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와 모노드라마의 선상에서

연령 13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9년 4월 21일 | 정가 13,000원

 ’침묵의 카드게임’은 처음 봤을 때 부터 날 사로잡았던 책이다. 장르나, 시놉시스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작가 역시도 구면이었기 때문이다. E.L 코닉스버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클로디아의 비밀’로 한 번 만나본 경험이 있어 ‘침묵의 카드게임’을 읽으면서도 그 때를 회상하곤 했다. ’클로디아의 비밀’이 내 기억 속에 어떤 모습인지를 상기해보자면 박물관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후에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접했을 때에 낯익은 듯한 느낌을 들게 했던 책이며 당찬 남매가 이끌어가는 신비한. 하지만 충분히 사실적인 이야기였다.

 ”야, 이게 그거야? 니가 무슨 출판사에서 자주 받아서 본다는 책이? 야 너 다 읽고 나도 빌려줘!”

또한 객관적으로 이 책은 내 친구들이 가장 흥미를 보였던 책이며, 실제로 나 또한 애착을 가지고 찬찬히 읽었다. 그러자 ‘침묵의 카드게임’ 에 알알이 녹아있던 주인공의 다정다감하고 또 용맹하고, 소년스러운 모습들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이나,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도 재미있을 질문이 책을 보며 떠올랐다.

“이 책은 브란웰에 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코너에 관한 이야기일까?”

책은 브란웰과 코너에 대한 많은 것을 보여준다. 둘 사이를 아우르는 공통점과 ‘친구’의 부분에서 많이 다루지만 브란웰, 코너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경험이 특별하게 씌어있다. 책을 읽을 사람들 역시 이 질문에 답을 구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것 역시 재밌을 것이다.

내 생각은 이 책이 코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다루는 주된 사건인 브란웰이 세상과 경험하는 갈등을 코너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며 코너 개인이 더 성숙해지는 모습에 눈을 오래 두었다. 코너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코너는 자신의 친구인 브란웰을 끔찍이 아끼며(마치 친구가 브란웰밖에 없다는 듯이) 비비언에 대한 풋풋한 감정이 잘 살려져 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뛰는 코너를 보면 명탐정같은 주도면밀함도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리뷰의 말머리에다 ‘스릴러’와 ‘모노드라마’의 선상에 있다고 간단히 줄였는데 그것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을 표현한 것이다. 독자를 읽으면서 가슴 설레게 하는 스릴러와 잔잔한 햇볕을 쬐는 것 같은 모노드라마의 면모가 사이좋게 구색이 맞춰져 있다. 말을 하지 않는 브란웰에게서 단서를 찾아 사건을 추리하고 사람을 만나며 조금씩 조금씩 퍼즐을 맞춰가는 전개가 충분히 스릴러적이며 이 모든 이야기가 브란웰이 해주는 자신만의 이야기라는 점에선 모노드라마의 맛이 느껴졌다. 작가는 또한 책 속의 인물을 다채롭게 그려냈고 배경까지도 섬세한 솜씨로 신경써주었다. ‘브란웰’이라는 조금은 난해한 캐릭터를 그리는 모습을 보자.

브란웰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던 시절, 한번은 학교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브란웰이 내게 유명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숲에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는데 거기서 그 소리를 듣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나무 쓰러지는 소리는 나 것일까 아닐까?”

19쪽~20쪽 中

이 책의 전후에 걸쳐서 화자인 코너는 끊임없이 브란웰의 모습을 읽고 생각하지만  이 부분만큼 브란웰의 성격이나 사람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예시는 없었다. 코너는 브란웰을 보여줄 완벽한 기억을 꺼내 독자인 내게 보여주었다. 또한 작가는 브란웰에 대한 코너의 생각을 통해 때론 통찰력있는 분석과 또는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독자에겐 넌지시 알려주는 센스를 곳곳에 보여주었다.

브란웰은 비틀즈를 매우 좋아했다.

169쪽 中

브란웰이 비틀즈를 그냥 좋아할 수도 있지만, 영국인인 비비언을 좋아하는 것과도 공통점이 있진 않을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게 했다. 작가는 위트있는 묘사로 책을 가득 채웠다.

 

연인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연인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팔을 두르고 있었다. 그 연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비비언이 내 손목의 맨살을 만졌을 때 느낀 감정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153쪽 中

여기선 우정밖에 모르는 것 같던 코너에게서 불같이 타오르는 감정을 볼 수 있었다. 비비언에 대한 집중도도 올릴 뿐아니라, 코너에 대한 많은 모습을 보여주어 좋았다. 재밌었다. 브란웰이 좋아한다기에 약간 질투심을 느끼던 코너가 실제로 비비언을 보자 브란웰의 감정이 이해가 간다고 하는 부분도 재미있고, 되려 자신도 비비언에게 푹 빠지는 걸 보면 귀엽다.

 

책은 끝까지 이런 잔잔하고도 꼼꼼한 드라마를 잘 지켜오며 기분좋게 세이브를 거둔다. 무엇보다 나는 둘 사이의 우정 이상의 것처럼 느껴지는 우정이 마음에 들었다. 비록 주로 일방통행이었지만 책을 잘 풀어나갔기에 작품 내 인물의 내적.외적 상황의 전환이 자연스럽고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잘 만들어진 작품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