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및 작가
심사 경위
제23회 황금도깨비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10월 31일 원고를 최종 마감하여 예·본심을 진행한 황금도깨비상 그림책 부문에는 130편이 접수되었습니다.
그림책 부문에는 유난히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는 응모작들이 많았습니다. 접수된 작품의 수와 질을 고려하여 지난 11월 22일 본사에서 예 · 본심을 함께 치렀습니다. 심사는 아트디렉터 박화영(구혜준) 님과 그림책 작가 이수지 님을 위촉하였습니다. 본심에 오른 70편 중에서 이야기의 완결력, 그림의 참신함이 인상적인 작품 4편이 최종 심사에 올랐습니다. 두 심사 위원이 함께 논의한 결과,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낸 인상적인 스토리라인과 깔끔한 그림이 돋보인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를 우수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70편이었다. 대체로 작년보다 그림 수준은 상당히 높은데도 불구하고 글과 내용이 미흡한 작품이 많았고,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이룬 작품이 드물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총 4편이며, 그 가운데「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를 우수작으로 결정했다.「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는 참신한 상상력과 때 묻지 않은 자기 표현과 솜씨를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수작이다.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는 소위 그림책의 기본 조건이라고 할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림으로 서술하기’인 시각적 서사의 연출이 뛰어난 수작이다. 글과 그림의 연결과 설정이 치밀해서 몰입도를 높이며 동시에 주제의 의미를 짜임새 있게 담아냈다. 다퉈서 사이가 나빠진 친구의 마음을 되돌리고 수업시간표와 도시락 반찬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고 싶은 소원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고 질서와 규칙을 존중하는 일은 어린이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해 가면서 배워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또한 소원은 포괄적이기보다 매우 구체적이어야 함도 알려준다. 사소한 일에서 사소하지 않음을,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평범하지 않음을 찾아내는 눈이 비범하고 무엇보다 그림책 전체에서 삶에 대한 균형 감각이 우러나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땡땡이 아가씨」는 멋부리기 좋아하던 주인공이 다른 이들을 멋쟁이로 꾸며 주는 옷을 지으며 보람을 깨닫게 된다는 줄거리로, 바느질 기법과 헝겊을 사용하여 내용과 형식이 조화롭다. 면지는 바느질한 뒷 천을 사용해서 옷 짓는 주인공의 솜씨인 듯 흔적을 드러냈다. 꼼꼼한 바느질로 드로잉의 매력 있는 선맛을 잘 살려냈고 그림 전개는 다채롭다. 다만 상황묘사와 글쓰기가 허술하다. 주제에서 욕심을 부리자면 “모든 것이 상대적임”으로까지 나아가서 좀더 깊이있는 의미를 담는 방식을 연구했으면 좋겠다.
「소풍」은 동물 우화를 세련된 표현으로 전개시키며 주인공의 감정변화를 잘 살려낸 작품이다. 무모한 경쟁심에 휩쓸려서 달리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지만 본래의 목적지로 되돌아가는 줄거리인데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허탈감이 울림이 있다. 밤늦게까지 기다린 느림보친구들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부드러운 색감으로 바뀌어 주인공 코끼리의 편안한 감정을 엿보게 한다. 반전의 맛을 살린 후반부에 비해 줄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달리기의 연출이 평이하다. 배낭에서 자전거와 자동차, 헬리콥터를 꺼낸다는 발상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림에서 속도감의 차이가 리듬감 있게 드러났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달과 피아노」는 음악을 그림으로 구체화한 작품이다. 음악을 그림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흔치 않은 소재일수록 무엇보다 독자가 흥미를 놓지 않도록 탄탄한 연출이 받쳐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은 고스란히 작품과 독자와의 괴리감으로 이어진다.
