 거기서 비롯된 성격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맏이는 부모의 첫 번째 관심의 대상으로 인생을 시작해 한동안 ‘왕’처럼 지냅니다. 하지만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지요. 그 뒤 동생이 부모의 사랑을 약탈했다고 믿으며 경쟁을 시작합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의 특권을 다시 차지하고 동생을 제2의 위치로 몰아내려고 하지요. 특히 엄마의 관심을 되찾고자 더욱 노력하는데, 실패할 경우에는 예전에 누렸던 우위의 자리를 아빠를 통해 찾으려고 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끝내 성공하지 못하면 난폭하고 비판적이거나 불순종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반면 특별한 위치에서 밀려나는 쓰디쓴 기억을 안은 채 자신이 매우 작고 무력하다고 생각하여 속수무책으로 있기도 합니다. 위축감과 씁쓸한 감정이 삶의 기본 정서가 되는 경우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협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수도 있지요. 위치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실패하게 되면 권위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고 과거에 집착하거나 새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게 발달할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자격지심을 가진 무능한 맏이가 동생에게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지?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내가 네 형이야. 알아?”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한두 번쯤 보았을 겁니다. 잘난 동생들에게 치여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맏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형이라는 사실, 누나라는 사실, 오빠라는 사실뿐이니까요. 성장해서도 맏이로 인정받고 싶은 처절한 외침이지요.
하지만 맏이의 심리적 위치가 장점으로 작용할 경우 책임감이라는 인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맏이는 어른들과의 유대 관계가 좋고 부모 말을 잘 듣습니다. 따라서 부모가 맏이의 심리적 위치를 잘 헤아려 가족 내에서 맏이의 위치가 안전하다고 인식할 수 있도록 동생이 태어나기 이전에 동생을 맞이할 준비를 시켜 주면 상실감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생을 돌보고 책임지는 일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요구하거나 부담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형이니까, 누나니까, 오빠니까 당연히 동생을 잘 챙겨 줘야지.”라는 식의 말은 맏이에게 일방적인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는 무서운 말입니다.
맏이의 권위가 지켜지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되 맏이에게 특권을 주는 것에는 늘 신중해야 합니다. 형이니까, 오빠이니까, 누나니까 하나 더 주는 식의 분배는 아이들로 하여금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또 잘못한 일이 있을 경우 동생들 보는 앞에서 야단쳐 자존심을 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해 주어야겠지요. 특히 맏이보다 동생이 학업 능력이나 예체능 분야에서 뛰어날 경우 열등감을 갖지 않도록 맏이가 잘하는 것, 맏이가 가진 장점을 눈여겨보고 칭찬과 격려를 해 주면 동생의 실력을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더라도 병적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제 얘기를 통해 소개했으므로 생략합니다.

