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저택 그린 노위

연령 10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4년 6월 20일 | 정가 9,000원

비밀의 저택 그린 노위|루시 보스턴 글 | 비룡소

 

여덟 살의 토즐랜드는 아빠와 새엄마를 떠나 기숙학교에서 생활했다. 방학에도 혼자 학교에 남아 스퍼드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의 연로한 아버지와 함께 지내야 했던 토즐랜드는 어느 날 한 번도 본 적 없는 올드노 증조할머니로부터 함께 살자는 편지를 받는다. 그렇게 그린 노아라는 저택에 사는 증조할머니를 찾아 토즐랜드는 페니 소키로 가게 된다. 상상력이 풍부한 톨리는 열차 안에서 온갖 상상을 하는데, 기차가 홍수에 잠긴 평야를 지나고 몰아치는 비가 모조리 덮어 버린 곳을 지나면서 토즐랜드는 자신이 노아의 방주로 가는 중이라고 상상을 한다. 또한, 저택에 들어서면서  “혹시 우리 증조할머니가 마녀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한다. 처음 만난 증조할머니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토즐랜드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상상력을 재미있게 들어준다.

할머니는 토즐랜드를 톨리라고 부르게 되고, 톨리는 그동안 홀로 지냈던 외로움을 모두 떨쳐내면서 이 집이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다음 날, 톨리는 아이 세 명과 귀부인 두 명이 담긴 초상화를 보게 된다. 열다섯 살 정도인 소년은 토비, 플루트를 들고 있는 아이는 알렉산더, 일곱 살의 꼬마 여자아이는 리넷이며, 파란 드레스를 입은 사람은 세 아이 엄마이고 제일 뒤에 있는 분은 할머니인 올드노 부인이었다. 이들은 아주 오래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인데, 톨리는 몇 백 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온 아이들과 흥미진진한 비밀 숨바꼭질을 펼치게 된다.

