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책 이야기: 말하는 까만 돌

상담하시는 분에게 상담의 반은 ‘들어 주기’라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무언가 문제가 있어 심리적 처방을 받으려고 상담소를 찾아갔을 텐데 고작 들어 주기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별한 비법은커녕 ‘들어 주기’라니 좀 의아했던거죠. ‘들어 주기’는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잖아요.

그러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어요. 상담이라는 게 문제가 되는 일들을 상담사에게 이야기하고, 상담사들은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데서부터 치료를 시작하는 거잖아요. 속상하고 화났던 일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그 감정이 스스로 풀리는 경험을 누구나 해 봤을 거예요.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법을 찾아서라기보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어 주고 공감해 줬다는 자체에서 위로를 받는 것 같더라고요.

시리즈 일공일삼 시리즈 77 | 김혜연 | 그림 허구
연령 10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1월 20일 | 정가 11,000원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참 중요한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던 참에 『말하는 까만 돌』 원고를 만났어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편견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만 들어 주는 까만 돌이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돌인가요! 말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들어 주기’의 소중함을 이렇게 따뜻하고 조근하게 동화로 말해 줄 수 있구나 싶어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이야기를 쓴 김혜연 선생님은 전작 『나는 뻐꾸기다』, 『코끼리 아줌마의 햇살 도서관』에서 볼 수 있듯 깊이 있는 시선에 간결하면서도 따뜻한 문체로 소박한 우리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잘 담아내는 작가지요. 이번에 출간된 『말하는 까만 돌』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마음 둘 곳 없는 지호가 길에서 까만 돌을 줍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지호가 까만 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담았어요.

『말하는 까만 돌』을 만들면서 저 역시 까만 돌과 이야기 나누는 기분이었어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깔깔거리기도 하고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하면서 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나는 누군가에게 까만 돌이 되어 주고 있을까, 과연 나의 까만 돌은 누구인가 생각해 볼 수 있었지요.’

개성 넘치는 그림으로 나오는 책마다 화제가 되는 허구 선생님께서 삽화를 맡으셨어요. 주위에서 이번 그림 좋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어요. 그림이 뻔하지 않고, 하나같이 재밌어요. 특히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들어가는 작은 컷들이 무척 유머러스하답니다. 참, 에피소드를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요, 마지막에 급하게 수정한 그림이 한 컷 있었어요.

어느 부분이 달라졌을까요? 잘 안 보이신다고요? 한번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보세요.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으니까요. 아! 찾으셨어요? 크크. 딩동댕! 맞아요. 할머니의 옷이 다르죠. 원래 그림에는 할머니가 하얀 웃옷에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옛날 할머니 같아 보이는 거예요. 작은 차이지만 작품에 주는 느낌이 예스러워질까 봐 마지막에 허구 선생님과 상의해 바꾸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신세대 할머니처럼 땡땡이 원피스를 입게 되었답니다! 때론 작은 차이가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