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도깨비상 – 그림책 부문

수상작 및 작가

 

당선작: 없음

심사위원: 이수지(그림책 작가), 이지원(그림책 기획자, 번역가)

 


심사 경위

 

제28회 황금도깨비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10월 29일 원고를 최종 마감하여 예·본심을 진행한 황금도깨비상 그림책 부문에는 총 140편이 접수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그림책 작가 이수지, 그림책 기획 및 번역가 이지원 님을 위촉하여 11월 24일 본사에서 예·본심을 진행하였습니다. 본심에 오른 총 4편을 논의하였고, 오래 심사숙고하였으나 아쉽게도 올해 수상작을 선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본심작:
『하늘 호수』
『오지랖의 민족』
『콩을 먹으면 쑥쑥 커요』
『마음이』

아쉽게도 이번에는 수상작을 정하지 못했다. 다른 해에 비해 습작 수준의 응모작들이 유난히 많았고, 본선에 올라온 후보작들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표현의 밀도가 조금씩 부족했다. 완벽한 수상작은 없다. 수많은 그림책의 홍수 속에서 이 그림책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하는 이유,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표현의 새로운 시도와 즐거운 도전 등은 작품에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런 태도를 듬뿍 담고 있는 작업이 결국 수상작으로 스스로 떠오른다. 아쉬운 가운데 주목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하늘 호수』의 잔잔한 표면과 거울처럼 비치는 주변 경관, 아이와 개가 뛰어들어 일렁이는 물의 표현, 시간의 경과를 보여 주는 색감의 변화가 아름답다. 그런데 독자에게 ‘잘 그린 그림’이라는 느낌 이상의 감정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늘이 비친 호수는 진짜 하늘이 되고, 물속에서 자유로워진 주인공이 그 공간 안에서 훨훨 난다는 설정은 판타지이지만, 그것을 시각적으로 실제처럼 믿게 할 수 있는 작가의 테크닉은 오히려 더 강력한 판타지성을 구현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된다. 한발 더 나아가 그 판타지를 독자가 믿게 하고,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쑥 들어오게 하는 것은 작가가 장악한 작가 고유의 그림, 즉 현실에 기반을 둔 그림이 아니라(사진 같은 그림이 아니라) 그림 자체의 논리이다. 물 밖에서도 물속에서도 주인공의 머리카락과 반려견의 털에 작가만의 그림체로 물의 너울거림과 하늘의 바람을 담을 수는 없었을까? 만약 이것이 그저 아이의 상상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부러 딱딱하게 표현한 것이었다면, 오히려 그 부자연스러움을 좀 더 표현하고 대비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몇 장면들은 놀랍도록 아름다운데, 전체 안에서 그 아름다움이 돋보일 수 있도록 완급을 조절하고 작가가 한번 거른 그림 스타일이 더 잘 드러나면 좋겠다.

『오지랖의 민족』은 재미있다. ‘오지랖’은 겉옷의 앞자락이라 한다. 아이들이 크면서 엄마의 넓은 오지랖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주인공 아이는 엄마 오지랖 너머 넉넉한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엄마의 오지랖은 갑작스러운 비에 우산을 안 가져온 아이 친구들을 챙기고, 동네를 다 챙기고, 나아가 민족(!)으로 확장되어 모두와 함께 기름이 유출된 바다까지 책임진다. 그림체가 독특하고 정감 있으며 발랄한 이야기처럼 색감 또한 발랄하다. 그런데 오지랖을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현재의 더미 북은 글도 그림도 너무 많아 전반적으로 산만하게 느껴진다. 엄마 따라 오지랖이 넓어진 주인공 아이의 배려를 오해하는 여자아이와의 마지막 에피소드도 재미있는데, 이런 마무리도 더 돋보이려면 영화 끝 무렵에 붙는 쿠키 영상처럼 작게 넣는 등, 전체적으로 많이 덜어 내고 강약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콩을 먹으면 쑥쑥 커요』는 완성도 높은 작업이다. 이야기의 진행도 매끄럽고 화면 곳곳에 숨어 있는 유머(특히 국회의사당 장면)가 매력적인 책이다. 색감과 화면 구성도 그래픽적으로 흥미롭다. 아기가 갑자기 커져 버릴 때까지 시선을 유도하는 화면의 변화가 재치 있고, 아기가 밖으로 뛰쳐나간 후 펼쳐지는 서울의 구체적인 풍경도 재미를 더한다. 다만, 후반부로 가서 갑자기 아기가 왜 넘어졌는지, 무릎을 다친 것 같은데 왜 뒤로 넘어가 있는지, 도시 풍경 속 사람들은 왜 거대 아기에게 반응하지 않는지, 저 커다란 아기의 입에 어떻게 쪽쪽이를 물렸는지 등의 궁금증이 생기는 데 해결해 주지 않아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는 느낌이 없다. 서울 풍경의 표현도 조금만 더 스타일이 확실하고 구체적이었으면, 그리고 아기의 만행(?)도 조금만 더 과감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 작은 아쉬운 것들이 조금씩 모이면 결과적으로 책 전체의 밀도를 낮추게 된다.

