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 문학상

 bir_awards_logo_g 「난 책읽기가 좋아」 시리즈로 그림책에서 본격적인 읽기책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사랑을 받아온 비룡소가 저학년을 위한 동화를 공모하기 위해 시작하는 새로운 문학상입니다.

당선작

대상 : 이현지 「이순신 베토벤 그리고 박선우」

심사위원: 김진경(동화작가), 김리리(동화작가), 김지은(아동문학평론가), 천효정(동화작가)

본상: 상패

부상: 대상 1000만 원(선인세)


심사 경위

저학년 동화의 지평을 넓히고 참신하고 재능 있는 작가의 발굴을 위해 비룡소에서 제정한 비룡소 문학상의 14회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6월 30일 원고를 최종 마감한 제14회 비룡소 문학상에는 옛이야기, 의인화동화, 생활동화, 판타지, SF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담은 저학년 동화 총 167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습니다.

본심작

  • 「달빛 마녀 숲의 선물」
  • 「너구리대리 너대리」
  • 「잃어버린 것 찾아 가게」
  • 「문어 왕자와 쩍쩍 손바닥」
  • 「뻔뻔한 토마토」
  • 「이순신 베토벤 그리고 박선우」

심사위원으로는 김진경, 김리리, 김지은, 천효정 님을 위촉하여 심사하였고, 예심 결과 총 6편을 본심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심사위원 네 분이 지난 8월 9일 본사에 모여 논의한 결과, 이현지의 「이순신 베토벤 그리고 박선우」을 대상작으로 결정했습니다.


심사평

얼마 전에 인터넷 교육언론 창에 시를 하나 실었다. 시를 보냈더니 5분도 안 되어서 대표가 시의 내용에 맞는 삽화를 보내왔다. 챗봇이 내 시를 읽고 5초 만에 그려낸 그림이라고 했다. 제법 그럴듯했다. 챗봇이 작곡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문학작품도 써내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문학예술창작 고유성의 근거는 무엇일까? 장르의 규칙이나 작품 구조, 문학예술기법의 치밀성 등은 챗봇이 창작자를 바로 따라잡고 넘어설 수도 있어서 거기서 문학예술창작 고유성의 근거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예술창작 고유성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은 아무리 물질적으로 어려워도 굶어 죽으면 죽었지 그 이유만으로 자살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자살하는 경우는 자기 삶에 아무런 의미 부여가 되지 않을 때이다. 이것은 사람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끊임없이 자기 삶에 의미 부여를 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은 왜 그렇게 자기 삶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에 목숨을 거는 걸까? 그것은 인간이 몸을 가지고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제한된 시간의 삶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 없다.
문학예술은 궁극적으로는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 즉, 자기 스토리텔링의 한 갈래이다. 그 여러 갈래 중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갈래일 것이다. 따라서 문학예술창작 고유성의 일차적 근거는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적실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사람에게는 있지만 챗봇에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내-존재’로서의 ‘나’는 곧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총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곧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다. 따라서 문학창작에서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자기가 맺고 있는 중요한 관계에 일어난 파탄에 대한 물음’으로 구체화된다.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사람마다 살아가는 매 순간마다 조금씩 다른 유니크한 것이다. 또한 사람은 각자 조금씩 다른 몸과 감각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물음을 문학예술적으로 풀어내는 방식 또한 조금씩 다른 유니크한 것일 수밖에 없다. 동화는 어린이 주인공의 특성 때문에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 매우 주관적이고 시적이어서 환상성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장르가 갖는 유니크함도 있다. 문학예술창작 고유성의 두 번째 근거는 이 스토리텔링 방식의 유니크함에 있을 것이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들 중 「너구리대리 너대리」는 오랜 기다림으로 길 잃은 강아지, 할머니가 나무가 된다는 발상이나 사람 관계의 공백을 대신 채워주는 동물들의 대리 직업 등 유니크한 발상이 돋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 주인공의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없다는 점에서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동화 장르가 생긴다면 거기에 적합한 작품이 아닐까?

