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및 작가
심사 경위
제26회 황금도깨비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10월 31일 원고를 최종 마감하여 예·본심을 진행한 황금도깨비상 그림책 부문에는 120편이 접수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그림책 작가 이수지, 그림책 기획 및 번역가 이지원 님을 위촉하여 11월 22일 본사에서 예·본심을 진행하였습니다. 본심에 오른 총 5편을 논의한 결과 최종으로 가능성과 참신함이 돋보인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토끼전』 두 편을 우수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올해는 총 120편의 응모작이 들어왔다. 모두 저마다 공들인 멋진 책들을 만났다. 그중 본심에 오른 총 5편의 작품을 살펴보면,
『달려』는 아이디어가 빛나는 작품이다. 길바닥에 드리워진 자전거 실물 그림자의 작은 부분들이 생명을 가지고 살아나 열심히 달려간다. 모두 함께 줄지어 달리는 장면은 신나고 멋지다. 그림자는 모호해서 신비하며, 알 수 없기에 우리의 상상력을 고양한다. 작가는 친절해야 하지만, 독자가 못 읽을까 지나치게 조바심내지는 말아야 한다. 독자가 부분들을 스스로 맞추도록 이끌고, 결국 전체 큰 퍼즐을 맞춰 발견하는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밤중의 손님』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이야기가 잘 짜여있고 발상이 재미있는 작품이다. 꾸드족의 모습도 설정도 흥미롭고, 밤하늘의 불꽃놀이도 아름답다. 다만 캐릭터와 그림의 스타일이 아직 길을 찾아가는 단계의 더미북이어서, 주어진 것 이상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코끼리 코끼리』는 강렬한 판화적 이미지가 인상적인 그림책이다. 처음 시작하는 장면 – 달빛에 빛나는 강가의 코끼리 떼 풍경은 대단히 아름답다. 개별 이미지들은 아주 매력적이지만, 전체로 보았을 때 이미지가 서로 엇비슷하고, 적, 녹, 흑의 세 가지 색이 같은 무게로 반복되는 바람에 단조로워졌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배반하고 그 어긋남이 강조되었다면,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이 책의 메시지가 더 묵직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는 『빨간 모자』만큼이나 자주 변주되는 텍스트인 『브레멘의 음악대』를 2019년 대한민국의 현실에 반영한 위트 넘치는 작품이다. 강렬한 제목에 그래픽적인 이미지와 색감도 산뜻하다. 화면 분할도 적절하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힘과 곳곳에 스며있는 유머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크게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당나귀씨, 바둑이씨, 야옹이씨와 꼬꼬댁씨. 그들의 한없이 작아진 모습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함께 초라해진다. 당나귀씨는 좋은 동료였나보다 – 한 동료 택시 기사가 뒤돌아 눈물을 훔치는 작은 그림은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당나귀씨가 동료들에게 받은 이별 선물은 참치 캔 세트이고, 4인조와 도둑들이 함께 끓여내는 한 끼 식사는 두부를 넣은 참치 김치찌개이다 – 대단히 한국적인 깨알 디테일의 재미 또한 쏠쏠하다. 하지만 원전에 기댄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패러디 자체의 상징성은 빛나되, 그곳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다 같이 밥 한끼 차려 먹고 끝내기엔 뭔지 모를 아쉬움이 있다.
『토끼전』의 그림은 놀랍다. 숀 탠 같기도 하고, 이기훈 같기도 한, 로베르토 인노첸티 같기도 하고 미야자키 하야오 같기도 한, 어디에서 본 듯하지만 실은 본 적 없어 보이는 풍경과 로봇 캐릭터들의 디테일은 익숙하고 낯설다. 이 낯선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은, 이 그림과 가장 먼 시간대에서 온 그토록 고전적인 『토끼전』 텍스트와의 부조화다. 등에 로켓 추진기를 장착한 별주부와 사악한 로봇 토끼가 만나는 곳은 벼 벤 자리가 듬성한 어느 시골길이며, 용왕은 기골 장대한 로봇이고 그의 수염은 베일 듯 무시무시하다. 이 매력적인 설정의 그림들은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미지 스케치에 머무르고 있고, 그림책의 꼴을 갖추려면 엄청난 양의 그림과 편집의 묘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아주 매력적인 실마리만 있다. 이것을 끝까지 집요하게 밀어 올려 결국 무엇이 되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대상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였으나, 아쉽게도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와 『토끼전』 두 작품을 우수상으로 선정했다.
