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날은 없다』, 제목이 좀 거칠죠? 그냥, 『개.날.다』로 기억해 주세요. 이 작품은 형제와 남매 간의 폭력 이야기입니다. 날마다 형한테, 혹은 오빠한테 폭행을 당하고 사는 아이가 있다면 정말 개 같은 날의 연속이라 느끼겠죠?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런 아이가 수없이 많아요. 이런 ‘개 같은 날’을 ‘개가 나는 재미있는 날’로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제목입니다. 강민과 강수, 민욱과 미나, 각각 다른 집에 살고 있는 형제, 남매들이죠. 그런데 폭력으로 인한 아픔을 겪으면서 또 다른 폭력이 발생되는 과정을 그렸어요. 부모님들이 창피하다고 집 안에만 가둬 두었던 형제 간의 싸움, 그때그때 손쉬운 미봉책으로 막아 두었던, 그리고 세월이 흘러가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을 밖으로 돌출시킨 이야기입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라도 용납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부모님들께서도 자녀들의 폭력이 한없이 야속하지만 집안사정이고 솔직히 자존심과 관련된 일이라 드러내 놓지 못하고 혼자서 속을 끓이며 속상해하고 있습니다. 예전의 대가족 제도에서는 이런 폭력이 위계질서에 따라 자체적으로 해결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형제 간의 폭력이 발생하면 일방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정해지고 그 대결 구도는 끊임없이 되풀이되지요. 이런 형제 간의 폭력은 나이가 들어서도 내·외적 상처로 남아 불신과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형제 간의 폭력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 보이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 형제 간의 폭력을 가정 안에서, 혹은 부모님들의 자존심 문제만으로 가두려 하지 말고 드러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서로의 입장을 밝히고 이해의 폭을 넓혀 갈 때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형제 간의 폭력에 대한 글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제는 형제 간의 폭력을 각 가정의 부모에게만 맡길 수 없는 현실적인 여건과 상황임을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폭력과 과거의 폭력을 동시에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은 형의 폭력으로 인해 현재 고통을 겪고 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과거에 오빠에게 당했던 폭력 때문에 큰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폭력을 통해서 동시간대에 파생되는 점층적인 또 다른 폭력을, 과거에 당했던 폭력을 통해서는 잠재된 트라우마에 잠식되는 한 사람의 불행한 삶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폭력의 상처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어떤 식으로든 한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현명한 부모요? 글쎄요. 누구든 다 현명한 부모가 되고 싶지 않을까요? 그러나 내 몸에 있던 자녀도 이미 분리된 이후엔 하나의 개별적인 인격체입니다. 그들은 각기 다양한 성품과 개성을 지니고 있기에 어떤 절대적 표준을 제시할 수 없을뿐더러 그 표준에 맞출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현명한 부모를 요구하는 것, 그것 자체가 바로 이데올로기가 아닐까요? 현명한 부모의 기준이나 표준은 있을 수 없고, 마찬가지로 한 배 속에서 나온 자녀들도 각기 다른 성품과 생각들을 지니고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현명함을 요구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부모들, 정말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부모와 자녀가 인격과 인격으로 만나야 합니다. 다양성을 전제로 한 인격 말입니다. 부모도 자식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도 아프고 힘들고 괴롭다,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 놓고 소통을 시도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세상을 아니, 세계를 어른들과 똑같이 다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족한 것은 경험뿐,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현명할 때도 많아요. 그러니까 현명한 부모만 요구할 게 아니라 부모와 자식, 서로가 현명해질 수 있도록 소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 작품에서는 비폭력 언어 사용과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한 치유를 작은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것도 소통의 한 모형을 보여 주기 위한 의도일 뿐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형제와 형제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 모두가 연구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아웃사이더를 향한 본래적 측은지심이라고 하면 욕먹을까요? 저는 청소년 시기를 시대적 가난과 맞물려 아웃사이더로 아프게 살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제 정신연령이 아직 10대에 머물러 있고 아이도 아닌 것, 어른도 아닌 것에 대해 편들려는 의식이 강해요. 그러다 보니 제 초점은 언제나 청소년들에게 머물러 있고요. 제가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청소년 소설을 연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제 자신의 자연스러운 발현 과정이지요. 그러니까 제가 부지런히 청소년들을 만나러 가는 것도 어떤 거창한 철학과 사명 때문이 아니에요. 그저 그들과 만나는 게 좋아요. 그들의 눈을 마주보고 있으면 참 행복해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뭔가 잘 통할 것 같고 사실, 잘 통해요. 우린 친구니까요. 저는 이 푸른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간절히 기도하지요. 이들이 끝까지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자신에게 더없는 가치를 부여하면서 찐한 Kissing my life 하게 해 달라고. 저는 감히, 모든 청소년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니 톡,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빛깔 있는 울림이 묻어나는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또 의도적으로 학교나 도서관 강연을 많이 나가는 이유는 한국 청소년 문학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성장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특정 연령대를 한정해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청소년 소설 또한 성장 소설로 뭉뚱그려지고 있지요. 현재, 청소년 소설의 정체성은 ‘오늘, 여기의’ 복잡다단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꼭 성장을 담보하지 않아요. 시간의 흐름은 소멸과 생성을 의미합니다. 기존에 없었던 문학이라고 그 생성의 의미를 무시할 순 없다고 봅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청소년 문학 작가가 있고, 그것을 수용, 향유하는 독자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이론이나 학문적 연구가 미진하다고 해도 청소년 문학은 그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분명히 청소년 소설이란 타이틀로 상을 받고 세상에 알려지고도 스스로 그 정체성을 거둬 버리는 일도 있지요. 어쨌든 이미 독일이나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 소설이 학문적으로나 장르적으로 분명하게 자리매김할 때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강연을 갈 때마다 여러분께 전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위의 책 중에서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작가의 말에 썼던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내 푸른 친구들아,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든지 내가 이일을 하면 사람의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을까? 그가 누구든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고 나와 어떤 관계가 있든(특히, 이 말을 강조함), 돈이 많든 적든, 사람 대접 받으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하면 좋겠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도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생각, 마음속에 꼭 새기고 살아가면 좋겠어. 내 간절한 바람이 담긴 이 말, 기억해 줄 수 있겠니?
그리고 이 책을 만나게 될 부모님들,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또다른 이름이 아버지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힘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