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 문학상

 bir_awards_logo_g 「난 책읽기가 좋아」 시리즈로 그림책에서 본격적인 읽기책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사랑을 받아온 비룡소가 저학년을 위한 동화를 공모하기 위해 시작하는 새로운 문학상입니다.

 당선작

대상 : 김진나의 「디다와 소풍 요정」
우수상 : 이주희의 「고양이책」외 2편
최유진의 「빨간 머리 마녀 미로」

심사위원: 김진경(동화작가), 김리리(동화작가), 김지은(아동문학평론가)

본상: 상패

부상: 대상 1,000만 원(선인세) / 우수상 500만 원(선인세)

연령 10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6년 3월 17일 | 정가 10,000원
수상/추천 비룡소 문학상 외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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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 7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6년 10월 17일 | 정가 11,000원
수상/추천 비룡소 문학상 외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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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 8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6년 10월 14일 | 정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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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 경위

저학년 동화의 지평을 넓히고 참신하고 재능 있는 작가의 발굴을 위해 비룡소에서 제정한 비룡소 문학상의 5회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6월 30일 원고를 최종 마감한 제5회 비룡소 문학상에는 옛이야기, 의인화동화, 생활동화, 판타지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담은 저학년 동화 총 191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고, 예·본심의 심사 과정을 거쳐서 김진나의 「디다와 소풍 요정」을 대상작, 이주희의 「고양이책」외 2편, 최유진의 「빨간 머리 마녀 미로」를 우수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본심작

  • 「빨간 머리 마녀 미로」
  • 「누나가 사라졌다」
  • 「디다와 소풍 요정」
  • 「삐리뽀라 삐리뽀」 외 2편
  • 「고양이책」 외 2편
  • 「힐라볼라 둥둥둥」 외 2편
  • 「토끼백작의 신부 찾기」

심사위원으로는 김진경, 김리리, 김지은 님을 위촉하여 심사하였고, 예심 결과 총 7편을 본심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심사위원 세 분이 지난 8월 11일 본사에 모여 논의한 결과, 김진나의 「디다와 소풍 요정」을 대상작, 이주희의 「고양이책」외 2편, 최유진의 「빨간 머리 마녀 미로」를 우수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심사평

이번 문학상 본심 심사는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어느 작품을 대상작으로 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수준이 높고 신선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이 새로우면서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작가세대가 등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우선 이전의 많은 작가들이 ‘호박처럼 생긴 럭비공’ 식으로 자연 사물에 토대를 둔 상상력을 보여주었다면 응모작의 작가들은 ‘럭비공처럼 생긴 호박’ 식으로 도시 사물이나 독서체험 등의 간접경험에 토대를 둔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교훈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작가주의적 경향이라든지 현실과 머릿속의 생각을 잘 구분하지 않는 어린이의 사고에 토대를 둔 환상성의 자연스러운 도입 등이 공통된 특징으로 보였다.

「누나가 사라졌다」는 소소하게 괴롭히는 누나에게 화가 나서 중얼거린 저주가 현실화되어 누나가 실내화의 판박이 인형이 되어버리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누나가 실내화의 판박이 인형이 되었다는 엉뚱한 발상을 고리로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돋보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기발한 단상에 의존해서 단선적으로 전개되어 어딘가 균형이 기운 엉성한 느낌을 주었다. 앞부분의 누나와 갈등도 장난 수준이어서 누나가 실내화의 판박이 인형이 된 게 필연적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우연으로 느껴지고, 앞부분의 누나와의 갈등과 누나가 판박이 인형이 된 이후의 사건들과의 연관성도 좀 더 탄탄했으면 싶다. 「누나가 사라졌다」는 만화적 문법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만화는 그림이 위주가 되기 때문에 글의 구성이 엉성해도 충분히 리얼리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글이 중심이 되는 동화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빨간 머리 마녀 미로」는 톡톡 튀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고아이고 빨간 머리여서 왕따를 당하는 주인공 미로가 입양되어 천재 발명가인 오빠 수리의 기발한 발명품들을 매개로 환상적인 경험을 하고 그를 통해 갈등을 극복하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는 영상매체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영상매체는 영상을 통해 가상의 세계를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 작품 역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또한 영상매체는 숨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이미지를 통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이 작품 역시 엄밀한 구성없이 기발한 단상들을 숨 쉴 틈 없이 독자들에게 던진다.
라깡은 히끼꼬모리 같은 현대적 자폐를 전통적 자폐와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 자폐는 주체와 바깥 세계가 구분된 상태에서 주체가 바깥 세계로 난 창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이와 달리 현대적 자폐는 자본주의 사회가 숨 쉴 틈 없이 쏟아내는 이미지의 연쇄에 압도되어 주체와 바깥 세계의 경계 자체가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다매체 시대에 문학이 다른 매체의 영향을 받는 건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매체의 영향이 문학매체 고유의 특성을 무너트리는 데까지 나가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다매체 속에서 문학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문학이 지켜야 할 금도는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빨간 머리 마녀 미로」는 위태롭게 느껴졌다. 문학은 주체와 바깥세계를 엄밀히 구분하는 속에서 그 관계를 모색하고 상상하는 매체이다. 압도적인 이미지의 연쇄를 통해 주체와 바깥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다매체 시대에 문학의 역할은 오히려 이러한 문학의 문학다움을 잃지 않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이것이 사줄 만한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빨간 머리 마녀 미로」를 우수상으로 한정한 이유이다.

