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2010 블루픽션상 수상작 『번데기 프로젝트』 이제미 작가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던 길에 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었는데 주변 소음 때문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몇 번이나 무슨 일 때문에 전화하셨느냐고 여쭤 봤었어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소식을 듣고 가족에게 가장 먼저 전화해 알렸는데 식구들도 처음엔 다들 믿지 않았어요.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지하철 창밖을 내다보는데 몇 달 전만 해도 철근밖에 서 있지 않던 건물이 어느새 완공되어 있더라고요. 저도 언제쯤 정식 작가가 되나, 과연 그날이 오기는 하는 건가, 하고 의심을 품은 적이 많았는데 이렇게 책까지 출간하고 보니 결국 바라던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싶어 혼자 감동했답니다. 열심히 하면서 기다리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지인들의 반응은 ‘대단하다’였어요. 제가 국가고시보다 더 어렵다는 문학 공모에 계속 도전할 때 다들 과연 쟤가 될까 반신반의했었거든요. 백수로 글만 쓸 때는 맨땅에 헤딩한다는 소리도 들어 봤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수상 소식을 알리며 제일 먼저 한 얘기도 ‘이제 나 무시하지 마’였죠. 아무튼 계속 무시를 당하다가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역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야 인정해 주는구나 싶어 조금 씁쓸하기도 했고요.

사실 지금까지의 제 인생은 프로젝트의 연속이었어요.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려고 아등바등했죠.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한 달에 책 15권 읽기’, ‘매일 운동 1시간 하기’, ‘하루에 소설 100매 쓰기’, ‘하루 한 명 이상의 외국인에게 말 걸기’ 등등 정말 남들이 보면 뭐 때문에 저렇게 힘들게 사나 싶을 정도로 무식하게 열정적이었어요. 하지만 제 자신은 스스로 정한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그렇게 죽도록 매진할 수밖에 없었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 좀 더 즐겁고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 2007년부터 ‘매일해 프로젝트(목표를 위해 뭔가를 매일 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클럽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멤버들은 기타 연주, 포토샵 배우기, 성경 읽기, 영어 공부, 다이어트 등등 각자의 목표가 하나씩 있었는데요, 아직도 그때의 열정적인 흔적들이 클럽 게시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운영자인 제가 제대로 돌보지 않아 클럽이 활발히 돌아가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는 다시 그때의 분위기를 다시 살려 내고 싶어요. ‘매일 하면 이루어진다’가 ‘매일해 프로젝트’의, 그리고 제 삶의 모토예요.

옳고, 바르고,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이 나오는 소설은 재미없잖아요. 전 현실에서도 뭔가 특이한 사람들, 비주류나 자신의 사회적 지위, 주어진 역할과는 상반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편이에요. 선생이라고 해서 공부 안 한다고 야단치고, 친구라고 해서 기운을 북돋워 주는 캐릭터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껴요. 이건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제가 소설을 쓸 때 빌려 오는 캐릭터들이 사실은 제가 무척 싫어했던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성격 강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소리 꽥꽥 지르고 남 무시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캐릭터를 제가 소설에 빌려 와 쓰고 있더라고요. 약간 섬뜩한 기분도 들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는 별로 사랑받을 만한 인물들이 아니지만 소설 속에서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비춰진다는 것이죠. 소설의 세계는 현실 세계와 반대인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번데기 프로젝트』를 통해 현실은 크고 작은 비극으로 차고 넘치지만 반드시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심각하고 어두운 사건들을 어처구니없고 웃겨 보이게 쓰려고 노력했죠. 사실 조금만 비틀어 봐도 우울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거든요.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한테 많이 맞고 자랐는데, 그런 얘기를 소설에 넣으니까 아버지가 무서워서 소설을 못 읽으시더라고요. 딸이 쓴 책이라고 기쁜 마음으로 읽다가 중간쯤에서 도저히 못 읽겠다고 그냥 책을 덮으셨대요. 속으로 복수했다고 생각했죠.(웃음) 그런데 그런 점도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땐 나를 힘들게 하던 일이 지금은 저를 작가로 만들어 준 거잖아요.
고등학교 때 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무리 지어서 어딜 다니는 성격이 아니었죠. 혼자 있고 싶어서 화장실 변기에 들어앉아 점심시간 내내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밖에서는 애들이 왜 이렇게 안 나오느냐고 화장실이 급하다고 울부짖는데도 말이죠. 그래도 몇몇 친했던 친구들과는 릴레이 소설 같은 것도 쓰고 그랬어요. 쓸 때는 나름 진지하게 임하는데 다 쓴 걸 보면 아주 웃기죠. 인물에 일관성도 없고,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어떠한 복선도 없이 장르가 미스터리에서 멜로로, 멜로에서 코미디로 바뀌기 일쑤였죠. 저희끼리 원고 독촉도 하고요.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지만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웃기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 장을 딱 덮었을 때 눈물이 줄줄 흐르는 소설이면 더 좋겠어요.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목표는 분명할수록 좋으니까요. 그리고 이미 읽어서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 세 번, 그 이상 읽을 수 있는 중독성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사실은 순수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소설(달이나 히말라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같은 것)도 쓰고 싶은데, 아무래도 소설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이 전개되는 장르이다 보니 제가 경험한 일들을 우선적으로 쓰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이야기하는 제 자신도 빠져서 흥분할 수 있을 만한 소설을 쓰려면 다양한 경험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