박화영(구혜준) / 아트디렉터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는 흥미로운 제목이 책장을 넘기게 한다.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라니! 책 전체의 구성력이 뛰어나고 그림의 배치도 안정적이다. 피식 웃게 만드는 유쾌함이 이야기 전반에 흘러 그 다음이 자꾸 궁금해진다. 소원이 이루어진 순간, 필통의 벌어진 틈에 여유 있게 기대 있는 두꺼비의 능청스러움이 매력적이다. 사실 필통 속에는 지우개가 이미 들어 있었는데, 허둥대느라 훈이가 찾지 못한 것을 두꺼비가 슬쩍 보이게 해준 것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두꺼비는 정말 사소한 이 소원을 들어준 걸까, 아니면 그저 그런 척한 걸까? 판단을 독자에게 넘기면 더 흥미로워질 수도 있겠다. 그림의 스타일이 다소 단조롭고 등장인물들이 서로 비슷한 점은 살짝 아쉽다. 훈이와 두꺼비가 만나게 되는 계기도 보완되면 좋겠다. 그럼에도, 소재와 이야기의 재미, 구성, 완성도면에서 바로 출간할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이라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위트 있는 이야기를 잘 다듬어, 소소한 일상을 마법의 순간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기대한다.
「달과 피아노」는 드뷔시의 ‘달빛’에 시각적으로 답하는 멋진 그림책이다. 하얗고 검은 피아노 건반들이 서사를 만들고 마지막에 노랗게 빛나는 달을 밀어올려 다시 띄우는 모습이 아름답다. 잘 닦인 그랜드 피아노의 검고 투명한 표면에 비치듯, 노란 달이 어슴프레 검정 위에 떠 있는 설정도 매우 감각적이다. 하지만 한결같은 고정 시점에다가 모든 이미지들의 크기가 동일해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의 강약이 부족하다. “풍덩” 빠지는 달이 더 극적이었다면, 오선의 표현도 직선에 얽매이지 말고 파동과 떨림으로 더 다채로운 리듬을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시각적 모티브에서 출발하는 책들은 최초의 착상 자체에 머무르기 쉽다. 과감히 한 발 더 나아가 더욱 풍부해질 달과 피아노를 기대한다.
「땡땡이 아가씨」는 바느질을 드로잉의 도구로 이용한 시도가 돋보인다. 자수를 사용한 이미지들은 단지 장식적으로 흐르기 쉬운데, 마치 스케치북에 쓱쓱 그린 연필 드로잉 같아서 이 여유있는 바느질 선들이 느슨하게 펼쳐놓을 이야기에 대한 기대가 생겨난다. 하지만 현재의 더미북에서는 막상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연결고리들이 약하다. 바느질 드로잉 이미지들도 너무 평이하게 나열되고 있다. 이를테면, 땡땡이 아가씨가 새로 산 비싼 드레스가 얼마나 우아한지, 그런데 그 우아한 드레스마저 이겨버린 고슴도치 아가씨의 드레스는 과연 어떤 것인지를 글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확실히 독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다루고 있는 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해서 이야기에 녹일 수 있을 때 글과 그림은 서로 딱 달라붙어 하나가 된다. 발랄하고 엉뚱해서 매력적인 바느질 선의 표현에 딱 맞는 발랄하고 엉뚱한 이야기로 잘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소풍」은 일등만을 향한 무의미한 경주라는 주제를 간결한 그림체에 담았다. 자기만의 그림 스타일이 서있는 작가인 것 같고, 이야기의 진행도 재미있다. 주제가 선명하고 단순할수록 작가가 그림책 안에서 독자들과 놀 수 있는 여분의 공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덩그러니 주제만 남기 쉽다. 주인공은 각종 탈 것들이 뚝딱뚝딱 나오는 기발한 배낭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을까? 타고 간 헬리콥터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돌아오는 배는 어떻게 구했을까? 소라껍데기는 어디서 왔을까? 애초에 거북이와 친구들을 위해 배낭에 넣었던 물건은 없었을까? 등등 꼬리에 꼬리에 무는 사소한 물음표에 작가가 세심하고 즐겁게 마련한 답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면 더 유쾌하고 풍부한 그림책이 될 것 같다.
이수지 / 그림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