막내는 성장한 후에도 귀염둥이로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부모뿐 아니라 형제, 친척에게도 응석을 부릴 수 있지요. 긍정적 측면에서 본다면 막내는 사회적 능력을 획득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누리며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심리적 위치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면 사회성이 좋고 어디서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막내의 위치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쉽게 도움을 요청하고 자기를 돌보게 하며 노력 없이 누리는 성취와 특권을 당연스레 여기기도 합니다.
형제 관계 속에서의 경쟁은 다른 모든 형제들을 이기려는 극단의 노력을 하거나 아예 경쟁을 포기하고 다른 형제로부터의 원조와 돌봄을 계속 받는 아이로 남으려는 두 가지 경향 중 하나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경향은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심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케 하는 밑거름이 되지만 두 번째 경향은 응석받이, 철부지, 문제아로 자라게 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막내를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애 취급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막내가 응석받이, 철부지, 문제아가 되는 것은 부모의 양육 방식 탓이라 해도 지나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막내를 건강한 사람, 자기 몫을 잘 해내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막내라 할지라도 어릴 적부터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하고 제 역할을 부여해 줘야 합니다. 물론 행동의 한계를 명확히 해 줄 필요는 있습니다. 대신 막내라는 이유로 다른 형제들에게 밀리거나 따돌림을 당하지 않도록 그들의 놀이와 경쟁 구도를 잘 살펴보고 적절한 개입을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외동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현재도 미래에도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한 몸에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로 향하다 보니 자신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고 어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잘 터득합니다. 집안에 경쟁자가 없으니 생활은 평화롭지만 형제들과 친하게 또는 싸우면서 지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아이와 나누어 가지거나 협동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해 또래 집단을 포함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학교 생활이 초기에 힘들 수도 있습니다.
또 부모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므로 자칫 의존적인 성향이 되기 쉽습니다. 외동아이는 커서도 어린 시절 관심과 애정의 초점이 되었던 경험을 반복하려고 노력합니다. 항상 무대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자신의 위치가 도전 또는 위협받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불공평하게 느낍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가 되지 않을 때 크게 실망하고 심지어 자신의 이기주의가 완전히 옳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들러는 외동아이를 부정적으로 보았지요.
하지만 요즘은 외동아이를 아들러처럼 부정적인 시선 일변도로 보지는 않습니다. 외동아이가 처한 심리적 위치 역시 긍정적으로 발전할 경우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주는 방법을 아는 것처럼 넉넉한 사랑을 받은 외동아이가 잘 성장하면 다른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고 주위 사람들과 더욱 빨리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합니다. 외동아이로 자란 사람들이 빨리 결혼하고 싶어 하고 아이를 많이 낳으려는 이유는 어릴 적에 혼자 자라면서 느낀 외로움을 보상받으려는 이유에서이지요.
다만, 부모가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집니다. 외동아이라 그저 귀하게 여기며 오냐오냐 키우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존적인 사람, 독불장군, 이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아빠 엄마한테는 너밖에 없어. 그러니까 너만 잘되면 돼.”라는 식의 기대에 찬 말을 자주 듣는 경우 오히려 심적 부담 때문에 활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외동아이를 둔 부모들은 집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인간관계를 밖에서라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친인척 모임이나 결혼한 친구들의 모임에 자주 아이를 데려가 어울리게 하거나 공공도서관 어린이실, 지역 자체 단체에서 마련한 엄마-아이 교실, 문화 센터 등에서 친구를 만들어 주어야겠지요. 또한 아이에게 모든 희망을 거는 기대의 말을 습관처럼 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아이가 많이 외로워한다면 재미있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 주는 것이 좋습니다. 단, 이때는 학교 다닐 때 도움이 되는지의 문제를 떠나 아이가 정말 좋아하고 행복해할 만한 취미 생활을 골라야 합니다. 동식물을 기르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외동딸이 뭐가 나빠?』(비룡소)에서의 주인공처럼 말이지요.

앞서 언급했던 그림책 『외동딸이 뭐가 나빠?』(비룡소)를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외동의 심리와 생활을 유쾌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형제자매 간의 갈등과 화해를 주제로 삼은 그림책과 달리 혼자여서 외로워하는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담아낸 점이 매력 있게 다가옵니다. 저출산으로 외동아이가 늘어나는 요즘의 가족 구도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양 갈래로 묶은 머리에 빨간색 머리핀, 물방울무늬 치마, 각각 다른 색깔의 양말을 신고 팔짱을 낀 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선 여자아이는 무척 자신감이 넘쳐 보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어른들이 많기 때문일까요? 표지 속 여자아이의 이름은 로즈메리 엠마 안젤라 리네트 이사벨 아이리스 말론입니다. 이름이 무척 길지요? 아이가 태어나자 아빠, 엄마, 외할머니, 이모, 삼촌은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이름으로 불려지길 원했고 결국 일곱 개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지요. 가족들은 모두 로즈메리가 귀여워 어쩔 줄 모릅니다.
처음에는 마냥 행복했던 로즈메리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같이 놀 오빠나 언니, 동생이 없어서 심심하고 늘 어른들이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로즈메리가 원하는 것을 모른 채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사랑을 쏟습니다. 로즈메리는 어른들의 사랑에 질식당할 것만 같고 무척 외롭습니다. 자기만 혼자라는 생각에 동생을 낳아 달라고 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로즈메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기 같은 ‘외톨이들’을 모으기 시작하지요. 양말 한 짝, 단추 한 개, 접시에 남은 쿠키 한 조각. 그러다가 거북이, 고양이, 토끼, 강아지처럼 살아 움직이는 동물들을 데려와 놀면서 외로움을 극복해 나갑니다.
외동아이뿐 아니라 외동아이의 가족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작가인 캐리 베스트도 외동딸이었다고 합니다. 꼭 로즈메리만 한 나이였을 때 흰 쥐, 검은 고양이, 초록 거북이, 파랑새 한 마리씩을 데려다 동생으로 삼았다고 하네요.
이 그림책은 외동이어서 외로워하는 아이뿐만 아니라 외동을 부러워하는 아이, 형제자매의 소중함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유용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놓고 경쟁해야 할 형제자매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해 보게 하니까요. 엄마가 함께 보면서 아이의 마음을 열어 준다면 그림책이 주는 효과가 더 커지겠지요.

