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도깨비상 – 그림책 부문

수상작 및 작가

 

그림책 부문 당선작: 대상 『치코』

심사위원: 이수지(그림책 작가), 이지원(그림책 기획자, 번역가)


심사 경위

 

제31회 황금도깨비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6월 28일 원고를 최종 마감하여 예·본심을 진행한 황금도깨비상 그림책 부문에는 총 163편이 접수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그림책 작가 이수지, 그림책 기획 및 번역가 이지원 님을 위촉하여 7월 11일 본사에서 예·본심을 진행하였습니다. 본심에 오른 총 9편을 논의하였고, 오래 심사숙고한 끝에 『치코』를 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본심작:
『치코』
『길을 가는 동안』
『나의 세상에는』
『다시 만나 반가워』
『사랑 단어 사전』
『새싹이 가져다준 것』
『여기서 절대 안 나갈 거야』
『페르난데의 벼룩들』
『훌쩍훌쩍, 노랑이』

이번 해는 뽑아 두고 이야기 나눌 후보작들이 많아서 기뻤다. 조금만 정리하면 바로 낼 수 있을 것 같은 책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늘, 그 ‘조금’이 쉽지 않다. 욕심으로 여기저기 주변에 부려 두었던 이야기와 이미지를 과감하게 치우면서 동시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부각하기 위해 사소한 디테일을 추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정리해 가는 과정에서 결국 독자에게 친절해지는 것-친절보다는 다정해지는 것이라고 하자-이 독자와 창작자 사이의 문을 연다.

 

『치코』
잘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는 것, 누가 알거나 모르거나 끊임없이 세상을 꼭꼭 다지며 살아가는 미세생물이 주인공이다. 주인공 치코는 단순하고 선한 마음으로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 곁의 어린이 같다. 정성껏 눌러 찍은 작은 점으로 구성된 세밀한 세상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잘 그려졌다. 또한 등장인물의 움직임이나 동선을 표현하는 유려한 필치에서 가늘지만 강단 있는 스타일이 느껴진다. 앞으로의 작업이 더욱 기대되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다만 전반적으로 비슷한 구도가 반복되어 다소 평이하게 느껴지는데, 치코와 보토 세상의 스케일을 독자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아주 가까이 다가서거나 훌쩍 멀리 빠지는 등 다양한 장면이 적절히 섞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얹어 본다.

『길을 가는 동안』
사용하는 색의 팔레트가 감각적이고 부감 구도가 보여 주는 풍경의 묘사가 독특하면서도 아름답다. 여정의 풍경에서 주인공이 만난 것들이 잘게 쪼개져 더 커다랗게 흩어진다는 텍스트가 좋아 그다음에 어떻게 이어질까 궁금했는데, 난데없이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흩어지는 자연에 대비해 쌓고 싶은 인간을 그렸다기에는 인간의 세계로 돌아와서도 풍경은 여전히 끝까지 호의적으로 아름다운데, 이것이 비판적인 시각인지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이야기가 흩어져 버린 느낌이다.

『나의 세상에는』
시소의 비유는 언제나 흥미롭다. 의미의 경중을 눈에 보이게 표시하면서도, 동시에 눈에 보이게 배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있다고 정말 심심할까? 라는 텍스트 밑에 한 마리 토끼 쪽으로 기울어진 시소는 그 자체로 철학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흥미로운 질문 끝에 “나의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아-누구나 소중하거든”이라는 대답으로 끝나는 게 다소 아쉽다. 질문은 쉽고, 대답은 어려운 법이다.

『다시 만나 반가워』
그림 표현이 탁월하고 글도 서술어만의 나열로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신선하다. 그런 의미에서 ‘몰랐어요. 이럴 줄’이라는 텍스트는,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는 알겠으나 흐름을 깬다. 이 문장이 없어도 전체 흐름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므로 없거나 다른 말로 대체되어도 좋겠다.
이야기가 무거운데 그림의 톤도 무거우므로, 주인공의 색은 더 쨍한 노랑으로 대비를 준다면 전체적으로 더 경쾌해질 것 같다. 결론으로 꼭 다시 만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흩어지고, 자유로워지면서 끝나도 여운은 남는다. 반드시 같은 자리로 돌아올 필요는 없다.