홍수에 잠긴 물이 빠지면서 톨리는 저택에서 일하는 보기스 할아버지와 정원을 구경하면서 판자를 찾고, 토리의 말이었던 페스티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게 톨리는 몇 백 년 전에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증조할머니로부터 조금씩 듣게 되는데, 할머니는 마치 톨리를 시험하듯 아이들에 대해 쉽게 이야기해 주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다가, 조금씩 꺼내 들려준다. 자신과 같은 이름을 지녔던 가족 누군가가, 그리고 엄마와 같은 이름을 지녔던 가족 누군가가 흔적을 쌓으며 살았던 곳. 그린 노위는 세월이 켜켜이 담긴 온갖 진귀한 물건들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자신의 방 안에서 그 물건들이 만들어 내는 신기한 그림자를 관찰하던 톨리는 저택에서 지내는 문득문득 그 저택 안에 다른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아이들은 마치 톨리와 숨바꼭질을 하듯 언뜻 보였다 사라지고, 나타났다가도 놀리듯 금방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서 톨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게 되고 여러 번의 숨바꼭질 끝에 결국 세 아이와 만나게 된다. 간혹 자신을 톨리가 아닌 토비라 부르는 증조할머니 역시 아이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몇 백 년 전 대역병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톨리는 슬프고 놀라우면서도 아이들이 여전히 자신 곁에 살아 있는 존재라고 느낀다. 그리고 집안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와 다시 할머니를 통해 과거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톨리는 점차 가족의 진정한 일원이 되어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외갓집이 생각났다. 산을 몇 개를 넘어야 갈 수 있는 외갓집은 깊고 깊은 산골마을이었다. 슬레이트지붕에 작은 방이 몇 개 있었고, 안방엔 빛바랜 사진들이 액자를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어두컴컴한 벽장엔 미로 같은 창고도 있었다. 가끔은 외할머니 따라 산에 올라가 보물을 찾듯 고사리를 꺾으며 놀았고, 사촌들까지 모두 모이면 외갓집은 신나는 놀이터로 변했다. 또래 사촌들과 작은 방들을 헤집고 다니며 술래잡기 놀이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느 날 이웃마을 작은 할머니 회갑잔치에 어른들이 모두 가서 집이 비게 되었다. 내 키보다 높이 있던 벽장에 외할머니는 가끔 촛불 한 개 들고 들어가 한참을 계시다 나오셨다. ‘벽장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숨겨놓은 보물이 있을까? 과거로 연결되는 비밀통로가 있을지도 몰라.’ 항상 궁금했다. 기회는 이때다. 의자에 올라서서 벽장문을 여는데, 쾌쾌한 냄새와 어둠을 마주한 우리들은 손전등을 켜고 한 사람씩 벽장 안으로 들어갔다. 손전등이 비치는 곳 말고는 어두워서 구석구석 보이지 않았다. 벽장 안은 꽤 넓어서 어딘가에 꼭 과거로 연결된 비밀의 문이 있을 것만 같았다. 직사각형 모양의 벽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꽃무늬 벽지가 사방을 덮었고 벽엔 고장 난 스위치와 천장엔 작은 전구도 있었다. 하지만 비밀스러운 것도 없고, 비밀의 문도 없었다. 대신에 오래된 물건들이 많았다. ‘옛날 사진, 재봉틀, 호롱불, 수첩, 가계부, 외할아버지 영정사진, 책가방, 하모니카, 만년필, 몽당연필……’ 오래되고 낡아서 너덜너덜한 물건들도 많았지만 보물을 찾은 듯 신기하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옛날 사진들은 가장 흥미로운 보물이었다.  흑백사진 속 사람들은 하나 같이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모습에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모두가 혼나면서 사진을 찍은 듯 생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은 TV속 사극이나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모습들이어서 낯설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한참을 벽장 속에서 조상님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난 후 비밀의 문은 찾지 못한 채 벽장에서 나왔는데, 외할머니가 가끔 벽장에 들어갔다 한참을 계시다 나오시면서 뭐라 뭐라고 누구랑 얘기하던 기억이 있는데, 사진들을 보면서 혼자 말씀을 하신 건지, 정말 오래 전 사진 속 조상들이 살아나서 함께 대화를 나눈 건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그때를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나오자마자 이번엔 어디서 말썽을 피워볼까? 하는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다 창고로 달려가 숨바꼭질을 했다. 외할머니가 안 계신 사이 외갓집은 비밀스럽고 신비한 집이었다. 벽장에서 창고로, 닭장 안에 들어가 암탉을 조금 괴롭힌 후 싸리문을 빠져나가 고추밭 고랑과 담장 주위를 마구 뛰어다니며 집 안팎을 뒤지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외갓집은 최고의 놀이공원이었다.

외할머니의 모든 것이었던 벽장과 거미줄이 가득했던 창고와 닭장, 좁은 고추밭 고랑까지도 그런 게 보물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돌아가시면서 산골 외갓집은 없어졌지만 기억 속에선 자주 그곳으로 놀러간다. 벽장 안에서 봤던 옛날 물건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조상들의 흔적과 추억이 담긴 진귀한 물건들이었고, 톨리가 몇 백 년 전에 살았던 아이들을 만난 것만큼이나 반갑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미로처럼 엉켜있던 창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과거로 가는 비밀의 통로처럼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때 우리 또한 톨리 못지않게 상상력이 풍부했던 것 같다. 외할머니의 눈을 피해 가끔 벽장 안에서 옛날 물건들 가지고 소꿉놀이도 하고, 창고 안에서 상상력을 총동원해 해적놀이도 하면서 모험을 즐겼다. 그때 우리들은 상상가가 되어 환상적인 모험을 많이 했는데, 지금 이 책을 통해 어린 시절 외갓집을 그리고 있다. ……

저택의 안팎에 놓인 오래된 조각상과 물건들은 톨리가 점차 과거의 일들을 알게 되며 살아나 움직이기 시작하고, 아이들 또한 톨리에게 점차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나 톨리와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통해 그린 노위였던 저택이 그린 노아가 되었던 아픈 과거사가 드러나고,  함께 살아온 적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톨리와 세 아이 사이에는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느낀다.

톨리의 증조할머니를 보면서 그때 외할머니 또한 가끔 찾아오는 우리들이 산골마을의 외로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것 같다. 그 시절이 그립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