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멋진 연극무대로 탄생한 그림책, 장화 신은 고양이 / 비룡소

연령 5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4년 8월 14일 |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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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신은 고양이 세계의 옛 이야기 – 42

샤를 페로 원작 강정연 글/아니타 안제예프스카 그림/안제이 필리호프스키-라뇨 사진 38쪽 | 420g | 228*273*10mm 비룡소

 

보다 재미있고 보다 세련되어 보이는 현대의 창작물 사이에서도 꾸준히 찾게 되는 옛이야기들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그 이야기들은 작가들을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모양을 달리하여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린들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은 어린이가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면 어린이는 성장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단게적으로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타인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결국에는 서로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게 된다.

살다보면 혼란스러운 때가 많다. 언젠가는 스스로 혼란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어린이는 자신을 더 많이 알 기회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가 감정의 동요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어린이에게는 내면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그것을 기초로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서는 경시되고 있지만 도덕 교육도 중요하다. 미묘하고 암시적인 방식으로 도덕적 행위의 이로움을 알려 주는 그런 도덕 교육이 어린이에게 필요하다. 추상적이고 윤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감나면서도 저절로 의미를 깨닫게 되는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옛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의미들을 제공해 준다. 옛이야기는 수백 년 동안 거듭되면서 표면적 의미와 심층적 의미를 함께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모든 심리적인 측면에 동시에 호소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어른은 물론이고 순진한 어린이의 마음에까지 닿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그리고 삶의 보편적인 문제들, 특히 어린이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문제들을 다룸으로써,이제 싹트기 시작하는 자아의 발달을 자극한다. 』- 옛이야기의 매력 / 브루노 베텔하임

그런데 보편적인 선과 악, 권선징악적인 교훈을 담은 옛이야기의 범주에 이「장화 신은 고양이」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1697년 프랑스의 동화 작가 샤를 페로가 발표한 동화집 「옛이야기 Histories ou Conres du temps passe」에 수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며, 그림책뿐 아니라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되어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이 이야기는, 별 능력없어 보이는 막내가 유산으로 받은 고양이 덕분에 행운을 얻는(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배아픈 ) 내용이거든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사랑받는 이야기가 되었는 지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남겨두고 이번에 읽어본 그림책의 페이지들을 아이와 함께 읽어봅니다.

우선 글작가는 원전에 충실하되, 특유의 톡톡튀는 입담으로 이야기를 더욱 맛깔스럽게 풀어냅니다. 그리고 단추로 만들어진 눈, 철사로 만들어진 수염을 가진 고양이를 비롯하여 오래된 깡통, 기계 부속 등 오래된 물건이 재활용된 소품들로 가득한 독특한 페이지들이 눈에 띕니다. 주인공 고양이가 신게 될 신발은 진짜 가죽으로 바느질해서 만들었다고 하네요.

주로 사진을 찍어 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으로 호흡을 맞춰 온 폴란드 작가인 아니타 안제예프스카와 안제이 필리호프스키-라뇨는 장면마다 무대와 소품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서 사실감과 입체감을 풍성하게 담아내고자 하였다는군요. 실제로 일 년 넘는 작업 기간 동안 천 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 완성되었다는 이 그림책은 각 캐릭터와 배경, 소품 하나하나가 작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장면들로 탄생하여 마치 눈앞에서 연극무대를 바라보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이렇게 밝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살리니 긴장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멋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이 된 것 같답니다. 장면장면의 고양이 표정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그나저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고양이 한 마리에 의지하는 막내, 온갖 꾀와 거짓말을 일삼아 왕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고양이, 막내의 재산에 마음을 뺏겨 딸과의 결혼을 허락하는 왕, 끔찍한 외모와 달리 어수룩한 괴물까지, 모든 캐릭터들이 옳거나 바르게 보이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엉뚱한 매력의 이 이야기.

브루노 베텔하임은 이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도덕과 무관한 옛이야기들은 선악으로 양극화하거나 선악을 병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선과 악 사이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으며, 보잘것 없는 인물도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어린이에게 심어 줌으로써 인성발달을 돕는다. 자신이 너무나 하찮아서 아무 일도 못 해낼 거라고 두려워하는 어린이에게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선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옛이야기의 주제는 도덕성이 아니며,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p23

어린이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리고 이 점이 어린이를 매우 실망케 한다. 심한 경우에는 자포자기에 빠질 수도 있다. 옛이야기는 사소한 성취에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고 또 그것으로부터 굉장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제시함으로써, 어린이가 자포자기에 빠지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사소한 성취가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믿도록 용기를 준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믿게 한다. 」

이 이야기가 제게도 왜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이제 조금 이해하게 됩니다. 옛이야기들은 옛날, 멀고 먼 나라에서 일어난 것임을 강조하면서 희망을 주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내용이 아닌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가 ‘비현실적’ 이기는 하지만 ‘거짓말’ 이 아님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고 하는군요. 독립된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과정들인 것두요.

다시 첫장부터 펼쳐서 넘겨 봅니다. 친근한 소품들로 독특하게 표현된 그림들이 더욱 이야기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듯 하네요. 아이와 함께 종이로 책 속 주인공을 흉내내어 보면서 우리만의 연극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속삭여주어보려 합니다. “주인공이 고양이를 무시하지 않고 친해져서 참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