『사랑 단어 사전』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의 선택과 그 풀이가 재미있다. 그러나 읽다 보니 엄마 입장에서의 사랑에 대한 묘사가 많다. 주어가 생략되어서 흥미롭기도 하나, 대체로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화자가 누구인지 명확해지면 더 좋을 것 같다.

『새싹이 가져다준 것』
가벼운 펜 선 드로잉의 경쾌함이 좋다. 할머니가 누워 있는 어두운 집 안 풍경과 이후 다채로워지는 희망의 풍경의 대비도 좋다. 그러나 저 할머니가 문득 새싹이 나온 화분에 눈길을 주고 집 안에 들여놓기까지에 대한 다른 겹의 사연과 설명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전까지 모든 것을 놓아 버렸던 할머니의 마음에 새싹이 돋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기에.

『여기서 절대 안 나갈 거야』
화난 아이가 자기만의 깊은 공간에 들어간다는 설정도 좋고, 아이를 꺼내려고 미끼(피자!)를 던지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마지막, 화가 난 엄마가 아이와 똑같이 바로 그곳에 들어앉아 핸드폰을 보는 장면은 공감 백배!
아이가 머무르는 공간의 크기 변화가 보이기는 하지만, 좀 더 확연하게 구분되어야 효과가 배가 될 것 같다. 아이가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이 바다와 이어진다거나, 폭풍우 치는 바닷속에서 살짝 놓친 토순이를 오빠가 슬그머니 이불 안으로 넣어 준다거나 하는 작은 디테일들이 더 있으면 어떨까? 화면은 단순해도 작은 디테일로 사실 많은 이야기를 더 건넬 수 있다.

『페르난데의 벼룩들』
스트레스는 얼마나 멋진 예술과 멋진 피 맛을 방해하는가. 우쿨렐레가 ‘뛰는(lele) 벼룩(ʻuku)’임을 이 책으로 배웠다. 과연 이 책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이기적 유전자, 아니 이 이기적 벼룩들이 페르난데의 손가락을 튕겨 명연주를 만들며 장관의 회오리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진심 웃음이 터졌다. 어디서 이런 역작을 들고 오신 것인지. 계속 이 멋진 피의 맛이 유지되기를 응원하고 싶다. 더 실험적인 결과물로 일반 오프셋 출판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가도 좋겠다 싶다.

『훌쩍훌쩍, 노랑이』
명쾌한 색 구성과 캐릭터가 눈에 띈다. 지긋지긋한 콧물, 아무리 떨쳐 버리려 해도 찰싹 붙어있는 녀석을 아예 맘먹고 받아들이니 오히려 사라지더라는 결론도 좋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콧물! 이야기는 선명하지만 다소 단순하다. 실제로 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녀석이 생각나는데, 그 아이의 경우 콧물은 막상 본인에게는 괜찮았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홀대를 더 슬퍼했던 것 같다. 혼자만의 고난에 머물기보다는 조금 더 입체적인 상황의 이야기로 가도 좋을 것 같다.

-이수지(그림책 작가)


31회를 맞은 올해의 황금도깨비상 심사는 즐거웠다. 어떤 공모전이나 최악은 수상작을 뽑지 못한 해다. 후보작들을 들춰 보며 한국 그림책의 미래가 먹구름에 싸였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상을 뽑지 못하고 우수상만으로 창작을 독려한 지 몇 년이 지나 올해는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본선에 올릴 수 있었고, 드디어 대상을 뽑아 기쁘다.

『치코』
완성도가 높고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원고이다. 확실한 메시지가 있고 캐릭터는 작지만 표정이 살아 있다. 흙과 미세생물이라는, 논픽션과 픽션을 넘나드는 이야기의 소재 역시 범상치 않다. 작은 점들과 예민한 선으로 이루어진 실험적인 흑백의 드로잉은 신진 작가라고 볼 수 없을 만큼의 안정적인 그림 구도 속에서 편안하게 서사를 밀고 나간다. 황금 도깨비상 대상작에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길 기대해 본다.