성인문학에서는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구분하는 편이다. 본격문학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물에 빠진 사람에게 밑바닥에 발이 닿도록 만드는 문학이다. 물에 빠졌을 때는 밑바닥에 발이 닿아야 빠져 나오기가 쉽다. 그래야 물의 깊이를 정확하게 알게 되어 쓸 데 없는 두려움과 상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중문학은 밑바닥에 발이 닿게 하는 데 별 관심이 없는 문학이다. 달리 말하면 대중문학이 현실을 유지시키는 기성의 이데올로기에 안주하는 문학이라면 본격문학은 이데올로기화한 언어를 부수어 새롭게 함으로써 기성의 현실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일으키는 문학이다.
이제까지의 어린이문학에서는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어린이가 안고 있는 갈등은 어린이에겐 초월적 힘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부모 등의 개입에 의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문학의 세계는 왕이나 영주 신 등의 초월적 존재가 나타나 갈등을 해결해주는 고전문학의 세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고전문학에는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구분이 없다.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이 구분되는 것은 주체와 주체를 둘러싼 세계의 갈등이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 자본주의 세계의 산물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오면서 어린이 문학에도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흔히 그 이유를 어린이가 일찍부터 영상매체 등의 많은 지식 정보에 노출되어 조숙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것보다는 핵가족이 내용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데 더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기왕의 자본주의 체제에 적합한 가족형태가 핵가족이었다면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 적합한 가족형태는 1인 가족이다. 그래서 핵가족이 형태상으로도 해체되고 있고, 형태는 유지되더라도 내용적으로 해체되고 있다. 엄마 아빠는 더 이상 가족 판타지 속의 아이를 중심으로 애정관계로 똘똘 뭉친 엄마 아빠가 아니라 각자 너무도 바쁘고 지친 그래서 여유가 생길 땐 각자 쉬어야만 하고 각자 탈출구를 모색하기도 하는 엄마 아빠이다. 엄마 아빠의 아이에 대한 관심 역시 생존에 시달리는 현실과 관련한 항목들로 축소된다. 아이의 갈등을 해결해주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엄마 아빠는 이미 이데올로기화된 가족 판타지 속에나 있을 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화한 가족 판타지와 현실의 괴리, 이것이 어린이 문학에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토끼백작의 신부 찾기」는 같은 반 남자 아이를 좋아하는 유리에게 어느 날 스물여섯 번째 부인을 구하는 영국에서 온 토끼백작이 나타남으로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나이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남자 친구에 대해 가질 법한 생각을 토끼백작이라는 기발한 상상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기왕의 가족 판타지를 구성하고 있는 백마 타고 오는 왕자님의 남성 중심주의적 면모를 토끼백작으로 비틀어 희화화한 좋은 작품이다.
그런데 본말이 조금 전도된 듯한 험이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유리와 좋아하는 남자 아이 사이의 관계일 텐데 너무 약하고 토끼백작과의 관계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지가 않았다.
「힐라볼라 둥둥둥」 외 2편과 「삐리뽀라 삐리뽀」 외 2편은 가족 판타지에 일어나고 있는 균열을 환상적 기법을 통해 섬뜩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이 작품들 속 인물들의 관계와 행위는 결정적인 지점에서 살짝 어긋난다. 이 살짝 어긋난 틈을 통해 가족 판타지가 가리고 있는 현실이 섬뜩하게 드러내는 좋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저학년 대상 작품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다른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양이책」 외 2편은 도시의 인공적 환경과 어른들에 의해 틀지워진 제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 사이의 갈등을 느끼고 상상을 통해 화해를 꿈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다. ‘혀.집.뒤 혀집뒤’는 딱지치기에 빠진 태풍이가 대마왕 딱지가 마계로 떠나며 알려준 혀.집.뒤 혀집뒤 주문을 통해 딱지치기 왕이 되고 학교 밖에서까지 더구나 방학인데 딱지치기를 금지한다며 딱지를 압수해 가는 교장 선생님에게 화가 나서 학교 건물을 거꾸로 뒤집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뒤집힌 학교 건물은 다시 뒤집을 수가 없어 뒤집힌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딱지치기의 뒤집기를 공간의 뒤집기로 연결시키고 공간의 뒤집기를 전복적 상상력으로 승화시킨 좋은 작품이다. ‘파라솔 뒤에 테이블 뒤에 의자가’는 편의점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와 파라솔들이 검은 고양이의 마법적 접촉에 의해 깨어나 사람과 차들이 뜸해진 한밤중 옥상에 갇혀 죽어가는 삼색이 고양이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이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도시의 사물들을 가지고 이렇게 꿈꿀 수도 있구나 싶은 작품이다. 하지만 ‘고양이책’ 같은 작품의 문체가 저학년에게 안 맞는 게 험이었다. 그래서 우수상으로 정했다.

