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 여행: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내가 잘못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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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 마리 늑대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 전해지는 우화이지요.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말합니다. “아가야! 사람들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두 늑대는 매일매일 끔찍하게 싸우는데 싸움이 끊이질 않아. 검은 늑대는 분노, 후회, 슬픔, 탐욕, 질투, 거짓, 교만, 열등감을 먹고 살지. 반대로 흰 늑대는 사랑, 평화, 기쁨, 용서, 웃음, 희망, 친절, 관용, 열정을 먹고 살아. 네 안에서도 그 싸움은 일어나고 있어.” 손녀가 묻습니다. “그럼 할아버지. 흰 늑대랑 검은 늑대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빙긋이 웃으며 말합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늑대에게 더 많은 먹이를 주셨는지요? 만약 검은 늑대를 살찌웠다면 올해는 흰 늑대를 보살피는 데 시간을 투자해 보면 어떨까요? 절대 용서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용서함으로써 말이지요.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용서하고 싶지 않은’ 용서의 대상은 종종 아버지인 듯합니다. 지난달 ‘엄마와 화해하기’에 이어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어루만져 주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 ‘아버지를 용서하기’를 제안합니다.

그림책으로 아버지를 만나면……
대학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주제의 그림책을 보여 줍니다만 아버지에 관한 그림책을 보여 주는 날은 유독 분위기가 무겁습니다. 아버지와 전혀 대화를 하지 않는다며 말문을 연 학생은 다가가 애교를 부려도 아버지는 반응이 없어서 어릴 적에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와의 냉랭한 관계가 만성이 되어서 아무렇지도 않고 더 이상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지 않을 거라며 표정 없는 얼굴로 얘기하더군요.
또 지역 사립대에 다니는 딸을 부끄러워하는 아버지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 싫다며 울먹이는 학생, 자신이 선택한 전공을 인정하지 않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아들이 법대에 다닌다고 거짓말하는 아버지 때문에 죄인이 된 기분이라는 학생, 다혈질인 아버지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집안에 긴장감이 돈다는 학생, 이대로 세월이 가면 결국 아버지와는 지구와 달만큼 거리를 두고 지내게 될 텐데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혼자 고민했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거나 아이를 억압하고 자주 야단치면서 키우는 사람들,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와 자주 다투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무척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에 대한 그들의 기억은 대부분 부정적이지요. 무능하고, 외도를 하고, 가족을 버리고, 술에 취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대화를 거부하고, 출세를 강요하고, 도박에 빠지고,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합니다.
성인이 되어 부모가 된 지금은 아버지에 의해 인생이 좌우될 시기가 아닌데도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과거의 기억과 현재 진행 중인 갈등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족의 상징이자 정신적인 지주인 아버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생긴 크고 작은 문제는 성장하는 내내 마음을 힘들게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원망스러운 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누군가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아빠들은 대체로 자상하고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며 때로는 친구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바람직한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애를 쓰지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아빠의 모습은 무엇보다 가슴 찡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를 부정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아버지가 나오는 그림책을 보여 주면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관점의 변화(다르게 보기)를 일으키기 위한 일련의 치유 활동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아버지를 향한 원망을 쏟아 놓지만 결국 아버지도 가엽고 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때로는 뜨거운 눈물이, 목이 메어 더 이상 잇지 못한 이야기의 여운이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측케 합니다. 굳이 상담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그림책만으로도 묻어 두었던 아버지와의 갈등, 원망, 분노를 옅어지게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천천히, 조금씩 자기 치유를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아버지의 고단한 일생을 알게 해 주는 그림책, 『막대기 아빠』