「달빛 마녀 숲의 선물」은 주인공이 ‘달빛 마녀 숲’이라는 환상계로 가게 되는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환상적 이야기 구조의 필요에 따라 즉흥적으로 설정되어 적실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고, 환상계의 디테일들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패러디가 많았다. 전반적으로 너무 거칠다는 인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선으로 올려 이야기하는 것은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에 빼어남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말로 ‘구라’가 세다. ‘구라’의 유니크함이라고나 할까? 차분하게 정진하여 좋은 자질을 잘 살려주시기 바란다.

「뻔뻔한 토마토」는 인간과 기계, 생물과 무생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챗봇 시대의 어린이가 가질 수 있는 그 경계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신선했다. 하지만 결말 부분이 결정적으로 걸렸다. 본인에게 고지나 동의받음 없이 일반 토마토 속에 AI 토마토를 끼워 넣어 먹게 함으로써 원격으로 사람의 몸 내부를 살핀다는 발상은 기본적 인권에 반한다. 이 작품에서 설정한 미래 사회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반인권적인 사회라면 이 작품의 주제가 그로 인한 갈등을 다루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고 결말을 맺기 위해 무심코 설정한 디테일이라면 쉽게 문제점을 피해 갈 수 있는 다른 설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잃어버린 것 찾아 가게」는 나무랄 데 없는 좋은 동화이다. 이 작품에는 아이와 엄마 간의 숨바꼭질 심리가 잘 형상화되어 있다. 숨바꼭질은 엄마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위한 심리적 훈련이다. 언젠가는 자신에게 귀중한 사람이 사라지고 혼자 길을 가야 한다는 불안과 기대, 하지만 그 귀중한 사람은 아주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준다는 믿음, 아이와 엄마는 소소한 갈등과 화해 속에서 그러한 심리적 힘을 축적한다. 이 작품은 엄마와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아이 사이의 갈등과 화해 과정을 통해 그러한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엄마로부터 분리 독립 과정에 있는 아이를 그렸다는 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동화보다는 유아 그림동화에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저학년 교실은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엄마로부터의 분리 독립 과정에서 발생한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있어 이 동화처럼 평화롭지는 않다.

「문어 왕자와 쩍쩍 손바닥」은 쌍둥이 동생에게 빼앗긴 엄마의 애정을 되찾고 싶어 하는 누나의 심리를 잘 그려낸 좋은 작품이다. 기왕의 이러한 갈등을 다룬 작품과 다소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문어 왕자의 마법으로 손에 강력한 빨판이 생겨 엄마와 분리 불가능하게 붙어버렸다는 상징이다. 이는 주인공이 일단 엄마로부터 분리 독립이 된 상태에서 동생을 시샘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로부터 분리 독립이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비슷한 갈등을 다룬 기왕의 작품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온전한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엄마와 아이의 문제는 이미 학교와 사회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현실에 비해 가족 안으로 좁혀져 있는 이 작품은 시야가 너무 협소하다.

「이순신 베토벤 그리고 박선우」는 지식 전수와 학생 생활, 지도 기능을 사교육과 법률시장으로 넘겨 공동화된 학교가 아이들 사이의 부모들 사이의 관계와 삶에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잘 그려낸 문제작이다.
변호사인 엄마는 주인공의 절친인 박선우가 똥쟁이라는 욕을 했다고 학교의 학폭위원회에 제소한다. 박선우는 학폭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사과도 하고 함께 잘 지내겠다는 각서를 쓰기도했지만 오히려 박선우와의 관계는 더 악화되고 주인공은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그런데 변호사인 엄마는 이겼다고 좋아한다. 주인공은 또 학폭위에 제소할까봐 이러한 사실을 엄마에게 얘기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학교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다. 주인공은 고립되어 학원이 밀집된 건물을 떠돌다 6층의 불이 났던 영어학원에서 이상한 할머니를 만난다. 그 할머니는 사교육과 법률시장의 이기고 지는 시장 논리와는 다른 이야기를 주인공에게 들려준다. 이 대목에는 작가의 관점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 좀 거슬린다. 아이의 관점을 살려 동화다운 면모를 살렸으면 좋겠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은 화재경보가 울리는 상태에서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된다. 주인공은 박선우와 그 어머니에게 구조를 받는 과정에서 박선우와 화해한다. 주인공의 엄마와 박선우의 엄마도 같이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화해한다.
현재 아이들이 부딪치고 있는 핵심 문제를 잘 드러낸 문제작으로 당선작으로 모자람이 없다.