「디다와 소풍 요정」은 가족 판타지의 외형을 지닌 가족 속에 나 있는 일상화된 균열을 희화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그 균열을 통해 외형과는 다르게 내용적으로 와해되어 있는 핵가족과 핵가족이 맺고 있는 사회관계의 현실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
디다는 외형적으로는 가족판타지를 충족시킬 만한 나무랄 데 없는 핵가족의 일원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가족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다. ‘디다와 소풍 요정’에서 디다는 그때마다 어른들의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가족소풍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이다. 그래서 가족소풍을 가기 전날 소풍을 방해하는 온갖 요소를 점검하고 친구가 알려준 대로 풍선껌을 씹으며 소원을 빌어 소풍요정까지 불러낸다. 그런데 이 소풍요정부터 기대하던 그럴듯한 모습과 딴판으로 여윈 몸에 천을 하나 두르고 있는 늙은 남자이다. 소풍요정은 소풍을 도와주기는커녕 배고프다고 샌드위치와 김밥에 꼭 필요한 재료들을 먹어치우고 소풍을 도와달라는 요구에는 한 숨 자고라는 대답을 한다. 엄마 아빠 역시 마찬가지이다. 샌드위치와 김밥에 중요한 재료가 빠졌다는 디다의 지적에 엄마 아빠는 “이 닦았니?” 하는 물음으로 동문서답하는 식이다. 디다와 부모 사이만이 아니라 엄마 아빠 사이도 동문서답으로 어긋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섬뜩하고 아픈 느낌을 주는 것은 디다가 그러한 어긋난 관계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쿨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디다’에서 디다는 기억을 잃어버린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아빠는 디다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도록 종이옷을 입혀주고 아빠의 입장에서 종이옷에 디다에 대해 적는다. 하지만 그건 디다의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불과하다. 가족 이외의 사람들이 종이옷에 디다에 대해 적어주는 말은 가히 폭력적이다. 집에 온 수리기사는 자기 어린 시절 기억을 잃어버린 척했던 경험에 비추어 디다가 기억을 잃어버린 척하는 걸로 단정하여 척하는 아이라고 적고 선생님은 디다가 잃어버린 기억 때문에 종이옷을 입은 걸 깜박한 채 부스럭거린다고 떠드는 아이라고 적어주고, 병원에서 만난 할머니는 종이옷에 적힌 내용들이 너무 안 좋아 도와주어야겠다고 엉뚱하게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 평화를 사랑하는 아이라고 적어주는 식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적어준 내용을 보고 나쁘지 않네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왜곡된 타인과의 관계, 왜곡된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는 자기 정체성을 되찾을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디다가 기억을 잃어버린 진짜 이유는 타인의 시선과 요구에 맞추어 자기 정체성을 세우라는 어른들의 강요 때문인지도 모른다. 섬뜩하고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디다가 그런 가면 연기에 무척 익숙한 아이라는 것이다. 디다는 폭력적인 타인의 시선을 쿨하게 받아들인다. 기껏해야 손과 발에서는 핏줄이 안 드러나 목에서 피를 뽑을 때 우는 정도이다. 간호사는 그런 디다를 보고 종이옷에 잘 참는 아이라고 적어주는데 잘 참는 아이란 타인의 시선에 맞춘 연기에 매우 익숙한 아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런 아이는 무척 외로운 아이이다. 디다는 잠들기 전에 자기 보물상자를 침대 밑에 넣어둔 게 기억나 꺼낸다. 보물상자엔 잃어버린 기억 즉 자기 정체성이 들어있다. 디다는 이렇게 한밤중에 자기만의 공간에서 감추어두기를 강요당했던 자기 정체성을 되찾는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디다의 그 외로운 작업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별 관심이 없다.
이 작품은 아이와 함께 엄마 아빠가 꼭 읽어보았으면 싶은 작품이다. 대상으로 정했다.

