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때마다 새롭고 유쾌한 앨리스

연령 7~13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5년 5월 25일 | 정가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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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같기도 하고, 고운 찹쌀가루 같기도 한 눈이 내린다. 서너 시간 전, 눈이 내리는 폼을 보아하니 금세 그치고 언제 눈이 내렸는가 싶을 정도로 깨끗이 녹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을 뒤엎고 어디가 하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눈 때문에 온 천지가 하얗게 흰 눈으로 덮여 꼭 안개가 낀 것처럼 모든 게 뿌옇게 보인다.


학교 도서실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니 운동장 너머 아름드리나무 뒤편에서, 새로 단장한 놀이터의 터널 미끄럼틀 속에서 작은 토끼 한 마리가 뛰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금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서일까? 어릴 적 TV 만화영화로 보았던 앨리스를 보고 성년이 지난 나이에 처음 책으로 앨리스를 만났었다. 두 번째로는 재작년 인디고의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로, 그리고 요즘 말만 무수히 들었던 화제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들이 들고 읽었다던 비룡소의 앨리스를 다시 만났다.


스무 살 초반에 만났던 앨리스는 마냥 우습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여겼고, 인디고의 책으로 만났을 땐 이미 알고 있는 내용보다는 순정만화 같은 예쁜 그림과 색채에 반해 한 장 한 장을 아껴가며 읽듯 했는데, 지금은 워낙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소설 작품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지 150여 년 전에 쓰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말장난 같이 여겨진다.


회중시계를 들고 부산떨며 가는 토끼도, 커졌다 작아졌다 수시로 변하는 앨리스의 몸도, 눈물로 이루어진 웅덩이에 빠지는 것도, 터무니없는 명령만 내리며 제멋대로인 여왕과 대결하는 것도 모두 엉뚱해 말이 안 되지만, 이 이야기를 따라 읽어가며 유쾌해지는 기분은 무얼까? 각자 하고 싶은 말은 있으나 타인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같은 희한한 캐릭터들의 말과 행동은 익살스럽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답답해하는 앨리스의 심정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해 쉽게 책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같은 작품을 각기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여러 번 읽다보니 아이는 전에 읽었던 책을 가져오며 어떤 부분이 서로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어 한다. 목차만 보아도 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에 번역하는 사람의 몫이 얼마나 큰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비룡소의 앨리스에 ‘바닷가재의 카드리유’라 쓰인 목차가 다른 책에서는 ‘바닷가재의 춤’으로 나오는데, 카드리유란 단어를 보며 이게 뭘까 궁금해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해당 부분을 찾아 읽으며 더 정확히 알고 싶어 하게 된다.


온통 다이아몬드를 엮어 만든 드레스 한 벌로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맹랑한 생각이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통째로 과거 50년 전으로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자주 하는 딸아이와 앨리스를 한 자리에 만나게 한다면 스스럼없이 공감하며 함께 대화하며 즐길 것 같다는 생각에 혼자 ‘픽’하고 웃었다.


어느새 뿌연 하늘에 햇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침침하니 안개가 낀 것 같던 운동장도 시야에 모두 들어오니 금방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인가? 다음에 또 어떻게 앨리스를 만나게 될지 모르나 요즘 만난 앨리스로 인해 수다쟁이 딸아이를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고맙다. 이 약발이 며칠이나 갈런지는 모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