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자 서평: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

저는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의 작가가 바로 첼리스트 정명화라는 것을 알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책까지 쓸 줄은 몰랐거든요. 그것도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을 말이에요. 역시 음악가로서 평생을 살아온 분이 직접 글을 쓰셔서 그런지, 음악의 소중함이 더욱 생생하게 전해졌답니다. 김지혜 작가의 아름답고 섬세한 그림은 작품의 주제와 더없이 잘 어우러져서, 작품이 더욱 깊이 있게 느껴졌어요.

저는 어릴 때 피아노를 정말 좋아했어요. 생생하게 기억나요. 다섯 살 때 길에서 우연히 본 동네 피아노 학원 가방이 너무 예뻐서 피아노 학원에 보내 달라고 엄마를 무척 졸랐던 일, 그 후로 4년 동안 피아노를 배우며 보낸 즐거운 시간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이사를 하며 어쩔 수 없이 피아노를 팔아야 했던 일, 이사하던 날에 소중하게 챙겨 가지고 나온 메트로놈을 실수로 기차에 두고 내렸던 일……. 그 후로 사는 게 바빠서 다시 시작하진 못했지만 마음만은 아직도 피아노로 가득하답니다.

그만큼 제게 피아노는 각별한 악기랍니다. 그런 피아노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모든 음악이 사라져 버린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만약 음악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이라는 재미있는 상상으로 시작된『노래하지 않는 피아노』를 찬찬히 살펴보도록 해요.^^

이 책을 읽다 보니 아이가 아직 어릴 때 일이 문득 떠올랐어요. 우리 큰아들이 돌을 조금 넘겼을 무렵의 일인데, 남편이 급하게 할 일이 있어서 온종일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어요. 너무 바빠서 아이가 찾아도 서재 문을 열어 줄 수가 없었죠. 그 당시엔 아주 잠시 동안만 그랬던 거니까 아이도 그 일을 금방 잊어버릴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 그토록 아빠를 좋아하고 잘 따르던 아이가 아빠가 안아 주면 울음을 터뜨리면서 안기지 않으려는 거예요. 그런 반응이 며칠 동안 계속되어서 모두들 너무나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었어요. 그 일로 아이들 마음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리고 다치기 쉽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지요. 그 후로 문을 닫을 때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충분히 설명을 해 준답니다. “지금부터 아빠는 방에서 일해야 해서 같이 놀아 줄 수가 없어. 대신 엄마가 재미있게 놀아 줄 거야. 아빠 일이 다 끝나고 나면 또 재미있게 놀아 줄게.” 하고 말이지요.

꽃별이도 마찬가지였던 건 아닐까요? 음악이 싫다기보다는, 모두가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만 소외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닐까요? 다들 자기를 피아노 앞으로 밀어내는 것 같은 상황도 아이에게 부담이 되었을 것 같고요. 꽃별이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이해의 눈길과 한 번의 포옹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설명해 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부모 뜻대로 아이를 몰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에요.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이 알아 갈 준비가 되었는데도 말이죠. 어른의 지레짐작으로 아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걸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되도록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원하는 것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그 결과엔 꼭 책임지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말이지요. 음악뿐만 아니라, 아이가 바라는 것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아이가 자랄수록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겠죠.

꽃별이가 음악이 사라진 이유를 엄마와 아빠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마음이 짠했어요. ‘차라리 음악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면 아이는 얼마나 외로웠던 걸까요. 언제나 ‘피아노’ 얘기만 하는 대신에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역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 책을 읽으며 저도 지금까지 아이와 함께 한 시간과 대화를 되돌아보았어요. 그리고 부모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바로잡아 보았지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 아들도 가끔 “노래는 없어졌음 좋겠어.” 하고 말하기에 제가 “그러면 얼마나 심심하고, 재미없을까?” 하고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다시, “노래는 없어지면 안 돼요.”라고 말하네요.
음악이 없어진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아름다운 음악이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하듯, 아이들의 삶도 아름다운 것들로 풍성해졌으면 해요. 성공만을 지향하는 꽉 막힌 길이 아니라,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바르고 여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길 바라 보아요.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엄마 아빠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함께 꾸려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