김진경

2015년 비룡소 문학상은 좋은 작품이 너무 많이 응모되어서 예심부터 치열했다. 몇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전과는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갑자기 떼를 지어 나타난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작품을 읽는 내내 짜릿한 긴장감과 설렘, 그리고 동화 판이 한번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가장 큰 변화는 소재가 다양해지고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다. 독특한 문체와 유머로 평범한 일상을 뒤집어 버리는 과감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그리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가 대거 등장한 것도 큰 변화 중의 하나였다. 작품을 읽는 내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이야기의 시각화가 강화되었다. 본심 때는 심사를 보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각각 달라서 대상과 우수상이 몇 번 뒤집혔다. 서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수상작 모두 뛰어났다.

디다와 소풍요정
「디다와 소풍요정」디다는 가족과 함께 소풍을 가본 적이 없다. 소풍을 가려고 날을 잡으면 꼭 무슨 일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디다는 친구 프롬이가 가르쳐준 대로 풍선을 불어서 소풍 요정을 불러낸다.
「기억을 잃어버린 디다」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억을 잃어버린 디다. 아빠는 디다에게 종이옷을 입혀 주고 종이옷에 디다에 대한 정보를 쓴다. 엄마, 아빠, 밥솥을 고치러온 기사, 학교 선생님, 간호사,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할머니 등. 어른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의 시각으로 디다를 판단하고 제단한다. 디다의 종이옷에는 말 잘 듣는 아이 이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바람이 잔뜩 적혀 있을 뿐이다.
디다와 어른들은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하다. 작가는 인물들의 대화를 유머러스하게 끌고 가지만 마냥 웃을 수만 없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자세히 들여다 디다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지만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소적이다. 어른들이 아무리 길들이려고 해도 아이들이 자신의 보물 상자를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갔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이 이야기 전반에 담겨 있다. 탄탄한 구성과 개성 있는 인물들, 어른들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함께 담겨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저학년 아이들이 과연 이 작품의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부분 때문에 논의가 길어졌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논의가 의미가 없을 만큼 재미있고 깊이 있는 작품이다. 아이들은 디다의 마음이 되어 소풍 요정과 신나게 놀고, 보물 상자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다. 반대로 어른들은 깔깔거리며 웃다가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빨간 머리 마녀 미로
동굴 보육원에 사는 빨간 머리 ‘미로’, 미로는 머리 색깔 때문에 친구들한테는 마녀라고 놀림을 받는다. 더욱이 무시무시한 원장 선생님과 쥐가 있는 동굴 보육원에서 벗어나고 싶은 미로. 미로는 매일 밤마다 주문을 건다. 그러던 어느 날 곱슬머리 아저씨와 통통한 아줌마가 보육원에 찾아온다. 아줌마와 아저씨를 따라간 집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수리는 뭐든지 찍기만 하면 살아서 움직이는 생생 사진기를 발명하는데, 생생 사진기로 쓱싹 고무 왕자와 반쪽 신사를 탄생시킨다. 거만한 쓱싹 고무 왕자는 크리스티네 뇌스트링거의『오이 대왕』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쓱싹 고무 왕자는 오디 대왕 보다 더 뻔뻔하고 엉뚱한 사고뭉치다. 쓱싹 고무 왕자의 끊임없는 말썽으로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게 펼쳐진다. 빨간 머리 미로, 발명가 수리, 쓱싹 고무 왕자, 반쪽 신사, 강아지 파마 등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에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작가가 큰 이야기 굿판을 벌인 듯하다.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능청스러움에 혼이 쏙 나갈 정도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알리는 따뜻한 마무리도 좋았다. 아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화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양이책 외 2편
「책 고양이」마법사의 책을 찢은 조수 고양이가 마법사의 저주를 받아 고양이 책이 된 사연이 담겨 있는데 작가의 입담이 심상치가 않다.
「파라솔 뒤에 의자가」 모두가 잠든 새벽, 편의 점 앞 파라솔 뒤에 의자들이 죽어가는 고양이가 있는 옥상으로 정군을 안내한다. 파라솔 아래 의자들이 고양이를 구하러 가는 설정은 황당하면서도 따뜻하다. 죽어있는 도시에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혀,집, 뒤, 혀집뒤」 대마왕 딱지가 태풍이에게 뭐든지 다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을 준다. 교장 선생님께 딱지를 모두 빼앗긴 태풍이는 담배를 피우는 남자한테 주문을 걸어 콜라가 뒤집히게 하고, 건널목에서 보행자 길을 방해하는 자동차를 뒤집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학교까지 뒤집어 버린다.
세 편 모두 황당하고 신비한 마법 같은 이야기이다. 소재에 대한 접근이 독특하고, 평범한 일상을 뒤집는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 편 모두 읽는 내내 이미지가 강하게 떠올랐다. 고양이가 마법사의 책이 되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편의점 앞에 있는 의자가 죽어가는 고양이를 구하는 이야기는 신비하면서도 따듯하다. 두 작품도 심상치 않았는데,「혀,집,뒤, 혀집뒤」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절정을 이룬다. 학교까지 뒤집는 작가의 상상력이 통쾌하다.