『마음이』는 마음 아픈 이야기다. 그림과 구성은 완성도도 높고 안정적인데 무엇인가 미진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다가가도 되는 걸까?”처럼 의문형으로 끝나는 글이 불확실한 마음이의 상태와 그래서 불안하기만 한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으나, 글에 어린아이의 마음과 어른의 시선이 섞여 있어 일관되지 않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개별 그림은 완성형이지만 전체 그림의 톤이 전해 주고자 하는 것이 다소 애매하다. 버려진 강아지가 헤매다가 구조되고, 입양된 후에도 막상 해피 엔딩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의도였을까? 그랬다면, 그 부분을 그림의 톤에서 혹은 책의 형식을 이용하여 좀 더 강화해야 이런 주제의 다른 책들과 차별점이 확실히 보일 것 같다. 유기견들에 대한 많은 책 중에 작가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열린 결말과 다양한 답을 유도하는 것은 좋지만, 작가 자신의 태도는 명확해야 할 것이다.

이수지(그림책 작가)


대한민국의 유서 깊은 그림책 공모전, 비룡소의 황금도깨비 심사는 가을의 중요한 행사다. 일정도 일찌감치 잡아 놓고, 마치 내 원고라도 접수한 것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심사 날을 기다린다. 적어도 그날이 끝나기 전, 어떤 한 두 사람의 운명은 작거나 크게 바뀌는 것이다. 손에 들었던, 아직 완전한 책이 아니었던 원고의 기억은 수상작이 출간될 때까지 깊이 가슴에 남는다. 그러나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심사한 몇 해 중 처음으로 수상작을 뽑지 못했다. 일단 응모작 중 뚜렷이 눈에 띄는 작품이 별로 없었고, 본심에 올린 작품의 수도 다른 때보다 현저하게 적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현재 어린이책 시장의 출판 기회가 늘어났고, 독립 출판도 활발해져 굳이 공모전이라는 평가 시스템을 거치지 않더라도 작가들이 책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한 공모전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젊은 작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한다는 것은 어쨌거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스스로의 힘으로 완결하여 다른 작품과의 경쟁에 내보내고, 다른 이들의 냉정한 평가에 직면하겠다는 외로운 투지의 표명이다. 황금도깨비상의 단 한 해의 부진이 우리 작가들의 창작 수준의 저하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힘든 것도 외로운 것도 싫은 MZ세대의 마음이 읽히는 것만 같다. 수상작을 뽑지는 못했으나 본선에 올라온 작품들을 언급하고 독려하며 아쉬움을 달래 본다.
『하늘 호수』의 능숙한 그림과 호수의 물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화면 전개는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그림의 완성도와 긴장이 이야기의 중간 지점부터 떨어지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실주의 화풍의 그림에서 아이가 자연의 호수에서 양식종 금붕어 (생태계 교란종이 아닌지)와 함께 헤엄치는 환상의 전개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호수와 하늘이 겹쳐지는 환상의 세계에 어떻게 들어가고 나오게 되는지에 대한 장치를 조금 더 면밀히 설계할 필요가 있다. 장애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오지랖의 민족』은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남들의 어려움을 알아채고 나서는 엄마의 오지랖을 시작으로, 알 수 없는 계기와 자극으로 선뜻 남을 돕는 데 나서는 많은 사람들의 합쳐진 선행에 대해 말한다. 매우 환상적인 색채로 그려진 현실의 장면들이 만화처럼 여러 프레임 안에서 펼쳐지는 모습이 흥미로우며, 작은 화면과 큰 화면의 구성이 재미있다. 허나 엄마의 오지랖과 한민족 그리고 나의 작은 오지랖으로 이어지는 줄거리는 언뜻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콩을 먹으면 쑥쑥 커요』는 콩을 먹기 싫어하는 형이 동생에게 몰래 먹인 콩 덕분에 거인이 되어버렸다가 다시 아기로 돌아오는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배경인 서울의 지형지물이 꽤 알아볼 수 있게 그려져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캐릭터와 그림의 구성에서 보이는 뛰어난 디자인 감각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환상의 세계로의 들고 남에 대해 조금 더 논리적인 해결책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음이』는 귀여운 하얀 강아지 캐릭터로 우선 마음을 사로잡는다.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버려진 강아지의 서사가 그림의 상황과 간극을 만들고, 이를 통해 어린이 독자들이 반려 동물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해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은 훌륭하다. 잔잔하지만 완성도도 갖추고 있고, 결말까지 몰고 가는 이야기의 구성과 속도도 적절하다. 펼침면이 아닌 연속 화면의 전개가 어색한 지점이 있는데 간단한 프레임의 사용으로 해결할 수 있을 듯 싶다. 조금만 더 다듬어 좋은 책으로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이지원(그림책 기획자,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