이수지(그림책 작가)
그림책에 관련한 여러 행사가 많은 가을이지만, 공모전에는 꼭 참가자가 아니라도 유독 마음이 두근거린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어떤 작업을 주로 할까, ‘황금도깨비’ 상의 전통을 빛낼 새 수상작은 어떤 작품일까. 120편이나 모인 소중한 원고 앞에서, 그 우열을 말하기 이전에 그림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작가들의 열성에 무작정 탄복한다. 아쉽게도, 두근거렸던 기대와는 달리 올해는 수상작을 뽑지 못하고, 두 편의 우수작을 지명하였다.전혀 다른 그림체와 작법을 가진『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와『토끼전』 두 편의 작품을 우수작으로 뽑은 것은, 이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새로움’의 가능성을 칭찬하고 앞으로의 작품활동을 독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는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하고 있는 우울한 현실을 그린다. 그 묘사는 세밀하고도 구체적이라, 아무리 이 주인공들이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 배경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장소이고, 이 동물들이 우리 자신임은 명백하다. ‘떨거지’ 네 동물이 힘을 합쳐 도둑을 몰아내며 자신들의 효용성을 재증명하는 ‘브레멘 음악대’의 결말조차 나이가 너무 많고, 찌그러진 얼굴로 삼각김밥을 팔고, 행상을 하는 이 동물들에게는 과분하여,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한다. 이야기 속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능력, 분할 프레임의 적절한 사용,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연계 등 좋은 점이 많은 작품이었으나, 도둑들과 함께 이웃집에 음식을 나누는 난데없는 결말이 아쉬운 데다가 기성 세대의 문제를 어린이독자들에게 어쩌라는 것인가라는 지점에서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로봇 동화로 그린 『토끼전』은 그림을 보는 재미를 극대화시킨 좋은 시도였다. 가슴팍의 뚜껑을 열고 간을 확인해보는 토끼 로봇이나 길게 늘어진 수염을 휘날리는 위엄있는 용왕 로봇의 캐릭터가 괴상하게도 적절하고, 토끼가 수술대에 누운 표지 장면은 자꾸 뜯어보고 싶을 정도로 정교하다. 잘 그린 물 속 세상이 아닌 황량하고 멋대가리 없는 육지의 풍경마저 위트가 있다. 그러나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그림책으로 기능하기에는 서로 연결되어 의미를 주고받고 서사를 끌고 나갈 장면의 그림 페이지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작가가 힘을 내어 작품을 더 진행해서 신기한 그림으로 꽉 찬 새로운 토끼전을 꼭 완성했으면 좋겠다.
우수작으로는 뽑지 않았지만, 기억할만한 좋은 작품들로는 픽션과 논픽션의 요소가 재미있게 섞인 책인 『달려』가 있었다. 주변의 사물과 그 사물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대한 섬세한 관찰, 거기서 생각난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색깔 있는 동물 그림의 이미지와 전체적인 디자인을 좀 더 탄탄하게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에는 판화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판화와는 다른 기법으로 그려진, 코끼리 관광과 사냥 등의 문제의식을 드러낸 응축된 이미지들의 맨 마지막 장이 인상 깊었던 『코끼리 코끼리』도 좋은 원고였다. 하지만 ‘코끼리는 코끼리다’로 지루하게 되풀이되는 텍스트와 내적 서사가 부족한 장면들이 어색하게 연결되어 있어 결말까지 읽어나가기가 힘들었다.
『한밤중의 손님』은 채색과 흑백 드로잉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작가의 망설임인지 그리다 만 것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의 미진한 그림이 문제이긴 했지만, 혼자서 부르는 나의 노래가 멀리 어딘가 알 수 없는 행성에 가서 닿는다는 낭만적인 줄거리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힘있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림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 완성도 있는 책으로 만들어졌으면 한다.
이지원(그림책 기획자,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