누나가 사라졌다
매일 몽구를 괴롭히는 누나. 엄마 아빠가 없는 날 폭풍우가 치고, 누나는 귀신 흉내를 내며 몽구를 괴롭힌다. 몽구는 너무 화가 나서 ‘뚱돼지야, 평생 내 발 냄새나 맡고 살아라’하고 저주를 퍼붓는다. 하필 그때 천둥 번개가 치고, 누나가 사라진다. 다음날 몽구는 실내화에 인형처럼 들러붙은 누나를 발견하게 된다.
심술쟁이 누나와 동생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누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몽구의 고민도 익숙하다. 소재와 주제 모두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누나가 저주에 걸려 실내화에 들러붙는 황당한 설정으로 이야기는 코믹하면서 흥미롭게 진행된다. 실내화에 들러붙은 누나는 몽구를 괴롭혀온 재철이한테 멋지게 복수를 해주는 장면은 통쾌하고, 몽구가 좋아하는 예린이와 포크 댄스를 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면은 따뜻하다. 누나가 몽구를 구하려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함께 떨어져서 둘 다 고소 공포증이 생겼다는 반전도 훈훈하다. 그러나 누나를 구하기 위해 힘들게 정글짐에 올랐다가 선생님의 도움으로 정글짐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갑작스럽다. 선생님의 등장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이 깨져버렸다.『누나가 사라졌다』아쉽게도 수상작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조금 더 수정하면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될 것 같다.

토끼 백작의 신부 찾기
자신의 26번째 신부가 되어 달라고 유리를 찾아온 토끼 백작. 토끼 백작이 신부를 구하는 설정이 신선하다. 토끼 백작의 캐릭터가 잘살아있고, 능청스러울 정도로 작가의 입담이 좋다. 그러나 초반에 기대가 높았던 작품인 만큼 뒤로 갈수록 아쉬움이 컸다. 에피소드가 좀 더 다양하고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뒷부분에서 이야기를 더 풀었으면 좋겠다.