연령 5~9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9년 6월 30일 | 정가 13,000원
수상/추천 동원 책꾸러기 추천 도서 외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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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 아빠 (보기) 판매가 12,600 (정가 14,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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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도널드슨이 쓰고 악셀 셰플러가 그린 『막대기 아빠』(비룡소, 2009)는 가족을 떠난 막대기 아빠의 모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보금자리 나무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던 막대기 아빠는 어느 날 아침 운동을 하다 그만 개에게 물려 가서 나무토막 장난감이 됩니다. “난 막대기 아빠야. 막대기 아빠라고!” 아무리 소리쳐 보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막대기 아빠를 이리 비틀고 저리 꼬며 함부로 다룹니다. 던지고 물에 띄우고 눈사람 팔로 쓰고 심지어 모래성의 깃대로 사용하지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가운데서도 막대기 아빠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애씁니다. 가족의 품을 떠나 있지만 한시도 가족을 잊지 않는 막대기 아빠, 그리고 아빠가 없어서 크리스마스가 즐겁지 않은 막대기 가족을 통해 함께 일 때 더욱 행복한 가족,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서로를 그리워하는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힐링을 주제로 부모 교육을 할 때 『막대기 아빠』를 자주 보여 줍니다. 표면적으로 가족 사랑을 얘기하지만 너머에 또 다른 메시지가 있는 책이기 때문이지요. 그림책을 본 이들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말이다.”, “가족 사랑을 얘기한 평범한 그림책”이라는 의견을 많이 내놓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참여자들의 평범한 생각에 관점의 변화를 일으킨 분을 만났습니다. 50대 중반이라고 말한 그분은 『막대기 아빠』를 본 느낌을 “우리 아버지들의 인생을 보는 것 같아 짠했다.”고 표현하더군요. 아버지가 되면서부터 자신의 인생보다 가족의 인생을 위해 살아야 하는 아버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막대기처럼 이 사람한테 차이고 저 사람한테 무시당하며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고단한 아버지가 떠올랐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 순간 여기저기서 “아!” 하는 공감의 탄성이 터져 나왔지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고 싶어 조심스럽게 그분께 아버지와의 관계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은 저와 라포 형성이 되지 않았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갔습니다. 그분을 이제부터 영숙 씨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던 영숙 씨의 아버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집과 땅을 잘못 선 보증으로 날려 버렸습니다. 그 후 재기하겠다며 이런 저런 일을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술로 울분을 달래던 아버지는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풀어 놓았습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방 안을 진동하는 술 냄새와 초점 없던 아버지의 눈빛에 질려 자신은 술을 안 마시는 남자와 결혼할 거라 다짐했다고 합니다. 인생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결혼한 지 3년이 지날 무렵부터 남편은 술 마시느라 집에 안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아이들과 먹고 살 생활비를 조금 주고는 한동안 사라졌다 다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영숙 씨는 자신의 팔자를 원망하며 마음이 황폐해져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아버지 탓이라며 병상에 초라하게 누워 있는 아버지를 향해 모진 말을 퍼붓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어 능력마저 상실한 아버지가 슬픈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순간 아버지의 인생도 참 가엾다는 생각이 들면서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용서’라는 단어가 마음을 스치고 난 뒤로 남편을 향한 원망을 접고 무조건 아이들과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남편이 조금씩 술을 줄이며 새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가정을 챙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그만한 능력은 안 되고 무서워서 비겁하게 술 뒤로 숨었다는 고백을 하면서요. 그때 처음으로 남자도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숙 씨는 자신의 과거 경험 때문인지 『막대기 아빠』가 단순히 가족 사랑만을 얘기하는 그림책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조금 더 산 사람으로서 젊은 엄마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있다면 용서하고, 남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바라거나 의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이기 전에, 남편이기 전에 그들도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말이지요. 영숙 씨의 사연은 그림책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습니다.
다른 참여자들에게 지금까지 영숙 씨의 사연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스쳐간 깨달음이 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와 남편의 삶이 고단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참 이기적인 딸이고 아내였다.”,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 언제나 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곱씹으면서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 역시 가족이라는 굴레 때문에 고단하게 살아온 피해자였다.”, “앞으로 아버지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잘 해 드려야겠다.”, “퇴근해서 온 남편이 아이들과 안 놀아 준다고 화를 자주 냈는데 무척 미안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림책을 봤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난 막대기 아빠야, 막대기 아빠라고!’ 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절규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마음을 다독여 주는 그림책의 치유력
한 권의 그림책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으며 이를 내 삶에 어떻게 반영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마다의 인생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림책 심리 여행을 처음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가와이 하야오(임상 심리학자)는 그림책의 치유적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 비움, 회상, 사색, 가족 등 어른들에게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의 그림책들은 읽는 이 자신의 생활과 결부시켜 의미 부여를 하고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에서 삶의 본질을 생각해 보게 한다고 말이지요.
영숙 씨의 아버지에 대한 담담한 회상은 ‘그림책을 어떻게 보면 마음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되는가’를 보여 준 좋은 사례가 되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오늘의 감동을 언급해도 되겠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물론이죠. 전혀 부끄럽지 않은 내 과거예요.”라며 흔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 말 또한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흔히들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억누르고 좋지 않은 경험들을 부끄러워하며 숨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일을 겪고도 당당하게 부끄럽지 않은 내 과거라 말할 수 있는 용기에 우리는 모두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고마움으로 바꾸어 준 『아버지와 딸』
미카엘 두독 데 비트의 『아버지와 딸』(이숲)은 엄마들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그림책으로 만든 작품이지요. 어릴 적에 떠나간 아버지를 일생 동안 그리워하며 기다린 한 여성의 이야기가 네덜란드의 평평한 대지와 간척지를 만들기 위해 쌓은 둑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아버지와 딸은 폴더(둑을 쌓아 만든 간척지)에서 자전거를 타며 추억을 만듭니다. 잠시 후 자전거에서 내린 아버지는 딸에게 작별 인사를 하더니 배를 타고 천천히 노를 저어 떠납니다. 딸은 하루 종일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아버지는 해가 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시간은 흘렀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기다리던 아이는 소녀에서 숙녀로, 중년의 부인으로,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삶은 딸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아버지만 돌아오지 않았을 뿐…
할머니는 둑 아래로 내려갑니다. 물이 있던 자리에는 갈대만 무성합니다. 할머니는 텅 빈 마른 땅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그곳에 몸을 뉘입니다.