김진경(동화작가)

얼마 전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종합 순위 8위라는 예상치 못한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올림픽 개막 전, 영국의 슈퍼컴퓨터가 예측한 국가별 매달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8위였다고 한다. 슈퍼컴퓨터도 예측하지 못했던 성적이다. 슈퍼컴퓨터나 AI가 우리의 미래도 예측한다는 게 불쾌하지만, 다행히 우리나라가 그 예측에서 벗어나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슈퍼컴퓨터의 예측에서 크게 벗어났을까? 조금은 뻔한 대답이지만, 결국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건 인간의 의지가 아닌가 싶다. 사실 경기를 했던 모든 선수가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는 더 간절한 이들이 자신의 능력치 이상으로 실력을 끌어내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끄는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파리 올림픽 경기가 한창일 때, 비룡소 문학상 응모작을 보게 되었다.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봤던 심정으로 이번 심사에서는 더 열심히 작품을 보았다. 예심 때부터 눈에 띄는 작품이 많아 반가웠다. 이번에도 기발한 상상력과 개성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매력적인 작품들이 본심에 올랐다.

「달빛 마녀 숲의 선물」
유리병 거인, 말해주는 뿔피리, 치료하는 나뭇잎, 저절로 빵 굽는 냄비, 잠그는 지팡이, 춤추는 신발 등 신비하고, 매력적인 소재가 가득하다. 마녀가 살지 않는 마녀의 숲은 현실에서 상처받고 결핍이 많은 이들에게 치유와 위안을 주는 마법의 공간이다. 마녀의 숲이라는 매력적인 판타지 공간과 그곳에서 만나는 개성 있는 조력자들과 소원을 이루어 주는 신기한 마법 도구 등 현실과 판타지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가 신비하고 매력적이다. 작가가 글을 많이 써본 듯 판타지에 대한 이해가 높고,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연구를 많이 한 것 같다. 마녀의 숲으로 들어간 주인공들은 반드시 과제를 수행해야만 소원을 이룰 수 얻을 수 있다. 주인공과 조력자가 함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데,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관이 믿음직하다. 그러나 비슷한 설정이 계속 반복되고, 주인공의 간절함이 다소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작가가 시리즈로 기획한 만큼 1부, 2부, 3부로 이어지면서 세계관이 좀 더 확장되고, 이야기 구조에 변화를 준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