힐라볼라 둥둥둥 외 2편
「힐라볼라 둥둥둥」에서 마법사 아버지는 무대에서 공중에 뜨는 마술쇼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나마도 살이 쪄서 공중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주인공 ‘나’는 ‘힐라볼라 둥둥둥’ 주문을 외워 아빠를 구름 위까지 날아가게 도와준다. 무대에서 사람들한테 비난을 받던 아빠를 공중으로 날리는 이야기는 신나면서도 슬프다. 힘을 잃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버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얼굴 없는 인형」은 호러 느낌이 드는 신비하고 독특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이 이야기로 구체화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수아와 바느질하는 할머니의 관계를 알 수 없고, 얼굴 없는 인형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로 더 풀어야 할 것 같다.
「푼푼이가 왔다」식탁위에 나타난 작은 아이 푼푼. 상상력이 재미있다.
세 편 모두 상상력이 독특하다. 앞으로 가능성은 있지만, 상상력을 좀 더 구체화시키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기대가 많이 되는 작가이다.

삐라뽀라 삐라뽀 외 2편
「삐라뽀라 삐라뽀」작년 심사 때 봤던 작품이다. 더 새로워진 건 없지만, 다시 봐도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푸딩 사냥꾼」인간을 잡아먹는 인간 사냥꾼 이야기가 섬뜩하면서도 흥미롭다. 어린이의 도움으로 인간 사냥꾼이 푸딩을 좋아하게 되는 설정은 토미 웅거러의『제랄다와 거인』을 떠올리게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한 걸음 더 나아가있다. 무시무시한 인간 사냥꾼이 시끄럽고 산만한 어린이를 가장 무서워하는 부분은 코믹하면서도 재미있다.
「캡쑝 가면」얼굴 흉터 때문에 가면을 쓰고 혼자 노는 아이가 주인공이다. 놀이터에서 만난 모자 쓴 여자아이, 그리고 악당 가면을 쓴 아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감추기 위해 모자와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전해진다.
모두 같은 작가가 썼을까 의문이 들 만큼 세 편 모두 개성이 다른 작품이다. 작가가 계속 고민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서 좋았다. 비록 수상작에는 들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더 열심히 쓰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

아동문학 시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부흥기였다가 점점 상황이 나빠지더니 지금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작품만 보면 문학적 성과는 지금이 부흥기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매년 훌륭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예전보다 작가 층도 다양해졌다. 어려운 시장 상황 때문에 힘들게 이루어 놓은 아동 문학의 성과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어 버릴까 봐 걱정된다. 신인 작가들이 더 열심히 열정을 불태울 수 있도록 독자들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봐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리리

어린이가 글자가 가득한 책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만나는 첫 번째 작품은 온전히 그 독자를 향해서 창작된 작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중역된 세계 명작 다이제스트를 통해서 첫 독서의 기억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책이 안겨주었던 기쁨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훗날 제대로 된 완역본을 읽었을 때 나의 첫 문학이 원래는 더 큰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고 유년기에 맞추어 적당히 가위질된 이야기였다는 것에서 실망한 경험은 생생하다. 어른이 되고 나서 「나는 책읽기가 좋아」 시리즈에 들어 있는 어린 시절에 꼭 맞춘 다정한 목소리의 유년동화를 읽으면서 신선한 감동을 느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외서가 더 많았고 우리도 좀 더 어린 독자를 위해서, 좀 더 바짝 당겨 앉아 이야기를 건네는 동화가 더 많이 창작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2년에 비룡소 문학상이 시작되고 올해가 다섯 번째다. 그동안 여러 차례 유년동화의 이야기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올해 심사에서는 그 논의 자체를 되짚어보게 만들 정도로 새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유년기 어린이를 위해서 고심하고 창작했을 뿐 아니라 그 시기를 보내는 어린이들의 즐거움과 상상의 방향을 충분히 이해해주는 작품들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이미 예심 단계에서부터 개성 있는 작품들이 팽팽하게 경합했고 예전 같으면 충분히 본심에서 거론할만한 작품이지만 최종 심사를 위해 재차 거르는 과정에서 아쉽게 내려놓게 된 경우도 있다. 심사위원들은 숙고 끝에 「빨간 머리 마녀 미로」, 「누나가 사라졌다」, 「디다와 소풍 요정」, 「삐리뽀라 삐리뽀」외 2편, 「힐라볼라 둥둥둥」외 2편, 「고양이 책」외 2편, 「토끼백작의 신부찾기」를 올려놓고 각각의 작품에 관한 긴 토론을 벌였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조금씩 다른 방향의 장점과 아쉬움을 가지고 있어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전반적으로 신선한 소재를 낯선 방식으로 다루는 것은 물론 유년기 독자의 심리를 잘 반영한 작품들이 여러 편 있어서 어떤 작품에 손을 들어야할지 마지막까지 고민이 되었다. ‘일곱 살에서 열 살까지의 어린이를 위한 문학상’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기준점으로 잡고 의견을 좁혀나갔지만 대상 독자층이 살짝 어긋나 있음에도 작품 자체의 매력이 두드러져서 자꾸만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가본 적 없는 공간과 인물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작가들이 늘어났다고 느꼈다. 이야기에도 공식이 있다면 이번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눈치 보지 않는 상상력으로 그 공식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었다.