『길을 가는 동안』
페이지마다 다채롭고도 서로 잘 어울리는 색채의 사용으로 들춰 보기만 해도 황홀했던 원고였다. 어떠한 머뭇거림도 느껴지지 않는 색들의 화음, 그러나 작가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주인공이 홀로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의 길을 가는 동안 왜 짐과 집과 가족과 사람들은 늘어나 있으며, 왜 주인공의 여정에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여인이 그와 손을 잡고 나타나는가, ‘흩어지려는 자연과 쌓고 싶은 인간의 다름을 그린 그림책’이라는 마지막 장의 설명이 이해되지 않는다.

『나의 세상에는』
시원한 회화적인 그림과 간략하고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짧은 텍스트가 어우러져 좋은 작품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원고이다. 처음에 신선하게 느껴졌던 동물들의 ‘시소 타기’가 계속되는데, 단지 ‘나의 세상에는 누구나 소중하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짓기에는 좋은 그림과 아이디어가 아깝다. 이렇게 끝난다면 『나의 세상에는』이라는 제목 역시 결론을 미리 알려 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다시 만나 반가워』
분위기 있는 사실적인 그림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펼침면의 화면이 몇 번 반복되는 동안, 우리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갈색의 재생종이 냅킨이라는 걸 알아챈다. 이 주인공의 처지와 감정의 서술은 단지 ‘–요’로 끝나는 한국어의 동사와 형용사, 즉 용언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그림책 텍스트를 쓰는 작가가 언어에 대한 이런 섬세함을 보여 준다는 점은 반갑다. 다만 그 주인공의 여정에 딱히 함께 흥분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는 것이 구성상의 허점인지, 설정이 잘못된 것인지는 의문이다.

『사랑 단어 사전』
일상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린 수준 높은 작품 중 하나였다. ‘사전’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ㄱㄴㄷ 순으로 등장하는 몇 개의 평범한 단어가 두 펼침면을 무대로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 좋다.
아쉽게도 그 서사의 수준과 서술자의 목소리는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몇몇 장면에서는 다른 장면보다 더 미소를 자아내게 하고, 이야기의 전개에 대해서 더 감탄하게 한다. ‘세차장’을 ‘아빠가 일부러 데려가 주는 환상의 쇼’라고 소개하는 장면은 얼마나 따뜻한가. 가장 좋은 장면의 수준으로 전체 원고가 다듬어졌으면 좋겠다.

『새싹이 가져다준 것』
식물, 특히 생명이 있는 식물과 함께하는 일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힘을 다룬다. 부담 없이 쓱쓱 그은 듯한 윤곽선과 맑은 수채의 그림이 기대감을 증폭시킨 것에 비해, 원고는 글 없는 그림책의 장면 장면에 불어넣을 수 있는 더 많은 뉘앙스와 표정도, 캐릭터의 매력적인 탐구도 없다. 예상할 수 있는 전개만을 보여 주고 있어서 아쉬웠다.

『여기서 절대 안 나갈 거야』
그림책 펼침면의 공간을 서사에 맞게 창의적으로 이용한 점이 훌륭했다.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다툼과 갈등, 분노와 그 해소 등을 잘 보여 주었지만 이런 수준의 능숙한 작업을 펼칠 수 있는 작가들이라면, 좀 더 야심 찬 프로젝트에 도전해 보았으면 좋겠다.

『페르난데의 벼룩들』
황금도깨비상을 심사해 온 여러 해 동안 본 원고 중에서 단연코 기억에 남을 만큼 의아하고 신기한 이야기였다. 작가는 ‘벼룩이 튀다’라는 우쿨렐레 기원에 대해 능숙한 솜씨의 선 드로잉으로 천연덕스러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독립출판물 장터였더라면, 심사자는 이 책을 사서 집에 가져왔을 것이다. 인간의 피를 마시는 벼룩의 축제를 즐겁게 그려낸 작가가, 본인의 재능을 좀 더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써 주었으면 좋겠다.

『훌쩍훌쩍, 노랑이』
감기 걸린 아이와 노랑이로 나오는 콧물이 주인공인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간략한 선과 검정과 노랑만을 이용한 그림들이 어린이라도 누구나 겪어보았을 몸의 불편함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잘 설명한다.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만화의 기법을 응용하여 눈길을 끄는 참신한 화면을 만들어 낸 점을 칭찬하고 싶다.

-이지원(그림책 기획자,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