「이순신 베토벤 그리고 박선우」
지는 걸 가장 싫어하는 변호사 엄마를 둔 재이. 단짝 친구 박선우가 똥구멍이라고 놀렸다는 이유로 엄마가 박선우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자, 박선우와 친구들은 더는 재이와 놀려고 하지 않는다. 친구가 없어서 외톨이로 지내야 하는 재이는 얼마 전에 망해서 문을 닫은 영어학원에서 욕쟁이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재이는 욕쟁이 할머니에게 욕을 배워서 친구들에게 멋지게 복수하고 싶어 하지만, 할머니는 사람 사이에는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재이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양보하며 친구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문장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 있게 읽히는 작품이다.
아이들은 싸우며 성장하는데, 어른들이 싸움에 개입하면서 학교폭력으로 번지게 되는 현실의 문제를 작가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친구를 사귀는 방법도 배우지 못하고, 사람이 살아가며 필요한 것들을 배울 기회를 잃어버린 아이들, 학원을 여러 곳 다니며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고, 싸우고 나서 화해할 시간도 없는 아이들의 고민이 잘 담겨 있다. 주인공 심리가 섬세하게 느껴진다. 딸을 열심히 학원에 보내고, 하버드대학까지 보내 성공시키지만, 사람 사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한 잘못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이 시대의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욕쟁이 할머니와 재이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작가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을 시키면서 정작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 현실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비판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을 학폭으로 신고한 재이를 위험에서 구해주고, 자신의 아이 대하듯 재이를 대하는 선우 엄마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희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작품으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너구리대리 너대리」
효도를 대신 해달라는 고객의 요청을 받은 너구리 너대리가 공실순 씨 집에 찾아가 의뢰인의 요청대로 효도하는 이야기가 따뜻하다. 나무의 말을 알아듣고, 의뢰인이 요청한 대로 열심히 효도하며 동생들을 돌보는 너대리 캐릭터가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마음의 문을 닫았던 공길순 씨가 너대리에게 점점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읽는 내내 가슴 뭉클해지고 행복해지는 작품이다. 찾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며 나무가 되어가는 공길순 할머니의 모습은 가족에게 외면받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을 떠올리게 해 더욱 가슴 아팠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가족이 찾아오지 않아 외로운 할머니의 이야기를 아이들이 얼마만큼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화가 누구를 위한 문학인지 작가가 좀 더 고민해 보면 좋겠다. 어린이보다는 어른에게 더 위안을 주는 동화이다.

「문어 왕자와 쩍쩍 손바닥」
쌍둥이 동생 때문에 늘 엄마를 빼앗기는 지아. 캠핑장에 놀러 가는 날 수산 시장에서 산 문어를 살려주고 지아는 소원을 빈다. 그날 이후 손바닥에 빨판이 생겨 엄마와 꼭 붙어 지내게 된 지아는 바라는 소원을 이루고 결핍을 해소한다.
엄마를 쌍둥이에게 빼앗겨 속상해하는 지아의 마음을 작가는 따뜻한 문장으로 섬세하게 잘 어루만져 주고 위안을 준다. 소원을 들어주는 문어 왕자 캐릭터는 개성이 넘치고 사랑스럽다. 직장 일을 하다가 육아 때문에 일을 쉬는 엄마.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경력 단절을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이 시대 일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반영한 듯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육아에 지쳐 힘겨워하는 엄마의 고충도 잘 담고 있다. 지아는 엄마와 단둘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사랑을 듬뿍 받게 되는데, 지아의 결핍을 해소하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엄마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는 행복과 즐거움을 주고, 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게는 위안을 주는 작품이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그러나 기존에 많이 다루었던 소재와 주제라 다소 평이하다는 평가가 있어서 아쉽게도 수상작에 들지는 못했다.

「잃어버린 것 찾아 가게」
지호가 그린 고등어 그림.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별거 아닌 것처럼 취급하고, 오히려 잃어버린 붓을 찾아오라고 한다. 지호는 잃어버린 붓을 찾으러 다시 학교에 가다가 삼색 고양이에게 고등어 그림을 주고, 닭털을 받는다. 지호는 그 뒤로 여러 동물을 만나게 되는데, 지호가 그린 그림을 얻기 위해 털을 주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옛이야기 구조를 잘 살려 쓴 작품이다. 삼색 고양이, 꽁지 털을 잃어버린 흰 닭, 이마 털을 잃어버린 너구리, 엉덩이 털을 잃어버린 노루, 꼬리를 잃어버린 어린 당나귀 등 모두 사랑스럽고 개성이 넘친다. 작가는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털을 잃어버린 동물들의 각각의 사연도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다. 작가의 입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옛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르다 보니, 구성이 익숙하고 단조롭다는 평가가 있었다. 작품의 장점을 살려 그림책으로 완성하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

