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및 작가
심사 경위
제29회 황금도깨비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10월 31일 원고를 최종 마감하여 예·본심을 진행한 황금도깨비상 그림책 부문에는 총 102편이 접수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그림책 작가 이수지, 그림책 기획 및 번역가 이지원 님을 위촉하여 11월 22일 본사에서 예·본심을 진행하였습니다. 본심에 오른 총 5편을 논의하였고, 오래 심사숙고한 끝에 『이야기를 파는 가게』를 우수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올해도 어김없이 흥미로우면서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들을 여럿 만났다. 응모작들을 보면서 결국 드는 생각은 “그래서 당신은 이 작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었다. 종종 사소한 계기에 의해 그림책은 시작된다. 이 이야기를 전해보고 싶었던 가장 처음, 반짝 떠오른 섬광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될 이야기라면,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결국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끈이 이어진다. 그림책 한 권 만들 때마다 도를 닦는 느낌이라면 좀 우습지만, 분명 작품을 거듭할 때마다 창작자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거기까지 왔다면 이제 소통에 대해 생각할 때다. 내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가장 잘 전할 수 있을까. 그림책을 출판사를 통해 출간하려 한다면, 그 고민은 인쇄되어 매대에 올려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
『이야기를 파는 가게』에는 즐거운 그림책 놀이의 가능성이 담뿍 담겨있다. 우선 산뜻한 그래픽과 군더더기 없는 도입으로 주의를 끈다. 하지만 기계에서 만들어진 재미있는 이야기가 몇 가지 더 있었으면, 조금 더 짧고 강렬하고 명쾌했으면 싶다. 거기에 더해서, 생성된 이야기가 여전히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측면이 주목받을 수 있는 시각적 장치가 보완되면 더 좋을 것이다.
이 책은 마주한 아이들과 놀고자 하는 작가의 즐거운 태도와 마음이 돋보여 우수상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뽑기 기계의 버튼을 누르고 이야기보따리가 굴러 나올 순간을 발 동동 구르며 기다릴 반짝이는 눈의 독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새벽 시장』의 그림은 정말 좋다. 통통한 생선, 눈치작전을 펴는 상인들의 동세와 몸짓, 각종 도구며 트럭이며 고깃배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쓱쓱 바른 터치가 힘차고, 무엇보다 색감이 놀라울 정도로 좋다. 이렇게 빨강과 분홍을 잘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좋다. 하지만 그림책은 그림 한 장이 아니라, 그림과 그림 사이, 그리고 그 그림들을 엮어서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새벽 시장의 북적이는 활기를 정말 보여 주고 싶다면, 비슷한 중경의 나열이 아니라 근경과 원경을 섞은 시장의 입체적인 면모와 생생한 주인공들이 필요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짧은 시간에 집중한다면 하늘의 변화와 분위기의 변화도 큰 소재다. 그리고 그 모든 그림이 하나로 모이는 지점, ‘정말 내가 보여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끝까지 놓지 않아야 한다. 그림의 힘이 모여 이야기를 터트려야 한다.
『빨간 토끼』는 작가의 머릿속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 넘치는 원고다. 살이 조금 찐 빨간 토끼 돼지 저금통, 난데없이 스위스 국기가 된 빨간 토끼, 빨간 벽지 위에 딱 달라붙어 있는 스파이 토끼 등 웃음이 터지는 아이들다운 상상에, 아이들다운 표현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그림의 문제로 돌아가면 조금 헷갈리기 시작한다. 분명히 자기 스타일이 있는 작가 같은데 그림은 애매하다. 다소 나이브한 그림체인데 이게 의도적인지, 작가의 한계인지가 헷갈리고, 그것이 재미를 방해한다. 아이들답다는 것은 핵심일 뿐, 그 자체가 그림이 되지는 않는다. 좀 더 정제된 표현으로 이 재미있는 원고를 살리길 바란다.
『Wohin gehst du?』는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본인의 스타일이 확고하고, 특히 흑과 백만으로 다채롭게 그려내는 밤 풍경은 그 자체로 전체 이야기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나방의 군무, 목적 없는 혹은 맹목적인 나방의 행보는 허무하고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풍경일 뿐이다. 풍경 자체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역부족이다. 다음 단계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장면들이 갑작스럽고 논리적으로 잘 이어지지 않아 흐름이 끊긴다. 이야기의 뒷부분이 아쉽다. 아름다운 밤만큼이나 아침의 태양도 충격적이어야 할 터이다. 마지막에 묘사된 너무 큰 나방과 너무 큰 청소기의 입은 이전에 쌓인 복잡 미묘한 감정을 그냥 놓아버리게 만든다. 독자는 어디에 이입해야 하는가? 여러 시각적 단서들을 열심히 따라간 독자가 감정을 이입할 자리와 여지를 주어야 한다. 이 그림책은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I Want』는 시각적 표현이 아름답고, 안과 밖이 절묘하게 들어맞아 놀라움을 주는 그림책이다. 타공 그림책은 언제나 흥미롭지만,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내고 그만큼 만족감을 안겨줘야 그 장치들이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예쁘고 따뜻한 그림이 무색하게, 기대를 안고 끝까지 넘겨봐도 무엇을 보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이 무수한 ‘안과 밖’ 속에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 여기서 이야기는 반드시 기승전결의 서사가 아니다. ‘무엇을 보는가?’에 대한 답이 명확하면 그것이 이야기가 된다. 서로를 발견하는가? 무엇을 향해가는가? 이 발견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되는 그림책은 쉽지 않지만, 그만큼 보상도 크다. 단순한 형식일수록 잘 짜여야 하는데 시작에 머무른 듯한 아쉬움이 있다.
이수지(그림책 작가)
『새벽시장』은 아침이 밝아오는 항구 풍경을 그린 그림책이다. 대담하고도 완벽하게 제어된 색의 사용이 원고를 덮은 후에도 기억 속에 깊이 남았다. 그러나 그림에 비해 글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과 그림 그리고 작품 전체가 가지고 있는 의도가 독자를 설득하고, 감동을 주는 그림책이 되길 바란다.
이지원(그림책 기획자, 번역가)