할머니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일어나 무작정 달립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아버지와 딸』중에서

엄마들은 잔뜩 긴장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곤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가 된 딸은 숙녀의 모습으로 변해 아버지를 만납니다. 혹자는 딸의 간절한 바람이 꿈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또 어떤 독자는 할머니가 아버지를 만나는 상상을 하며 편안히 죽음을 맞이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은 읽는 이의 상상에 맡겨 두어야겠지요.
잠시 후 침묵을 깨고 엄마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할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질 때의 모습이 아닌, 숙녀로 변해 아버지를 만났을까요?” 엄마들의 대답은 세 가지로 압축되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가장 예뻤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 결혼할 남자 친구를 아버지께 보여 주고 싶은 딸의 마음을 반영한 게 아닐까, 아버지가 가장 그립고 필요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딸들의 애틋한 감정이 묻어나는 답변들입니다.
치유적인 질문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묻고, 그 이유를 함께 이야기하는 활동을 해 보았습니다. 엄마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다정한 딸이 되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자식에게 무심했던 아버지를 향한 원망,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떠올렸고, 끝내 눈시울을 붉히는 엄마도 있었습니다.
한 엄마는 『아버지와 딸』 덕분에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정성껏 보살펴 드릴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젊어서는 가족에게 불친절했고 지금은 노환에 우울증이 겹쳐 가족을 힘들게 하는 아버지가 얼른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못된 생각을 했는데, 『아버지와 딸』을 읽고 난 뒤로 그래도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있어 줘서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는 것이었지요. 아버지 병간호에 지쳐 어린 딸에게 내던 짜증을 멈추게 된 것은 더불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 그림책 읽어 드리는 자신의 모습을 딸이 무척 좋아하더라는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요즘에는 딸이 외할아버지를 위해 그림책을 읽어 드린다고 하더군요. 세월이 흐르면 이러한 변화가 엄마와 딸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격려했습니다.

아버지와 나의 인연은 기적입니다
그림책이 이루어 낸 감동적인 사연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이가 한 고비 또 한 고비를 넘기며 성장하는 기적 같은 순간에 엄마가 느꼈던 감정을 담은 『너는 기적이야』(책읽는 곰)를 수업 시간에 보여 주었습니다. 그 책을 보고 한 학생이 독후감을 써 냈습니다. 사실 학기를 시작하자마자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책 한 권을 골라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독후감을 써 오라는 과제를 내 주었습니다. 책에 대한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그 책으로 인해 행동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자신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그 학생이 제출한 독후감 과제는 A4용지 왼쪽에 한 편의 시가, 오른쪽에는 시에 담긴 사연이 적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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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영화 「버킷 리스트」를 감상한 후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한 가지만 적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이 학생이 ‘아버지와 함께 여행가기’라고 적어 냈을 때만 해도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각별하다고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독후감을 보고 나서야 왜 한 가지 소원으로 ‘아버지와 함께 여행가기’라고 적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끊임없이 아버지를 노래한 학생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다 보면 언제나 걱정스럽고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시를 쓴 학생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불평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을 노래합니다. 대학의 낭만을 한창 즐겨야 할 시기에 이미 철이 훌쩍 들어 버린 학생을 보면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아버지는 무쇠처럼 강해야 하고 뭐든 잘해야 하고 자식들 앞에서 나약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림책 『초강력 아빠 팬티』(아름다운 사람들)에 나오는 아빠와 같은 아빠를 동경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등에 수십 명의 아이를 업고도 끄떡없는 힘을 가진 아빠, 아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단련시키는 그런 아빠를 말이지요.
『아버지의 꿈』(노란상상)에서처럼 아버지한테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나의 꿈이 소중했고 결혼해서는 내 아이들의 꿈이 소중해서 과연 내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내 아버지에게도 꿈이란 게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져 본 적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주를 보여 주려고 별이 빛나는 밤 언덕 위 들판으로 아들을 데려간 아빠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주는 정말 넓지? 우주를 보고 있으면 내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진단다.” 하고 말입니다. 이처럼 우주가 아닌, 인생의 의미를 아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던 아빠는 재수 없게도 개똥을 밟고 맙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아들의 손을 꼭 잡으며 또 이렇게 말하지요. “아빠는 네가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 주고 싶었단다.” 하고요. 그림책 『아빠가 우주를 보여 준 날』(크레용 하우스)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부츠를 들고서 코를 벌름거리는 아빠가 그려져 있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힘들다면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나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도 분명 처음에는 우주를 보여 주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 주려 했던 좋은 아버지였을 텐데……, 막대기 아빠가 끊임없이 가족에게 돌아오려고 한 것처럼 남모르게 노력했을 텐데……, 우리 아버지가 그러지 못했던 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연이 있었기 때문일 거야’ 하고 말이지요.


d_img4글 :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행복한그림동화책연구소소장)
대학에서 국어 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아동가족상담과 문학치료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행복한 그림동화책 연구소와 마음문학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아동상담과 아동문학, 부모교육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 기획자, 특별 기고가로서 어린이책의 매력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으로 마음 나눔을 실천하고자 행복한 도서관 만들기 운동과 다문화 가정 그림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