「뻔뻔한 토마토」
AI가 거짓말을 해서, 회사 컴퓨터가 모두 고장 나 집에 못 온다는 아빠 말을 듣고, 거짓말하는 AI를 찾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아빠의 농담으로 주위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 재인이가 콩, 깍두기, 돈가스와 대화하는 부분이 유머러스하고 코믹하다. 음식을 의인화해서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작가의 입담이 돋보인다. 그러나 며칠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처럼 지내던 토마토를 윤후의 이야기만 듣고 너무 쉽게 아빠에게 먹이는 장면은 다소 냉소적으로 느껴진다. AI를 토마토에 숨겨 인간에게 먹게 하는 설정 또한 문제가 있다. AI가 언제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와 우리를 지배할지 모른다는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저학년 동화에 적합한지 의문이다. 이야기가 구조화되지 못하고 대화와 에피소드로만 이어지는 부분도 아쉽다. 작가가 좀 더 고민하고, 좋은 SF 작품으로 완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 모두 각각의 장점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그러나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그 진정성에 있다.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의 간절함이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도구처럼 정해진 설정으로 소비되는 느낌이다.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강렬한 그 무엇이 없어 아쉬웠다. 그러다 보니, 다시 주인공의 간절함과 작가가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비판이 살아 있는 사실주의 동화에 더 마음이 갔다. 심사위원들과 논의 끝에 『이순신 베토벤 그리고 박선우』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올림픽 경기에서 미세한 점수 차이로 순위가 결정되는 장면을 보며, 경기에 참여한 모든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힘들게 본심에 올라도 마지막까지 치열한 논의 끝에 단 한 작품만이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수상작을 포함해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써 준 모든 작가분께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리리(동화작가)

유년동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비룡소 문학상에 올해도 많은 작품이 투고되었다. 처음 책 읽기를 시작하는 어린이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문학적인 아름다움이 담긴 작품을 쓰는 일은 어렵다. 그렇지만 도전과 고민이 동시에 느껴지는 투고작을 만나면 그 작가들의 의지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작품들을 읽으며 유년기 어린이 독자의 문학적 경험이 어떤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잃어버린 것 찾아 가게」는 서정적인 이야기 흐름과 눈에 그려지는 것 같은 구체적 장면들이 인상 깊었다.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러나 선생님이 교실에 생물 고등어를 가지고 와서 미술 수업을 하는 장면 등 전반적으로 작가의 설정이 이야기의 사실성을 압도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여러 동물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어린이를 존중하는 작가의 태도를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문어 왕자와 쩍쩍 손바닥」은 촉각과 관련된 상상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동화다. 천연덕스러운 사건 전개로 독자를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양육자가 아이와 분리되지 못한 채 한 팀처럼 경쟁적 세계를 헤쳐 나가고 있는 육아 현실에서 이 작품이 주는 찡한 느낌은 읽고 나서도 꽤 오래 남았다. 엄마와 아이가 연결되어 있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내공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1차 독자가 어린이보다는 엄마에 가깝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렇지 않아도 여성 양육자의 죄책감이 큰 사회에서 동화가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은가도 고민이 되었다.

「달빛 마녀 숲의 선물」은 일정한 양식에 환상적 소재들이 교대로 배치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개별 장면이 섬세하게 쓰인 것은 장점이지만 연작으로서 이 에피소드들을 아우르는 공통의 결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소원을 들어주는 일, 환상이 실현되는 일이 거듭 이어지면서 그 사건의 기적적인 감동도 약화되는 것이 약점이었다. 인물들이 많지만 충분히 공들여 설계된 인물은 적다는 것도 아쉬움이다.