제 부모님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많은 둘째 딸의 욕심을 충족시켜 줄 만큼 넉넉하지 않았던 형편 때문에 제 눈치를 많이 보셨다는 사실을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맏이와 막내는 뭘 하나 사 달라고 떼쓰는 법 없고 그저 부모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착한 딸, 아들인데 비해 둘째는 많이 줘도 불만, 적게 주면 더 불만이고 자기 생각을 부모 앞에서도 서슴없이 말하는 당돌함에 적잖이 당황하셨을 테지요. ‘도대체 누굴 닮아 저렇게 사납고 욕심이 많을까?’ 하는 의문도 가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점은 언니와 남동생은 부모님이 둘째인 저한테 제일 큰 사랑과 관심을 줬다고 느낀 겁니다. 몸이 약해서 더 예민했고, 악바리처럼 구느라 힘들어서 스트레스 받는 저를 부모님이 늘 안쓰럽게 바라보았다는 게 언니와 남동생의 말입니다.
역지사지해 봅니다. 언니는 맏이로서 언제나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잘 보살피려 노력했는데 바로 밑 여동생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날을 세우고 앙칼지게 덤벼들어 서운했을 겁니다. 남동생은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이유로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었을 테지요. 막내로서 가족으로부터 귀여움 받으며 갖은 응석을 부려도 다 받아들여지는 위치에 있었지만 남동생은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며 일찍 철이 든 탓인지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 빨래를 직접 하고 밥도 스스로 챙겨 먹는 애늙은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다 표독스러운 작은 누나가 들들 볶았으니 기가 눌릴 만합니다. 지금까지 부모님 속을 한 번도 썩인 적 없는 그야말로 착한 아들로 성장해 결혼했고 지금은 시골 부모님 곁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언니를 마음 고생시킨 것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으로 언니가 결혼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맏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지만 현재 저의 심리적 서열은 맏이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제가 나서서 일을 처리해 오다 보니 이제는 부모님도 아들보다 저를 가장 먼저 찾습니다.
부모 교육을 할 때면 꼭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형제자매 간의 우애를 돈독하게 하는 방법은 역지사지하는 것이라고요. 먼저 아빠 엄마가 자신들의 형제자매 관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의 출생 순위와 심리적 위치를 생각해 보고, 그 결과로 형성된 나의 성격과 생활 양식이 지금껏 내 삶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돌아보면 내 아이들의 경쟁 심리와 갈등 양상을 더 잘 이해하고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빠 엄마가 겪은 일들을 아이들이 또 겪는 겁니다. 그러니 아빠 엄마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꼭 아빠 엄마부터 역지사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맏이로서, 둘째로서, 막내로서 당한 불이익과 결핍만 생각하지 말고 형제의 입장이 되어 그 노고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혹시나 미안하고 잘못한 일이 있다면 용기 내어 사과해 보세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한 달 동안 역할을 바꾸어 생활해 보게 하면 어떨까요? 언니, 오빠, 형, 누나가 동생이 되고 동생이 언니, 오빠, 형, 누나가 되어 보는 겁니다. 직접 체험해 보고 나면 아이들은 어떤 얘기를 할까요?

 

참고 문헌
알프레드 아들러, 윤성규, 『성격 심리학-나를 결정하는 고유한 패턴』(지식여행, 2012)
김춘경, 『아들러 아동상담』(학지사 펴냄, 2006)
토머스 J. 스위니, 노안영, 『아들러 상담 이론과 실제』(학지사, 2005)
김필진, 『아들러의 사회적 관심과 상담』(학지사, 2007)
알프레드 아들러, 『아들러 심리학 해설』 (선영사, 1999)
알프레드 아들러, 라영균, 『인간이해』(일빛, 2009)

 

글 :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행복한그림동화책연구소소장)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아동가족상담과 문학치료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행복한 그림동화책 연구소와 마음문학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대학에서 아동상담과 아동문학, 부모교육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 기획자, 특별 기고가로 어린이책이 가진 매력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림책으로 마음 나눔을 실천하고자 행복한 도서관 만들기 운동과 다문화 가정 그림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1. 김윤숙
    2012.12.9 9:47 오후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역지사지 해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제게 꼭 필요한 점을 콕 짚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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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선희
    2012.11.20 12:19 오후

    남매를 키우는 엄마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많은 도움을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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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은아
      2012.11.20 10:41 오후

      uranus77님은 100점 엄마시네요. ^^ 아들, 딸을 낳은 엄마는 100점이라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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