「빨간 머리 마녀 미로」는 혈연, 비혈연의 경계를 넘어 이루어진 가족의 모델이 이처럼 편안 하고 정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야기 속 발명품은 신기한 물건이지만 상상이 잘 되어서 뚜렷한 구체성을 확보한다. 무척 유쾌한 이야기이지만 작가가 들여온 반쪽이라든가 지우개 같은 개념은 다양한 알레고리로 해석되면서 결코 가볍게만 읽을 수 없는 깊이를 만들어준다. 이미지가 넘치고 정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약점은 ‘과잉’에 있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가득한 것이 장점으로 보였다.

「누나가 사라졌다」는 아주 작은 이야깃거리가 큰 활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서사 자체는 간결하지만 확실한 동선과 속도감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정글짐 아래에서 선생님이 기다리면서 몽구 스스로 할 수도 있는 일에 손을 내미는 장면은 여러모로 아쉬웠다. 가장 큰 과제를 외부 용역으로 처리해버린 것 같아서 말미에 힘이 약해졌다.

「삐리뽀라 삐리뽀」외 2편과 「힐라볼라 둥둥둥」외 2편은 단편집이다. 그런데 그 단편 한 편 한 편의 색깔이 범상치 않다. 「삐리뽀라 삐리뽀」의 상상력은 아픔조차 아름답게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다. 대상 독자층이 유년동화로 보기에는 약간 높고 일부 작품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 같은 구성의 아쉬움이 느껴지는 바람에 아쉽게 내려놓게 되었다. 「힐라볼라 둥둥둥」도 일부 작품에서 대상독자의 폭이 저학년보다는 약간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품이 자체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 의미를 독자들에게 문학적으로 설득하는 힘은 강렬했다. 끝까지 아쉬움 속에 지켜본 작품이었다.

「고양이책」외 2편은 사랑스러운 마법 이야기다. 연작이라기에는 연결되는 느낌이 부족하고 단편집으로 보기에는 개별 작품의 자립적 힘에 차이가 있다. 사건의 마무리가 분명하지 않고 우연이 거듭되는 ‘고양이책’은 아쉬웠지만 ‘혀,집,뒤 혀집뒤’의 전개는 예전에이 읽던 유년동화에서 보지 못했던 호쾌한 이미지와 흐름이었다. 삭막한 도시의 한모퉁이도 얼마든지 즐거운 환상의 발원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 반가웠다.

「토끼백작의 신부 찾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장면이 눈에 선하게 잡히는 작품이었다. 중심은 형우와 미미의 연애에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의 매력은 토끼백작 쪽이 가지고 있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토끼백작의 성별이 남자여서 성 역할 고정관념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도 이 작품이 익숙하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읽는 재미가 풍부하고 인물이 살아있다. 긴장 강도는 낮고 잔잔하지만 아까운 작품이었다.

최종적으로 「디다와 소풍 요정」을 대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이 작품 속 가족의 모습은 냉정하지만 현실적이다. 재미있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으나 문체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어린이는 이미 작품과 유사한 세계에 살고 있어서 작가의 독특한 대화 코드에 쉽게 접속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른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는 전개다. 그럼에도 그 불편함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마지막 논의 끝에 이번 심사에서 한 편에게만 수상의 기쁨을 안겨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빨간 머리 마녀 미로」와 「고양이책」 외 2편을 모두 우수상으로 정하였다. 하지만 다른 작품의 경우에도 견주는 과정에서 쉽게 한 줄로 정리할 수 없는 다양한 강점들이 보였음을 밝혀둔다. 고생 끝에 마무리한 소중한 작품을 보내주신 응모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열심히 쓰신 이야기로부터 큰 자극을 받았으며 더 많은 분을 독려해드리지 못한 것이 내내 안타깝다.

김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