「너구리대리 너대리」는 부드럽고 따뜻한 작품이다. 그러나 지금 널리 읽히고 있는 연작 동화들과 변별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일본 동화 「고양이 택시」를 비롯하여 기본 설정이나 분위기에서 비슷하다고 떠오르는 작품이 있고 그럴수록 이 작품만의 독립적인 개성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강아지 나무 등 여러 나무들이 등장하는 부분부터는 식물을 의인화할 때 독자가 느끼게 되는 이질감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

「뻔뻔한 토마토」는 “너 에이아이지?”라는 질문을 되풀이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넌센스 동화다. 우리 주위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늘어나고 있으며 어린이들도 그런 환경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인간과 기계가 빠르게 변할수록 사람답다는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나 자신을 비롯해 생명을 가진 존재들도 인공물이 아닌가 의심받는 상황을 그려낸 이야기다. 작품이 품고 있는 의미는 간단하지만 쉬지 않고 이어지는 명랑함 속에 작은 반전이 있는 신선한 작품이었다. AI 토마토를 의도적으로 배송했다는 설정에 비약이 있고 마무리가 잘 납득이 가지 않아서 당선작으로 선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수준 있는 재치가 느껴지는 글이었다. 앞으로 이 작가의 행보에 기대가 된다.

수상작은 「이순신 베토벤 그리고 박선우」로 의견을 모았다. 이 작품은 충분히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어린이들 사이의 관계가 어른들 때문에 회복이 어려운 상태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학원에 다니면서 학대에 가까운 사교육을 받는 어린이들이 적지 않은 경쟁적 현실을 우회하지 않고 상당히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유년기의 어린이들이 겪을 수도 있는 관계의 시행착오를 학교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규정짓고 우정의 형성을 도리어 가로막는 어른들의 문제적 행태를 지적한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갖는 시의성이나 학교 현실을 반영한 예리함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척박한 경쟁의 현실을 반영하다보니 인물 설정에서 다소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나아간 부분이 있고 어른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두드러지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이만큼 오늘의 어린이들이 놓인 어려움을 생생히 반영한 작품은 드물다고 보았다. 학교는 달라져야 하고 이 글은 그 절박함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어린이에게 건네는 문학작품이 마냥 경쾌하기만 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우리 어린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수상작을 비롯해 아동문학 작품은 현실의 녹록지 않은 무게를 나눠 짊어지면서 어린이를 위기에서 구조하고 그들과 더 밝은 곳으로 걸어 나아간다. 내년에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읽고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기대해본다.

김지은(아동문학평론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 많았다. 덕분에 심사한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독자로서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푹 빠져 읽고 나서 굳이 단점을 들춰야 한다는 점이 심사의 가장 큰 고충이 아닐까 싶다. 관건은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흥미진진한 플롯이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도 있고, 때로 시의적절한 메시지일 수도 있다. 본심에 오른 여섯 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자 한다.

「달빛 마녀 숲의 선물」
이 정도 완성된 이야기를 이 정도 분량으로 엮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필력이다. 저학년 아이들에게 잘 읽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각각의 이야기에서 표면적인 문제만 손쉽게 해결된 채 끝이라는 느낌이다. 예로, ‘말해주는 뿔피리’에서 지예가 미라에게 서운함을 품고 있다가 마법의 아이템을 얻은 후 ‘너 사과해!’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자. 팔을 툭 치고 지나간 친구에게 정색하며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과연 ‘참교육’인가 의구심이 든다. 그 날카로운 대응에서 예민한 아이를 더욱 예민하게 만드는 성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오히려 ‘눈을 뻐끔뻐끔’하며 곧장 ‘어? 미안해.’라고 사과하는 미라에게서 더 건강한 어린이를 본다.

「너구리대리 너대리」
뭐든 대신해주(려고 나름 노력하)는 복슬복슬 너구리는 이미지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사랑스럽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아주 유사한 고양이를 한 마리 알고 있다. 비슷하다면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것으로 변별점을 드러내야 하는데 주제 면에서는 오히려 뒤로 한발 물러나 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께 효도하자’는 현대 어린이에게 너무나 멀고 먼 이야기다.

「잃어버린 것 찾아 가게」
플롯이 집중적이며 인물과 장면이 선명하게 시각화된다. 저학년 동화에서 가장 흔하게 차용되는 캐릭터는 성격적 특징에 기반한 것인데, 이 작품에서는 드물게 예술가로서의 자질로 형상화된다. 지호가 마트에서 파는 고등어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똑같은 고등어 그림을 그려내는 도입은 이미 작품의 성공을 반쯤 실현할 정도다. 이 빛나는 인물이 간절히 찾는 것이 엄마의 인정(사랑)이라는 점에서는 모처럼의 신선함이 반감된다. 모성을 손쉬운 갈등과 따뜻한 결말의 도구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문어 왕자와 쩍쩍 손바닥」
최근 들어 ‘안전한 분리’가 양육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저기서 회자되는 웃지 못할 세태들도 기실 아이와 양육자의 분리 실패로 인한 병리적 현상에 다름 아닌 경우가 흔하다. 꼭 필요한 이야기가 나타났다는 반가움이 있었음에도 몇몇 아쉬움이 남는다. 엄마 옆에 찰싹 붙은 쌍둥이 동생들을 빤히 응시하는 지아의 조용한 항의는 너무 정당하다. 이 가족의 현안은 쌍둥이와 엄마의 거리 두기, 아이들과 아빠의 유대 강화, 지아의 결핍(사랑받는 느낌) 충족이다. 지아에게 극단적인 보상(문어 빨판으로 엄마 손과 붙이기)을 제공한 후, ‘막상 해보니 불편하지? 차라리 떨어지는 게 낫지?’ 채근하는 결말이 불편하다.

「뻔뻔한 토마토」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입담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진짜 어린이처럼 말하며, 화내는 깍두기나 멍때리는 빗자루처럼 잠시 등장하는 단역에조차 캐릭터가 부여되어 있다. 형식 면에서는 문제적이라 할 만큼 새롭다. 허구 서사의 기본 공식인 점진적 플롯을 따르지 않고 갈등을 차곡차곡 쌓아가기보다는 뜬금없이 시작해서 흘러가는 대로 둔다. 대화 장면에서도 중간 서술 없이 인물 간의 티키타가를 무심하게 방치한다. 언뜻 교정 되어야 할 문제처럼 보이는 이러한 특징이 ‘미숙함’보다는 ‘실험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가볍지 않은 주제 때문이다.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는 인공지능은 이미 도래한 미래가 되었다. ‘인간만이 가지는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깃털처럼 사뿐하게, 저학년 동화로 다루어 낸 솜씨가 비범하다. 다만 그토록 다정한 유대를 나누었던 토마토를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의 입에 밀어 넣는 결말이 상당한 충격이다.

「이순신 베토벤 그리고 박선우」
해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초등학교 학교폭력 사안 중 절반 이상은 저학년 교실에서 일어난다. ‘바보’, ‘똥개’라는 놀림으로도 학교에서는 전담기구회의가 개최되고, 교육청에서 조사관이 파견되며, 양측 보호자가 학교로 소집된다. 어른들이 온갖 난리법석을 피우며 1호 조치(‘똥개라고 놀려서 미안해’ 편지 쓰기)를 이행시키고 떠나버린 교실에는 피해, 가해, 쌍방 아이들만 멋쩍은 얼굴로 덩그러니 남아 있다. 반에서 매일 만나야 하는 그 애, 교사도 부모도 ‘거리를 두라’는 그 애, 절대 입 밖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조금쯤 다시 잘 지내보고 싶은 그 애. 매년 1호 조치 후 방치되는 수천 명의 아이들에게 절박한 것은 두루뭉술한 위로가 아니라 콕콕 찍어주는 구체적 조언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역지사지와 배려만큼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없다는, 낡았지만 당연한 진리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내년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이 책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본심에 작품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오르지 않으면 또 오르지 않은 대로 낙심되는 그 마음을 너무 잘 안다. 닿기 어려운 위로지만 그래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고단하고 즐거운 글쓰기의 길에서 가장 큰 재능은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천효정(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